수사당국이 순천 지역에서 발견된 사체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DNA가 최종 일치한다고 밝혔지만 노숙자 둔갑설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경찰‧검찰에 대한 불신이 높은 탓이지만 내놓은 해명 역시 이상한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경찰은 40일만에 변사체의 대퇴부를 가지고 DNA를 검출해 유 전 회장의 DNA와 일치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2차 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연구소는 단 하루 만에 변사체에서 근육을 떼내 DNA 검출에 성공해 일치 여부를 확인했다. 변사체 발견 당시 유 전 회장을 특정하지 못하고 간과하면서 DNA 검출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신속한 DNA 검출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을 경찰이 일부러 늦춘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변사체 발견 이후 DNA를 조작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온다.

나아가 변사체와 유 전 회장의 DNA 일치의 전제 조건은 금수원에서 채취한 DNA, 순천 별장의 DNA가 유 전 회장의 것이라는 건데 여론은 수사당국이 채취한 애초 유 전 회장의 DNA까지도 믿지 못하겠다며 DNA 조작설도 솔솔 피어오르고 있다. 순천경찰서는 변사체의 대퇴부 DNA 부위를 국과수 광주분원에 보낸 뒤 경찰청을 통해 DNA 일치 결과를 통보받았다고 밝혔는데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라는 점에서 DNA 조작설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특히 경찰이 유 전 회장의 마지막 행적지인 지난 5월 순천 별장에서 불과 2.5킬로 떨어진 곳에서 변사체를 발견했는데도 아무런 의심 없이 변사 처리를 한 것은 유 전 회장 사체 미스터리 중에서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다.

전남 지역 경찰 관계자는 "시골에서 무연고자들의 변사체는 종종 발견돼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순천지역 관할은 지방에서도 꽤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변사체를 쉽게 처리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유 전 회장을 특정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영화 속 변사체가 발견되면 경찰이 자살, 타살 여부를 조사하고 비상이 걸리는 모습은 없었던 셈이다.

다만, 관계자는 "당시엔 순천지역에 인원이 대거 동원돼 유병언 전 회장 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던 상황에서 변사체가 발견되고도 관련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 한 경찰도 "일반 변사자 처리의 원칙은 신원 확인을 급선무로 하는 것이 맞다"며 “부패 정도가 심하고 유병언 전 회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워 신원 확인 초기 단계부터 관련성을 조사하지 못한 것은 순천 지역 경찰의 감이 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연고자 사체는 도시에서도 보관하기 버거울 정도로 많은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말 순천지역 변사체를 유 전 회장인지 40일 동안 정말 몰랐을까 하는 의혹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의혹의 확산을 막으려면 변사체를 노숙인으로 판단한 근거는 물론 변사체 처리 과정상 검찰에 올린 보고서 내용과 검찰의 최종 판단 의견도 밝혀야 한다.

수사당국이 유 전 회장의 유류품으로 제시한 것과 최초 변사체 발견 신고자의 증언이 일치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밝혀야할 필요가 있다. 최초로 변사체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박모(77)씨는 "행색을 보아하니 제 눈에도 노숙자 같았고, 경찰도 노숙자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 유병언 전 회장의 DNA와 최종 일치했다는 변사체 발견 장소 모습. ⓒ연합뉴스
 

경찰청이 우형호 순천경찰서장과 담당 형사과장을 직위 해제한 배경에 대해서도 의혹이 나온다. 정부는 수사라인에 있던 관계자들의 경질도 언급하고 있다.

초동수사 미흡과 한달 넘는 시간 동안 변사체를 보관한 점 등 경찰 수사력이 비판받을 대목은 많다. 하지만 순천경찰서 내부에서조차 변사체가 유병언 전 회장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온 것을 두고 사건 처리 미흡에 대한 책임의 단순 경질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우형호 경찰서장이 유병언 전 회장의 DNA와 일치한다고 발표한 직후 경찰 내부에서 '110% 유병언의 사체가 아니다'라고 증언을 담은 언론보도가 나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 경찰은 "수년간 사체를 봐왔던 경험으로 미뤄볼 때 이번 변사체는 절대로 유씨가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 전 회장의 사체라면 5월말까지 생존한 것으로 확인된 시점으로부터 최대 18일 만에 백골이 보일 정도로 80% 부패가 이뤄졌다는 것이 경찰의 공식 발표인데도 경찰 내부에서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또한 유씨의 신체와 변사체의 신체 특징(키, 몸무게)이 다르다는 점을 들면서 유씨의 사체가 아니라고 장담했다. 

연합뉴스의 보도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경찰의 공식 발표를 정면으로 뒤집는 보도일 뿐 아니라 정부 발표의 신빙성을 한번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내용이 그것도 경찰 내부에서 나온 것인데, 우형호 경찰서장의 경질은 내부 입단속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묻고 앞으로도 정부 발표와 다른 얘기를 하지 마라는 경고성 조치로 해석될 수 있다.

경찰의 내부 반론은 향후 의혹의 기폭제로도 작용할 수 있다. 경찰은 유병언 전 회장 사체를 둘러싼 의혹에 대해 '선제적 대응으로 불필요한 의혹 확산 차단'에 나서겠다는 계획이지만 내부의 유 전 회장 사체 부정설은 다른 음모론을 뒷받침할 강력한 증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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