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자사고 축소·폐지와 '일반고 전성시대'를 연결짓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많아 보인다. 자칫 '일반고'의 경쟁자인 '자사고'를 제거해 줌으로써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고자 하는 것처럼 들릴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음날 이어진 일반고 교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일반고 교장들이 한결같이 “자사고에서 매달 결원을 뽑으면 성적 우수 학생들이 전학을 간다.", “교장으로서 처음 한 일이 자사고로 전학 가는 상위 10~20% 학생 10여명의 서류에 사인한 것이다.", "특목고, 자사고로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 쏠린 뒤 특성화고도 탈락한 하위권 학생들을 일반고가 껴안느라 고충이 크다" 등의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관련기사: 한겨레 서울시 일반고 교장들 “자사고 폐지”)
이런 주장들을 교육감이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기 바란다. 한 마디로 특목·자사고에 우수한 학생들이 모두 몰렸기 때문에 일반고가 침체되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말하는 우수한 학생은 결국 성적 우수자들이며, '일반고 전성시대'를 위해 특목·자사고에 집중된 성적 우수자들을 일반고에게 더 많이 할당해 달라는 요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그 반대급부로 성적 우수자들이 일반고를 더 많이 선택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성적 우수자들이 결국 ‘입시 경쟁교육’에서 성공한 학생들임을 감안하면, 이는 일반고 입시교육 강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일반고들이 입시경쟁교육을 강화할 테니 특목·자사고로 몰려간 성적 우수자들을 일반고에 배당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일반고는 더 이상 상위 40%의 학생만 진학 가능했던 과거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최하위권 학생들까지 일반고로 진학하는 상황은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부 일반고 교장들은 “자사고 뿐 아니라 일반고도 학생 선발권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과거 인문고로의 회귀욕망을 드러냈지만 이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꿈이다.
▲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진=이치열 기자 | ||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사고는 폐지되거나 축소되어야 한다. 다만 그 까닭은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황폐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사고가 당초 설정했던 목표 달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즉 일반고 문제는 일반고의 문제이며, 자사고 문제는 자사고의 문제인 것이다. 자사고가 등장한 배경은 전국 모든 고등학교에서 똑같은 입시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던 답답한 상황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 반발에 편승하여 이른바 고교 다양화 정책이 실시되었고, 그 일환으로 자사고가 도입되었다. 실제로 자사고로 지정된 학교들은 저마다 다양하고 자율적·창의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공언하여 지정을 받아내었다. 하지만 지정된 이후 대부분의 자사고들은 고등학교 교육을 다양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선행학습과 입시경쟁교육으로 획일화 하는데 앞장섰다. 자사고가 폐지되어야 한다면 바로 이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는 전혀 ‘자율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교육청은 자사고 재지정 여부를 결정할 자사고 재평가 기준에 ‘일반고 영향 평가’따위를 넣을 이유가 없다. 이는 공연히 자사고를 제거함으로써 ‘일반고 전성시대’를 열고자 한다는 오해만 받을 뿐이다. 게다가 아무리 교육감이나 혹은 교육감 지지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사고 역시 교육기관이다. 자사고가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자사고 학생들이지 일반고가 아니다. 자사고가 평가받아야 할 항목은 애초에 지정 받을 때 약속했던 그런 교육을 했는가 아니면 그런 교육과 역행하는 길을 갔는가 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자사고들이 교육의 다양화는 커녕 선행학습과 입시경쟁교육으로 획일화 하는데 앞장섰기 때문에 이 하나의 지표만으로도 서울시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자사고를 지정 철회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지표로 인해 지정 취소되는 자사고는 ‘일반고 영향평가’와 같은 견강부회 지표와는 달리 어떠한 변명도 반박도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