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취임한 첫 한 주일이 지나고 있다. 2010년에 서울과 경기에 모두 진보 교육감이 들어선 것만으로도 큰 사건이었는데, 2014년에는 아예 진보 교육감이 주류가 되어 버렸다. 당사자들조차 놀랄만한 사건이다. 바야흐로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린 것이다.

열 세 명의 진보 교육감들에게 전인미답의 길이 열렸다. 우리 교육의 낡은 잔재를 혁파하고 나아가 새로운 공교육의 모델을 수립할 호기가 온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간은 거꾸로 엄청난 위기이기도 하다. 진보 교육감 1기 때는 가능했던 소수파의 한계라는 변명이 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진보교육감 2기가 실패한다면 이는 단지 13명 교육감의 실패가 아니라 진보교육 전체의 실패로 각인될 것이다. 늘 야당으로만 맴돌던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다음 선거에서 처절하게 몰락한 사례가 이를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옳은 것을 주장하는 것과 옳은 것이 되게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각골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진보 진영은 옳은 것을 주장하는 일에 치우쳐왔다. 일단 어떤 것이 옳다는 확신이 들면 그것을 직접 요구하고, 들어주지 않으면 집회와 농성으로 들어줄 때까지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방식이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의 고립과 소수화라는 결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A라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할 때, 그리고 그 목표가 상대방이나 대중의 변화를 통해 달성해야 할 때 상대방이나 대중에게 A를 계속 강변해서는 될 것도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오히려 여러 가지 우회적인 방법들을 고안하여 결과적으로 A가 되게끔 만드는 것이 정치력이며, 이런 정치력이 바로 선출직인 교육감에게 가장 기대되는 역할이다.

더군다나 지금 진보교육감 쪽은 여전히 약자의 입장에 있다. 물론 겉보기에는 17개 교육청 중 13개 교육청에 입성하여 진보 쪽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설사 17개 교육청 모두 진보교육감이 당선된다 할지라도 교육자치법과 교육관계 법령들이 개정되지 않는 한 교육감 쪽은 여전히 중앙정부에 대해 약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중앙정부의 집중도는 광역자치단체장과 안전행정부와의 비대칭적인 관계만 봐도 당장 확인되는데, 부교육감 한 사람도 임명할 수 없는 교육감은 광역단체장보다도 더욱 취약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교육감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많지 않으며, 교육부 장관이 교육감을 방해할 수 있는 방법은 의외로 많다.

따라서 교육감들은 목표들을 교육감의 권한으로 당장 바꿀 수 있는 것, 직접 바꾸지는 못해도 바뀐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거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 교육감의 권한으로 할 수 없으나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것으로 분류해 두어야 한다. 이 중 당장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시간 끌지 말고, 관료들 눈치도 보지 말며 즉시 이행해야 한다. 비슷한 효과를 내거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정교하게 이행 전략과 로드맵을 수립하여 슬기롭게 처리해 나가야 한다. 교육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13명의 교육감, 가능하면 전국 교육감 일동의 명의로 구체적인 입법안과 제도 개혁안을 국회와 언론에 제안함으로써 전면적 교육개혁에 대한 여론의 압력을 이끌어내어야 한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첫 번째다. 교육감이 조금만 손보면 당장 학교 현장에서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다. 사실 우리나라 학교의 권위주의와 비민주성은 제도보다는 관행에 기반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교사들의 행정잡무 문제만 하더라도 법으로는 그 어디에도 교사가 행정업무를 담당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잘못된 승진경쟁이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사태들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과중한 학업노동과 인권유린에 시달리게 만드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어떤 법령에도 없는 것들이다. 교육감이 조금만 관심과 성의를 가지고 학교 현장의 일반적인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수많은 잘못되고 번잡한 관행과 규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며, 그 대부분은 교육감의 지시사항 혹은 교육청 규칙 개정 정도로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흔히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교육의 수구세력들, 잘못된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워왔던 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마는 바로 디테일에 있다. 물론 잘못된 세력에게 악마는 올바른 세력에게는 천사일 것이다. 그러니 새 교육감들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천사는 디테일에 있다. 그런데 이 천사들은 현장에 오래 있었던 사람들 눈에만 보인다. 그러니 교육감들은 큰 그림과 근본적인 비전을 제시하기 마련인 교육운동가, 교원단체 활동가, 시민단체 활동가의 목소리 대신 그야말로 보통의 학생, 교사, 학부모의 목소리를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귀담아 듣기 바란다.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자에게 디테일이란 천사는 강림할 것이며, 이 디테일 천사의 힘을 얻은 자가 결국 승리할 것임은 박원순 시장의 경우가 충분히 증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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