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명의 진보 교육감이 취임을 앞두고 있다. 2010년, 여섯 명의 진보교육감이 취임하던 당시의 화두가 무상급식이었다면, 2014년, 열 세명의 진보교육감을 당선시킨 화두는 단연 혁신학교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교육감 후보들은 한 결 같이 혁신학교의 설치 및 확대를 공약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반면, 문용린 교육감은 느닷없이 "혁신학교 전면철폐"를 공언했다가 된서리를 맞고 낙선하고 말았다. 이렇게 혁신학교의 위력이 확인되자 보수인사들조차 그 열풍에 동참하였다. 이른바 보수 교육감이라 불리던 설동호 대전 교육감, 그리고 새누리당 소속의 서병수 부산 시장까지 혁신학교 지정 및 지원을 공언하기에 이르렀다.
[관련기사: 경향신문 ‘보수도 “혁신학교” 공교육 대안 인정… 보수 성향 시장·교육감 당선자도 도입 밝혀’]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혁신학교를 확대하려는 교육감이나 지자체장들은 혁신학교의 높은 인기에 휩쓸리다 자칫 혁신학교의 본질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혁신학교의 인기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 혁신학교가 어떤 학교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다른 학교보다 좀 더 나은 학교일 것, 혹은 선생님들의 자발성이 높아 더 열심히 가르치는 학교 정도로 아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보수언론의 선동처럼 전교조 학교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형편이다.

물론 전국의 모든 지자체가 똑같은 혁신학교를 지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혁신학교의 지정과 확대를 공언한 교육감들, 그리고 여기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학부모들은 먼저 자기 지역에서 혁신학교가 무엇이며 어떤 교육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에 대해 우선 합의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으며, 혁신학교라는 이름을 인플레이션의 구렁텅이에 던지지 않을 수 있다.

혁신학교는 그 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저절로 학교가 바뀌는 마법 주문 같은 것이 아니다. 기존의 학교에 ‘혁신학교’ 타이틀을 부여하고 예산을 늘려준다고 학교가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선출직 교육감이나 지자체장들이 학부모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덮어놓고 혁신학교 숫자만 늘리려 든다면 그 폐단은 차라리 아니한 만 못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혁신학교를 먼저 가장 먼저 실시했던 경기도 교육청의 경우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혁신학교 숫자가 많지만 이른바 '무늬만 혁신학교' 혹은 '혁신학교라 쓰고 연구시범학교라고 읽는' 학교들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혁신학교에 대해 모두가 합의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은 무엇일까?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다음과 같은 것들이 공통의 합의점이 될 수 있다. 첫째, 혁신학교는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학교지, 특목고, 자사고와 같은 특별한 학교, 혹은 차별화된 학교가 아니다. 혁신학교는 일반학교와 다른 학교 혹은 더 나은 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가 장차 지향해야 할 학교의 모습을 먼저 실행해 보는 학교다. 이를 위해 혁신학교는 다양한 교육 실험을 실시하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효과들의 장단점을 잘 따지고 정리하여 모든 학교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학교상을 정립하여 보여준다. 역설적이지만 혁신학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혁신학교의 모습이 보편적인 학교의 모습이 되어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둘째, 혁신학교는 흔히 말하는 공부를 잘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다. 오히려 혁신학교는 지금까지 받아들여져 온 공부의 의미를 거부하며,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새로운 공부를 추구하는 학교다. 따라서 학부모는 자녀가 혁신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기존 의미에서의 공부가 더 잘 될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접는 것이 좋으며, 교사나 교육감 역시 혁신학교가 기존 의미에서의 공부에서도 좋은 실적을 올릴 것이라는 이중적인 기대나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혁신학교의 학부모, 교사, 그리고 교육감은 기존의 공부가 아닌 새로운 의미의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지금 당장은 손해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미래를 더 잘 대비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혁신학교는 학생만 공부하는 곳이 아니다. 혁신학교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이며 산실이다. 민주주의는 민주시민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다. 민주시민은 다만 민주주의라는 당위만 되새기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다양한 이견들을 합의하고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여기에 필요한 태도가 습관으로 형성된 사람이다. 이는 실제로 해 보지 않고서는 갖출 수 없는 것들이며, 경험과 훈련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혁신학교는 학교 운영에 학생, 학부모, 교사가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이견을 조정하는 귀중한 경험을 하는 장소, 즉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학습장이 다.

결국 혁신학교는 이런 학교다. 교육 3주체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보장되고 학생의 인권과 책임의 균형이 잘 지켜지는 민주적인 학교, 지식과 정보의 습득, 그리고 경쟁에 기반한 기존의 공부가 아닌, 창조성과 비판적 사고능력, 협력적 문제해결 능력이라는 새로운 공부가 이루어지는 학교, 교사들이 행정적인 규제와 통제에서 벗어나 교육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학교, 모든 학교 구성원들이 보다 나은 삶과 앎을 위해 공동으로 탐구하는 공동체로서의 학교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진다면 그 학교는 혁신학교가 아니라 다만 기존의 연구시범학교의 답습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혁신학교로 지정된 학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너무도 오랫동안 낡은 관행에 익숙해진 우리 학교들은 혁신학교라는 이름표 걸고 예산을 늘려준다고 해서 당장 저런 학교로 변신하지 않는다. 따라서 혁신학교를 지정하고 확대하려면 교육감은 지역의 모든 교육을 함께 바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지시·통제에 익숙한 교육청이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고, 학교의 봉건영주처럼 군림하던 학교장이 학생, 학부모, 교사 에게 결정권을 위임하지 않고, 행정업무와 정책 사업에 허덕이는 교사가 교육자이자 연구자가 아닌 다만 말단 공무원 취급을 받고 있다면 우리 지역의 혁신학교가 100개니, 200개니 하는 것은 다만 숫자놀음에 불과할 것이다. 혁신학교는 모두 바뀌는 가운데 조금 먼저, 조금 더 빨리 바뀌는 학교다. 다른 곳은 그대로인 가운데 몇몇 혁신학교에서만 변화를 기대한다면 그 기대는 마치 신체가 전체적으로 쇠약한데 간장이나 비장만 튼튼할 것을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비현실적인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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