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 교육감 당선자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아무래도 13명의 진보 교육감들 중 수도 서울의 교육을 담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마다 조희연 당선자가 반드시 강조하는 것이 ‘학교 안전’이다. 당선 확정 직후에 가진 첫 인터뷰에서도 "학교의 안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조희연 당선자 "학교안전 최우선..'대통령 퇴진' 교사 징계 '반대'"-이데일리), 각종 방송이나 팟캐스트 등에서도 재난위험 등급의 건물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다면서 이 문제를 가장 시급하게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물론 옳은 말이다.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전국공무원노조 교육청본부 서울교육청지부가 당선자에게 보고한 ‘서울특별시교육청 학교시설 안전상황-긴급.위험시설 해소방안’ 자료에 의하면, 서울 학교건물의 15%가 40년이 넘었고, 15개 학교의 25개동 건물이 재난위험시설(D급)로 분류되어 장마철에 대비한 긴급한 개축, 보수 대책이 요청되고 있다고 한다(장마 앞두고 노후된 학교시설 안전관리 시급-한국NGO뉴스). 여기서 D등급이란 D등급은 주요 부재의 노후화 및 구조적 결함상태가 긴급 보수보강 및 사용제한 여부를 판단해야할 필요가 있는 상태인 시설물을 가리킨다. 이 보다는 덜 심각한 것으로 나왔지만, 서울시 의회 윤명화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의 11개 학교 15개의 건물이 D등급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재난위험시설로 분류된 학교들의 '공통점'-오마이뉴스).

그렇다면 다른 것 따질 것 없이 당장 예산을 투입해 이 건물들을 보수할 뿐 아니라 서울시나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들 건물에 대한 대대적인 개축·신설 공사를 실시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장소가 위험하다는데 좌고우면할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면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학교 건물이 위험해 보수·개축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주로 보수진영이 무상급식을 공격할때 사용됐다. 무상급식 때문에 학교 보수 예산이 부족해 낡고 위험한 건물에서 아이들이 공부하도록 내몰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른바 진보교육감이라면 이 문제를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되며, 무엇보다도 예산을 함부로 여기에 투입해서도 안 된다. 보수진영이 교육계에서 주로 누구를 비호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바로 사학재단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다시 보면 재난위험 시설로 분류된 건물을 보유한 학교들은 단 한 곳을 제외하면 모두 사립학교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놀라운 일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자.
©연합뉴스
 
사실 사립학교라고 해서 시설이 노후하거나 파손이 더 심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런데 유독 사립학교에만 위험한 건물이 집중돼 있다는 것은, 이 문제가 교육청 정책이나 예산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사학 재단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사학 재단이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시설 개보수를 위한 돈을 쓰지 않고 교육청의 지원만 요구했으며, 그렇게 받아낸 예산마저도 학생 안전을 위해 알뜰하게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심지어 위험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사립학교들의 절반은 재단이 학교에 돈을 단 한 푼도 내 놓지 않고 있으며, 나머지 학교들도 하나를 제외하면 학교 운영비의 1% 내외만 내어 놓았을 뿐이다. 그러니 99%~100% 나랏돈으로 운영되고 있는 셈인데, 그러면서도 재단은 학교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사학의 자율성을 운운하고 있다. 막상 돈을 써야 할 상황에서는 그 돈이 학생들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에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나 몰라라 하며 외면한 이들 무책임한 재단들에게 해마다 수억에서 수십억의 혈세가 위험등급 건물의 보수나 개축에 사용하라고 교부되었지만, 이들은 사학의 자율성을 내세워 교육청의 제대로 된 관리감독도 받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돈을 전혀 쓰지 않거나 거의 쓰지 않은 재단이 교육청에 예산을 요구하고, 교육청은 예산을 교부하고서도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하지 못해 그 마저 시설 개보수에 제대로 쓰이지 않은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이들 사립학교의 건물들은 언제 무너져도 신기할 것이 없는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 터진 명문 사립고등학교의 매관매직 사건은 우리나라 사학의 부패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서울 사립학교 교사 자리는 2억: 관련 기사). 그나마 최근 물의를 일으키고 교감이 구속된 학교는 비교적 재단이 건전한 학교로 알려진 학교다. 그러니 부패 비리 재단으로 한 두 번 씩 회자되었던 사학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게 우리나라 사학재단의 수준이다. 이런 재단에게 수억에서 수십억에 이르는 건물 보수, 재개축 예산을 지원하면서 재단이 이 돈을 온전히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너무 순진한 것이며, 그렇게 믿는 사람이 교육청 담당자라면 이는 직무유기다.

결국 학교 건물이 낡고 위험한 문제는 "안전 문제"이기 이전에 "부패 사학 문제"다. 따라서 부패 사학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막대한 안전 예산을 투입하는 일은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한다. 이는 자칫 안전 1을 향상시키는 대가로 부패재단이 4나 5 만큼의 이득을 얻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조희연 당선자는 먼저 위험 건물을 보유한 사학 재단이 적어도 공사비의 30% 정도는 부담하고, 보수·개축 공사의 입찰과 진행과정을 교육청이 직접 관리·감독하겠다는 조건하에서 학교 위험건물 보수·개축에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위험건물은 위험한채로 남고, 국민의 혈세로 부패사학의 배만 불리는 우를 범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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