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에 올 수 도 있는 경영상의 위기’를 근거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내려져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2일 악기제조업체인 콜텍 해고무효 소송에서 고등법원의 이 같은 논리를 그대로 수용해 해고 노동자들의 상고를 기각했다. 사실상 회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콜텍 해고 사건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콜텍 대전공장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회사는 생산물량을 중국, 인도네시아로 이전했다. 이듬해 7월에는 대전공장을 폐쇄하며 해당 공장 노동자 전원을 해고했다. 회사는 ‘생산성 저하에 따른 폐업’이라고 주장했지만 노동자들은 이를 믿기 어려웠다. 

당시 회사는 지속적으로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66억 내지 117억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7년간 평균 순이익은 90.7억 원에 달했다. 2001년 342억이던 자본규모 역시 2006년 625억으로 증가했다.반면 2006년 부채비율은 30.48%에 불과했다. 같은 해 동종업종 평균 부채비율은 168.4%였다.

법원이 지정한 회계사도 지난해 8월 ‘급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없다’는 내용의 감정보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 근거는 △대전공장을 콜텍과 구분되는 독립적인 사업으로 볼 수 없다는 점 △대전공장 손실금액은 콜텍 전체 규모 3.4%에 불과하다는 점 △콜텍의 재무구조와 수익성이 양호하므로 대전공장 영업손실이 콜텍 전체 경영악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지난 1월 서울고법 민사합의1부(정종관 부장판사)는 사측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대전공장의 손실이 회사 전체 경영악화로 전이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대전공장 채산성 악화는 향후 개선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며 “공장폐쇄는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날 대법원은 고등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했다.

이는 근로기준법 제24조에 위배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제24조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은 “사용자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며 “(해당 경우에도)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콜텍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계 전반에 중요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콜텍 노동자 정리해고 대법원 판결 입장 발표 기자회견 모습. 사진=이하늬 기자
 

해고 노동자들의 법률 대리인인 김차곤 변호사는 이날 대법원 기각 판단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회사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도 장래에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위기를 근거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한 판단”이라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어야만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근로기준법은 규범력을 잃었고 해고제한 법리가 무너졌다. 오늘 대법원은 한 걸음 더 후퇴했다”고 비판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공동행동의 랑희 활동가는 “구체적, 수치적 예견이 된다거나 산업계의 변화가 왔다거나 하는 이유도 없었다”면서 “재무구조가 튼튼한 회사의 ‘장래의 위기’에 근거한 정리해고를 인정해준다면 어떤 회사라도 이런 논리를 펴면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랑희 활동가는 “법적으로도 견제하지 못한다면 어떤 노동자가 이 땅에서 자기 미래를 설계하며 살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인근 콜텍 지회장은 “한국법에 분노스럽다”며 “대법원 앞에 자유, 평등, 정의라는 문구가 있지만 노동자, 서민을 위한 것은 아니다. 착취할 수 있는 자유, 자본과 권력만의 평등, 자본과 권력을 위한 정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그래도 법관들의 양심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는데, 그 양심을 자본과 권력에 팔아먹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주심인 고영한 대법관은 이전에도 자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그는 2008년 서울중앙지법 파산1부 부장판사로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맡아 대량해고가 포함된 회생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후 사측의 회계조작에 근거한 해고라는 점이 지적됐고, 고 대법관은 대법관 인사청문회에서 “해고로 유명을 달리한 분이 많다는 점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항상 머릿속에 담고 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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