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교육감의 임기가 거의 다 되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육학자였음에도 1년 반짜리 단명 교육감으로 끝나고 말았다.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교육이 진보와 보수의 두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또 초중등교육계 외부 인사들이 함부로 건드리면 큰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면 좌우 두 날개를 모두 움직일 수 있고, 교육적 관점에서 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그의 잘못된 행보가 더욱 애석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문용린 교육감은 은사나 마찬가지다. 출신학교의 교수였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 그가 쓴 논문이나 번역한 책으로 많은 공부를 했고, 또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새로운 교육의 인지과학적, 심리학적 정당화 근거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가뭄의 단 비 같은 돌파구를 제시해 주었다. 그래서 그 동안 날카롭게 비판하되 과격한 용어는 삼가 했었다. 그가 뜻밖의 치졸하고 편향된 선택을 할 때마다 앞섰던 감정 역시 분노보다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는 세 가지 중요한 교육학적 업적을 남겼고, 이는 모두 교육혁신을 꿈꾸는 교육자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첫째는 도덕성 발달이론이다. 이는 인성교육이 중요한 교육영역으로 자리잡는데 기여하였다. 둘째는 칙센트미하이의 '몰입(FLOW)' 이론을 교육에 도입한 것이다. 이는 그 동안 학습이냐 행복이냐 양자택일에서 고민하던 교육자들에게 학습과정에서 행복감을 고취시킬 방편을 마련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셋째는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을 소개한 것이다. 이는 전면적 발달, 전인교육에 대한 강력한 이론적 근거가 되어주었고, 영어, 수학, 과학에만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자하는 교육계에 경종을 울렸다.

문용린의 저서를 읽은 교육자들은 인지적인 것에 매몰되었던 학습의 목표를 인성, 행복, 그리고 다양한 능력의 발달로 확장시킬 수 있었다. 혁신학교를 주도한 진보교육자들 중 도덕성발달이론, 몰입이론, 다중지능이론 관련 책과 논문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2012년 교육감 보궐선거 때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이수호 대신 문용린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는 교사출신을 자처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노동운동가, 정당 활동가로 보였던 이수호 후보에 비해 그가 비록 보수후보로 나왔지만 교육전문성, 식견에서 더 탁월해 보였고, 또 교육학적 배경이 고루하지 않고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다.

   
▲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사진=이치열기자
 
실제로 임기동안 문용린 교육감은 영리하게 행동했다.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처럼 곽노현 표 정책으로 보수진영에게 두드러지게 알려진 정책들에 대해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집토끼를 지켰지만 그렇다고 조례를 전면 폐지한다거나 혁신학교를 폐쇄한다거나 하는 식의 무대포 공격은 삼가고, 합리화, 내실화 등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중도파를 안심시켰다. 도리어 문예체 교육 활성화나 학교폭력 예방, 진로탐색학기(곽노현은 10일 정도 실시했는데 한 학기로 전면 확대)와 같은 알려지지 않은 곽노현 표 정책은 오히려 더욱 강화했다. 공정택 시절의 국영수 몰입교육, 입시반, 내신반 방과후 학교 확대 따위의 정책과도 선을 그었다. 뉴라이트와 동조하지도 않았고,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치지도 않았다. 어느 모로 보나 문용린 교육감 시절 서울교육의 모습은 공정택 시절보다는 곽노현 시절에 차라리 더 가까웠다.

그런데 선거를 얼마 앞두고 문용린 교육감이 엉뚱한 행동을 보여주었다. 바로 67개 혁신학교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본격적인 우향우 행보를 강화한 것이다. 더구나 조전혁 등의 극우주의자와 보수교육감 공동 성명 따위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순간 그가 그동안 조심스럽게 쌓아왔던 교육학자로서의 이미지, 중도적인 이미지는 무너지고 수구우익의 모습만 각인되고 말았다. 고승덕 후보가 느닷없이 약진하면서 느꼈을 초조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나 이 선거는 정치인의 선거가 아니라 교육감의 선거다. 당장의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굳건하게 교육적 소신을 지키면서 교육전문가의 모습을 품위있게 보여주었더라면 과연 조희연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는 상대 후보와 그 딸이 엉켜 싸우는 상황에서 “남의 가족사를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라는 교육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대신 함께 뒤엉켜 교육감 선거를 아사리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가 한국 교육학의 태두급이라는 점에에서 그의 이런 추한 모습의 패배는 수많은 교육계 후배들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선거에서 진 것보다 더 애석한 것은 교육계 전체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될 문용린 교육감은 교육계 후배들에게 이 마음의 빚을 갚기 바란다. 그 길은 잠깐 정치판에 경도되어 본분을 잃었던 과거를 깊이 성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남겨놓은 미완의 행복교육론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것이 교육계의 태두로서 후배들에게 남겨놓은 깊은 상처에 대한 속죄의 길이 될 것이다.

또 장차 보수교육감을 꿈꾸는 예비후보들은 문용린 교육감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교육에 지나치게 이념을 끌고 들어오는 일을 삼가고, 조전혁 같은 극우주의자와 함께 보수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일을 피해야 할 것이다. 오직 교육적 진정성, 고집스러운 교육 외길, 이런 것이 보수교육감의 미덕이 아니겠는가?

보수교육감이 될 수 있었으나 끝내 수구교육감으로 퇴장하는 문용린 선생님을 위해 그래도 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동안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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