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8일 저녁, 안산 고대병원 장례식장 로비가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조문을 왔다던 여성이 기자인 게 밝혀지면서였다. 사망 학생 유족은 “(조문) 필요 없으니 돌아가라”고 말했다. 해당 기자는 “진심으로 조문을 하고 싶어서 그런다”고 답했지만,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이 기자에게 돌아왔다. 기자는 울고 있었고, 결국 조문은 하지 못했다.

#2. “언론의 취재 경쟁을 어떻게 보세요?” 미디어오늘 기자가 단원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다가갔다. 학생들은 친구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성난 목소리가 돌아왔다. “기자인 거 아는데요. 기분 더러우니까 그만해요.” 그때 뒤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학생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사진 찍지 말라고요.”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이후,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사고 발생지인 진도는 물론이고 생존학생과 사망학생 빈소가 있는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 병원측은 기자들에게 수차례 취재 자제를 당부했다. 좋지 않은 기억을 상기시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생존 학생 부모들도 22일 대국민 호소문에서 언론을 비판했다. 이들은 “지금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냐”며 “신속한 작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저 속보경쟁에 열 올리며, 오보를 내기 일쑤이고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과도한 취재 경쟁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더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존 학생 부모들은 아이들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전했다. 이들은 “아이들은 창문을 바라보다 물이 들어올까 덜컥 겁이 난다고 한다”며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 안정”이라고 말했다.
한 생존 학생 학부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병원이 통제를 하는데도 일반인처럼 슥 들어온다”며 “아이들은 언론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이가 막 구조돼서 담요를 뒤집어쓴 채 울고 있는데 기자들이 카메라를 갖다 댔다”며 “아이가 ‘카메라 치우라’며 심하게 화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조되자마자 어떻게 번호를 알았는지 전화가 와서는 인터뷰를 하면 돈을 주겠다는 말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기자에게 나가라고 하니 ‘국민의 알권리’라고 답했다”며 “알권리는 인정한다. 하지만 올바른 언론이었을 때 국민의 알권리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데서나 알권리를 찾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민간잠수부를 못 들어가게 하고, 무려 4시간이나 구조가 중단되기도 했다”며 “이런 내용들은 언론에 하나도 안 나온다”고 답답해했다.

이에 대해 안산 현장에서 만난 경제지 A기자는 “초기 잘못된 대응이 극심한 불신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원론대로라면 취재원이 기자를 믿고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지금은 신뢰를 잃었다”며 “사고 초반의 ‘전원구조’ 대형 오보, ‘친구 죽은 거 아냐’는 JTBC의 질문, MBN의 홍가혜 인터뷰 등 큰 문제가 터지면서 언론불신이 극에 달했다”고 평가했다.

가이드라인의 부재도 지적됐다. 인터넷매체 B기자는 “조문객인척 빈소에 들어가거나 민감한 질문 등은 고쳐야 하는데,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의문”이라며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지 C기자는 “생존 학생에게 ‘실종된 친구들 소식은 들었나’ ‘지금 기분이 어떤지’를 묻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답은 하나다. ‘슬프다’다. 기자들이 울컥하게 만들려고 하는 부분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자들은 억울한 부분도 있다고 호소했다. B기자는 “전원구조 오보는 정부 잘못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재난현장에서 기자들은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밖에 없다. 또 당시 단원고가 학부모들에게 전원 구조 문자까지 보낸 상황이어서 대형 오보가 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은 속보 경쟁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인터넷매체 D기자는 “초기에 공중파 방송에 한 줄 속보들이 떴다”며 “나중에 오보로 밝혀졌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기자들도 회사에서 시달린다. 또 자신도 모르게 휩쓸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A기자도 “속보보다는 사실확인이라는 원칙이 있지만, 현장에 있으면 속보경쟁에 동화됨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B기자는 “생존자, 유족 취재가 쉽지 않다. 하지만 구조적인 측면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며 “그래서 힘들더라도 취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모든 언론이 거짓말을 한다거나 정부 통제아래 있다는 주장은 억울하다”며 “실종자 가족의 주장을 보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접근하다보니 시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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