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 수색 작업이 사흘째로 접어들었지만 생존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밤을 지새며 혹시나 모를 생존자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그 역시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팽목항에서 19일 새벽 1시경 짙은 어둠 속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담배 한 개피를 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빼적 마른 몸에 초췌한 얼굴만 봐도 한 눈에 실종자 가족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안산에 거주하고 있지만 전국에 있는 건설 현장을 돌며 일을 하고 있었다. 16일 서씨는 새로 짓고 다리 건설 현장인 진도에 내려와 있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 없었다. 일을 하고 점심을 먹으려는 찰나였다. 서씨는 다리 위에서 구급차와 소방차 등 무수히 많은 차량이 진도 쪽으로 향하는 도로로 진입하는 것을 보고 '무슨 큰 사고가 터졌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안산 단원고에 다니는 조카가 수학여행을 떠났는데 선박 사고가 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퍼뜩 다리 공사 현장에서 지켜본 차량의 행렬이 생각났다.

다행히도 정부 발표엔 학생 전원 구조라는 소식이 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도 전화 통화에서 무사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때까지 만해도 서씨는 조카가 실종자 명단에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 19일 새벽 진도 팽목항
 

세월호에 빠져나온 구조자가 온다는 팽목항으로 한 걸음에 달려왔다. 조카의 안전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배에서 내린 구조자)숫자가 70~80명 들어왔나. 부두에서 배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는데 아무리 찾아도 제 조카가 없더라구요. 잠깐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차로 돌아왔어요. 근처에 소방방재청장이 있길래 들어오는 구조자가 몇명이냐고 물어봤죠. 들어올 인원이 200명이라고 하더라구요"

철렁 가라앉았다. 전원 구조인 줄 알았는데 실종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200여명의 구조자 중에 조카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카가 살아있다'는 말이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듯 했다.  곧바로 부두로 돌아왔다. 팽목항에 도착한 배에서 내린 구조자 중 조카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조카를 찾아나섰다.

하지만 조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00여명 구조자가 배에서 내릴 것이라고 했는데 팽목항에 도착한 구조자도 70~80명이 전부였다. 배에서 내리는 구조자들 중에 학생이 아닌 어른도 많이 포함돼 있었다. 서씨는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07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가 수시간 뒤에 생사 파악이 안된 숫자가 290여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서씨는 "아무리 둘러봐도 (70~80명) 그게 끝이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도 충분히 파악될 수 있는 구조자수를 어떻게 헷갈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서씨는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에 따라 '살아있다'는 믿었던 조카가 칠흑 같은 바다에 있다는 것을 믿기 싫은 듯 했다. 

동생의 한명 뿐인 조카였다. 동생 집에 자주 왕래하지 않았지만 명절 때 조카가 부쩍 커가는 것을 지켜봤다.

‘당장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3일 전까지만 전원 구조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조카를 기다렸는데...’

서씨는 정부 대응과 언론에 대한 불신을 묻는 질문에 힘없이 "별로 할 말도 없다"고 말했다. 더 이상 질문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서씨는 말없이 땅을 바라봤다. 그리고 서씨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19일 새벽 밤 간간히 실종자 가족들의 울음이 들려왔다. 슬피 우는 소리가 아닌 통곡하는 소리였다.
 

   
▲ 진도 팽목항에서 바라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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