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이란 사자성어는 바로 이럴 때 사용하는가 보다. 갑작스런 세월호의 침몰. 재깍재깍 시계의 초침이 시간을 밀고 가면 갈수록, 사망자와 실종자 가족들과 친구들의 마음이 타들어가고 있다. 이들을 안타깝게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도 사망자에 대해 애도하며, 나머지 실종자들의 구조소식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지역도 정치적성향도, 지위고하도 모든 처지와 조건을 떠나 국민들 그 누구라도 지금 한마음이다. 그런 한마음을 가진 국민들 속에는 남재준 국정원장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사고 앞에 국정을 운영하는 주요 공직자로서 또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희생자가 없기를, 빨리 구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기관인 국정원이 도울 일이 별로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분명 그럴 것일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장
 
하지만, 그의 이 같은 마음과는 반대로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가장 큰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세월호 참사가 있기 바로 전날 국정원의 ‘간첩증거조작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치렀다. 그러나 국정원의 수장으로서 책임져야 할 그의 입에선 퇴진하겠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의 부하인 서천호 제2차장에게만 모든 책임을 지우고 사퇴하게 했다. 보수언론들조차 납득할 수 없는 행보라며, 남 원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세월호 참사 소식이 알려지기 전까지 그는 사실상 버티기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국정원 증거조작사건 보도, 61개(15일)→69개(16일)→9개(17일)→1개(18일) 

하지만 세월호 사건으로 반전이 일어났다. 그에게 쏟아졌던 국민과 언론의 시선이 그에게 머물 만큼의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는 그런 점에서 이번 비극의 수혜를 입고 있다. 실제로 최근 신문과 방송의 보도를 분석해 보면 실제로 남재준 국정원장은 명백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16일 직전에 발행된 15·16일자 일간신문과 14·15일자 지상파방송 3사 메인뉴스와 세월호 사건 발생 후 16·17일자 보도를 비교해보면, 국정원 간첩증거조작사건에 관한 뉴스들은 그 양과 질에서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만큼 큰 차이가 나타났다.

국정원 간첩증거조작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발표가 있던 다음날인 15일자(석간은 14일자)신문과 남재준 국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발언이 있었던 16일자(석간은 15일자) 10개 종합 일간지를 분석해보면, 15일자엔 7개 일간지의 머리기사, 3개 일간지의 1면 부톱기사, 관련 기사 41개, 사설 및 칼럼이 11개가 게재됐다. 16일자에도 7개 일간지의 머리기사, 2개일간지의 부톱기사, 관련기사 53개, 사설 및 칼럼 7개가 국정원 관련 내용이었다. 양적으로 보더라도 국정원의 간첩증거조작사건에 대한 압도적인 관심이 있었다. 진보 성향의 신문들뿐만 아니라, 중앙·동아 등 보수 성향의 신문들까지 일제히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16일부터 완전한 반전이 나타났다. 4월 17에는 10개 일간지 중 6개 일간지에서만 관련 기사 8개와 사설 1개만 게재됐을 뿐이다. 한국일보가 유일하게 ‘간첩증거조작 후폭풍’이란 제목의 기획 면으로 주요하게 편집했다. 4월 18일에는 10개 일간지 모든 지면을 통 털어 국정원 간첩증거조작사건에 대한 기사는 한겨레신문의 사설 ‘남재준원장이 무슨 공로고 많다는 말인가’ 1개밖에 없었다. 방송뉴스도 마찬가지 패턴이 드러났다. 14일과 15일에는 MBC뉴스데스크와 SBS 8시뉴스가 각각 첫 번째와 두 번째 기사로 국정원의 간첩증거조작사건에 대해 보도했다. KBS는 14일엔 16·17번째 기사로, 15일엔 첫번째와 두번째 기사로 방송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16일 이후 16일·17일 방송 3사뉴스에서 국정원 증거조작 관련 소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17일 오전 전남 진도 해안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이 목포경찰서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지난 4일간 신문과 방송 보도의 이 같은 급격한 차이는 전적으로 단원고 학생 384명을 포함한 475명의 목숨이 달린 세월호 사건의 중대성 때문이다. 이 엄청난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에 취재 인력과 관심을 집중시키지 않을 언론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그 누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간첩증거조작사건으로 위기에 내몰렸던 국정원과 남재준 원장은 세월호사건으로 인해 쏟아지던 여론의 화살으로부터 비켜서게 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파장으로 볼 때 당분간 국정원과 남재준 원장은 한숨을 돌릴 게 분명해 보인다.

책임지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조직의 리더.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고질병

하지만 우리사회는 남원장과 국정원이 세월호 참사의 수혜자로 결코 남겨둬선 안 된다. 간첩증거조작사건이 ‘국기’를 문란케 한 사건이란 점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다. 세월호 사건과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의 과정에선 공통점이 발견된다. 두 사건 모두 책임을 져야할 조직의 ‘장’은 비겁하게 살아남고, 그 잘못된 리더십을 따른 조직원과, 그의 역할에 몸을 맡겼던 사람들은 희생당했다는 공통점이다. 부하 승무원은 승객들을 구하려다 죽고, 그 승객들도 빠져 나오지 못했는데, 선장은 먼저 빠져 나왔다. 위급한 상황에서 끝까지 배를 지켜야 할 책임자가 제 한 몸 지키기 위해 부하직원과 승객을 버렸다. 간첩조작사건에 대해 본인은 몰랐다며, 자신은 책임지지 않고 부하 직원만 희생양으로 삼은 남재준 국정원장과 이준석 선장은 닮아있다.

‘공동체의 운명’을 책임진 리더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는 공동체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나몰라라 ‘아랫사람’이나 ‘실무자’만 희생시키는 교묘한 처신술이 기승을 부리는 이런 나라와 사회에선 언제나 문제는 되풀이된다. 책임지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조직의 리더. 우리사회에 만연해 있는 고질병 가운데 하나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세월호 사건을 반사이익을 보아선 결코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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