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실린 제라드 베이커 <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과의 인터뷰 기사는 짧지만 인터뷰 기사의 묘미를 잘 보여준다. 또 신문과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시사점도 적지 않다.

인터뷰는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베이커 씨, 당신은 5명의 딸을 두고 있는데, 요즘도 딸들의 진로와 관련해 저널리즘 쪽 일을 권유하겠는가?

사적이지만 신문, 혹은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묻는 공적인 질문이다.

그의 답변은 단호하다.

“물론이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좋은 직업은 그리 많지 않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아주 밝고, 사회에 크게 기여하는 직업이다.”

“지금처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에 대한 요구가 큰 때도 없었다”

   
▲ <슈피겔>의 제라드 베이커 편집국장 인터뷰 기사. 제랄드 편집국장은 종이신문의 미래는 없을 지 모르지만, 저널리즘은 여전히 매력적인 비즈니스라고 강조했다. 그는 바로 그 저널리즘 때문에 인터뷰 내낸 힘든 답변을 해야 했다.
 
다음 질문은 보다 구체적이다.

-신문의 구독 부수와 광고는 몇 년 째 내리막길이다. 특히 미국에서 그렇다. 오늘날 신문 사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돈 많은 부자 뿐인 것 같다.

지난해 <워싱턴 포스트>를 매입한 제프 베조스 아마존 설립자, <보스턴 글로브>를 사들인 존 헨리, 수 십 개의 지역 신문을 소유하고 있는 워렌 버핏 등을 두고 한 질문이다.

“이들의 투자야말로 저널리즘이 사양사업, 죽어가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 아니겠느냐. 그들은 ‘뉴스’의 가치가 여전하다는 점을 믿고 있다. 또 디지털이 그 미래가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디지털로 넘어가는 추세를 외면하고 과거 종이신문 그대로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저널리즘 자체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대로 지금처럼 신뢰할 수 정보에 대한 요구가 강한 때도 없었다. 제프 베조스 같은 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신문과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한 일반론. 곧 이어 투자자와 저널리즘의 ‘복잡한 상호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 새로운 언론 부호들이 과연 수익성만 노리고 투자했다고 보는가. 사회적 영향력이랄까, 자신의 이미지 구축이랄까 그런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베조스나 버핏의 속마음까지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또 내가 직접 듣기도 했지만, 그들이 단지 허영심 때문이랄까 혹은 전혀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이유 때문에 투자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질문은 곧 ‘핵심’으로 이어진다.

- 이들 새로운 언론 사주들은 7년 전 뱅크로프트 가문으로부터 월스트리트 저널을 사들인 루퍼트 머독과는 다르다고 보는가?

머독은 호주 출신으로 호주와 영국, 미국 등지에 수많은 신문과 방송을 거느린 미디어 재벌이다. 뉴스코프라는 미디어그룹을 앞세워 영국과 미국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우파 방송 <폭스뉴스>도 그의 소유다. 그의 신문과 방송은 선정적인 보도로 유명하다. 뉴스코프의 영국 타블로이드 잡지인 ‘뉴스오브더월드(NoW)가 납치된 소녀는 물론 유명 인사들의 전화 도청 사건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며 영국 의회 청문회에 서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2007년 미국의 대표 신문 가운데 하나인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하기로 하자 미국 언론계에 큰 파문이 일었다. 당장 보수적이고 친시장적인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자와 편집자들부터 머독의 인수에 반대하고 나섰다. 뱅크로프트 가문이 편집권을 보장해준 반면 머독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그럼에도 ‘돈의 힘’은 막강했다. 머독은 기존의 편집진의 고용을 보장하고, ‘편집위원회’를 구성해 편집권을 존중한다는 조건으로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할 수 있었다.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의 편집국장으로서 <슈피겔> 기자의 질문 꽤 난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를 간명하게 짚고 넘어갔다.

“(새로운 언론 사주들과 머독의 차이는) 간명하다. 루퍼트 머독은 60년 동안 저널리즘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온 사람이고, 또 비즈니스에서 성공의 기록을 쌓아 온 사람이다.”

“머독이 인수한 후에 퓰리처상 2개 밖에 받지 못했는데…”

<슈피겔> 기자는 그러나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다.

- 머독은 지난해 33개의 지역 신문을 팔아치웠다. 이들 지역신문들이 더 이상 회사의 전략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과연 <월스트리트저널>은 언제까지 뉴스코프의 전략에 들어맞을 수 있을까? 머독은 이미 TV와 영화 사업 부문을 뉴스코프에서 분리하기도 했다.

뉴스코프는 지난해 기업을 분할했다. 신문과 출판을 담당하는 ‘뉴스코프’와 방송과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부문의 ‘21세기 폭스’로 쪼갰다. 수익성 위주로 사업 영역을 나눈 것. 머독의 가차 없는 수익성 위주의 사업 방식으로 볼 때 <월스트리트저널>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반문인 셈이다.

“루퍼트 머독은 자주, 또 공개적으로 다우존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회사의 핵심적 중심이라고 말해 왔다. 실제로 규모로 보거나 전 세계적인 영향력의 측면에서나 월스트리트저널은 9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회사(뉴스코프)의 주축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모법 답변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편집국장으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슈피겔> 기자의 질문은 그러나 계속 이어졌다.

-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을 어떻게 바꿔놓았나.

“우리는 보다 나은 신문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독자가 더 늘었고, 정치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패션, 문화 등의 지면도 확대됐다. 새로운 섹션을 신설하고, 잡지도 새로 창간했다. 물론 비즈니스와 금융 분야에서의 우리의 강점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온라인 유료 가입자 수도 계속 늘고 있다. 우리는 보다 생생하고 흥미로우며 빠른 뉴스를 전하고 있다. 반면 과거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볼 수 있었던 장문의 긴 기사는 줄었다.”

머독이 인수한 이후 <월스트리트저널>의 변화를 나름 간명하게 소개했다. 머독은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한 직후 ‘잘 읽히는 기사’를 많이 실을 것을 주문했다. 정치와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지면이 대폭 늘어났다. 베이커 편집국장의 말처럼 반면 깊이 있는 장문의 해설과 분석 기사는 크게 줄었다. <슈피겔> 기자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 비판론자들은 머독이 인수한 지난 7년 동안 월스트리트저널이 단지 2개의 퓰리처상 밖에 받지 못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날카롭고, 아픈 질문이다. 답변도 시니컬하다.

“나는 저널의 성공 여부를 퓰리처상을 얼마나 받았느냐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퓰리처상)이 저널리즘의 질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 쯤 되면 인터뷰를 계속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기자도 긴장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였을까. 그 후의 질문은 제프 베조스의 투자로 자금 여유가 생긴 <워싱턴 포스트>나 <폴리티코>, 혹은 이베이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디에르와 ‘스노든특종’으로 유명한 글렌 그린월드가 손을 잡고 만든 인터넷 신문 <인터셉트> 등의 활약이 <월스트리트저널>을 위협하지 않겠느냐는, 다소 평이한 질문들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마지막 송곳질문이 나온다.

6개월 전 발언 들어 “왜 당신은 악마와 거래를 했나?”

   
▲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3월부터 인터넷 판 등에 게재하기 시작한 기사형 광고.
 
- 미국 신문들은 지난 6년 동안 광고가 무려 50%나 줄었다. 광고주들의 요구도 더 노골적이 되고 있다. 최근 광고의 동향 가운데 하나는 이른바 ‘기사형 광고’다. 6개월 전 당신은 이런 광고를 ‘파우스트 거래’라고 했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저널>은 지금 바로 이런 광고를 게재하고 있다. 왜 당신은 그런 (악마와의) 거래에 들어갔는가?

파우스트 거래란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한 거래를 말한다. 악마가 파우스트에게 이승에서의 인생을 마음대로 살게 해주는 조건으로 저승에서는 그에게 몸과 영혼을 다해 봉사하기로 한 약속. 베이커 편집국장은 ‘기사형 광고’는 바로 언론의 영혼을 광고와 바꾸는 거래라고 말했던 것.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3월부터 인터넷판 등에 ‘기사형 광고’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기자의 질문에 그는 뭐라고 답했을까?

“내가 전에 한 말은 기사형 광고에 위험부담이 있다는 말이었다. 새로운 광고 매출을 위해 광고와 저널리즘의 경계를 애매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신뢰를 잃고 독자들 또한 잃게 될 것이다.”

역시 가정법을 동원한 모범답변. 기자는 더 분명한 답변을 요구했다.

- 당신이 말한 것처럼 기사형 광고가 저널리즘과 광고의 경계를 애매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계속 미끄러지는 비탈길 같은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 독자가 광고와 우리가 제공하는 정보를 혼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기사형 광고를 취급할 때 다루는 분명한 원칙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우리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토록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신문과 저널리즘의 미래를 주제로 한 인터뷰이자, 저널리즘이 왜 앞으로도 전망이 있는가를, 또 저널리즘이 어때야 하는지를, 짧지만 잘 보여준 인터뷰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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