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창간한 미국의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는 현재 방문자 기준 세계 1위 뉴스 서비스다. 점점 많은 독자들이 기존 언론사가 아닌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또한 뉴스 소비 형태의 변화에 따라 뉴스의 정의와 기자상도 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미비하지만 한국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스타트업이 디지털 뉴스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한국의 미디어 스타트업을 만나본다. <편집자주>

‘Fast is Good, Slow is Better’이라는 슬로건을 단 언론이 있다. 속도가 생명인 시대에 대안 미디어로 주목받는 슬로우뉴스다. ‘느린 뉴스’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이지만 슬로우뉴스는 성찰하는 느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빠른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죠. 하지만 그 속도 속에서 잃어버리는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더 풍부한 맥락, 더 깊은 성찰, 이미 잊혀진 것으로부터 이어진 큰 흐름과 연결, 기타 많은 것들 말이죠. 이제 잠깐 숨을 고르고, 자신과 세상을 찬찬히 되돌아 볼 때입니다.”

슬로우뉴스의 창간은 속보 경쟁이 한국 언론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사실 여부를 검증해야 하는 언론이 속도 경쟁에 매몰되면서 오히려 오보를 확산하는 주체가 됐기 때문이다. 언론의 제목낚시, 선정보도, 베껴쓰기와 포털이 장악한 ‘뉴스 유통구조’ 그리고 이런 뉴스를 선호하는 독자의 소비 행위가 한국 언론에 ‘클릭 저널리즘’이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 슬로우뉴스 ⓒ슬로우뉴스 누리집
 

슬로우뉴스는 1인 미디어인 블로거들이 만들었다. 각자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던 이들은 2008년 힘을 모아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처음엔 ‘블로그래픽’이라는 팀 블로그를 구상했으나 지지부진해지면서 실험에 그쳤고, 수년 후 새로운 논의 끝에 블로거 15명이 2012년 3월 26일 슬로우뉴스를 창간했다. 현재는 내부 편집위원 20명, 외부 초대필자 100 여명이 자발적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하루에 게재하는 기사는 대략 3개 정도다.

운영주체인 편집위원의 직업은 다양하다. 민노(필명)와 같은 전업 블로거부터 이정환, 최진주 등 기자도 있고,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 등 미디어 학자도 포함되어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써머즈) 등 IT(정보통신기술) 전문가도 다수 참여하며 들풀, 캡콜드(김낙호) 등 외국에 거주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랫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며 미디어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슬로우뉴스의 카테고리를 보면 구성원들의 주요 관심사와 창간 목적을 알 수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로 이어지는 기존 언론과 달리 미디어, 정치, 사회, 테크 순서다. 미디어를 가장 먼저 배치했고, 다른 분야에 비해 기사도 가장 자주 올라온다. 오보 확인, 보도비평부터 언론에서 사라진 기사를 찾아주는 등 뉴스 이면의 이야기나 숨겨진 맥락을 짚어주기도 한다.

창간 직후 슬로우뉴스는 창간특집으로 ‘미디어와 속도의 문제’를 다뤘다. 편집위원들은 토론을 통해 한국의 미디어 환경에 대한 질문을 서로에게 던졌고, 이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각자 기사로 풀어냈다. 캡콜드는 “속보와 특종은 과장됐다”고 지적했고, 현직 기자(이정환, 엔디)들은 기존 언론의 특종경쟁과 오보 사례를 정리해서 보여줬다. 한의사 임예인은 ‘엉터리 의료기사들‘ 기사에서 “주요 언론의 의학 관련 보도조차도 그에 어울리는 전문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굳이 언론 전문가의 평가를 빌리지 않더라도, 슬로우뉴스 기사는 독자들에게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네이버 등 포털과 기사제휴를 맺지 않아 기존 언론에 비해 페이지뷰(PV)는 매우 적은 편(월 40만 수준)이다. 그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추천, 공유되는 횟수는 기존 언론의 추종을 불허한다.

 

 

 

 

   
▲ 들풀이 지난해 11월 쓴 ‘종북 셀프 테스트!’(18일 오전 10시 기준, 15만 PV)는 페이스북에서만 2만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슬로우뉴스 누리집 갈무리
 

들풀이 지난해 11월 쓴 ‘종북 셀프 테스트!’(18일 오전 10시 기준, 15만 PV)는 페이스북에서만 2만개가 넘는 ‘좋아요’를 받았다. PV는 적더라도 ‘좋아요’가 3천~4천 이상을 받는 기사도 다수다. 지난 3월 게재된 ‘영작문을 위한 유용한 웹사이트 모음’(김성우) 기사는 5333개의 ‘좋아요’를 받아 전체 PV(2만6259)의 20%를 차지했다.

아직 포털과 기사 제휴를 맺지 않은 슬로우뉴스의 뉴스 유통 전략은 SNS 특화와 구글 검색엔진최적화(SEO)다. 특히 SNS 뉴스피드에서 바로 볼 수 있게 만들어진 ‘슬로우카드’는 이미지 안에 글과 사진을 조합한 ‘이미지 기사’다. 슬로우뉴스는 웹 사이트에는 게재하지 않고, SNS에서만 유통하는 슬로우카드를 별도로 제작하고 있다. 내부 콘텐츠를 활용하기도 하지만, ‘스팸문자신고 방법’을 소개하거나 해외 연구결과를 요약하는 등 유용한 정보를 담아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슬로우카드’를 기획한 상근 편집위원 써머즈는 “SNS 이용자들은 글보다 이미지를 더 많이 본다”며 “일반(글로 구성된) 링크기사 보다 도달률이 두 배 더 높다”고 설명했다. SNS 유입률이 높은 만큼 모바일 기기를 통한 유입비중도 높아졌다. 써머즈는 “지난해 11월에는 모바일 유입비중이 55%정도였는데, 올해 들어선 과반을 넘어 70%까지 됐다”고 말했다.

 

 

 

 

   
▲ SNS용으로 제작되는 슬로우카드 ⓒ슬로우뉴스
 

‘잊혀질 소리를 찾아서(잊소리)’ 등 독특한 콘셉트의 연재와 특집도 눈에 띈다. ‘잊소리’는 뉴스의 홍수 속에 ‘잊히기 전 좀 더 기억할 만한 말’을 짚어주는 콘텐츠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해 "4는 어감이 좋지 않아 3개년 계획으로 했다"고 말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발언이나, 반복된 구설수에 대해 "인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의 발언 등이 ‘잊소리’로 뽑혔다.

온라인에서 블로그를 기반으로 탄생한 언론이라는 점은 장점이면서도 한계로 작용한다. 지난해 유한회사로 법인등록은 했지만 상근 편집위원은 민노와 써머즈 두 명이다. 별도 사무실이 없어서 이들도 각자의 공간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 편집과 운영회의는 모두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민노 편집장은 “슬로우뉴스는 합의체다. 페이스북 비밀그룹에서 편집위원들이 상시적으로 기사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으며 편집을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직까진 안정적인 수익모델이 없다. 편집위원들이 월 2만원씩 운영비를 내고 있으며, 외부에선 구글 애드센스 광고수익과 비상시적인 기부금이 전부다. 상근자 두 명도 창간 1년여가 지난 지난해부터 월 10만원씩 월급을 받고 있다. 민노 편집장은 “초대 필진들에겐 고마움의 표시로 상징적인 액수의 원고료를 지급한다”며 “아직 의미있는 수익 구조는 없지만 마련하려는 논의 중이다”고 말했다.

 

 

 

 

 
   
▲ 민노 편집장 ⓒ민노
 
“쓰레기가 쓰레기를 덮고 있다. 이래도 좋은가?”
[인터뷰]민노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 편집장은 지난 1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속보성 기사가 쏟아지는 언론환경에 대해서 “쓰레기가 쓰레기를 덮고 있다”고 비판 한 후 “언론이 갖는 역사성, 저널리즘이라는 가치는 19세기든, 23세기이든 존재해야 하고, 존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민노 편집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슬로우뉴스는 미디어 스타트업인가?
비즈니스 필드의 스타트업 관념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쟤네는 뭐 먹고 사나 궁금할텐데. 상근 편집위원들은 1년 전 쯤부터 월급 10만원을 받고 있다. 편집위원들은 월 2만원씩 회비를 내야 한다. 상근인 나와 써머즈님을 제외하고 나머지 편집위원들은 슬로우뉴스가 '퍼스트 잡'은 아니다. 느슨한 조직이라 유연한데 그게 한계이기도 하다.

- 편집 시스템을 설명해 달라.
공동 편집인 시스템이다. 내가 편집장이지만 권한이 더 강한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권한의 사용 횟수가 많기는 하다. 나도 글을 쓰지만 가장 많이 '킬' 당한다. (편집위원들이) 서로가 수평적인 동등한 관계다. 서로 의견을 나눠서 '논리적 구성에서 빈틈이 있다'는 의견 한두 개만 나와도 보류한다. 보류는 보강해야 한다는 얘기다.

- 회의는 어떻게 하나.
철저히 온라인 기반으로 운영됐다. 주로 페이스북 비밀그룹에서 한다. 정기 회의는 없고 상시적으로 한다. 매일 안건을 올리면 각자 의견을 나누는 방식이다. 최근엔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보면서 회의하는 것도 가치 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오프라인으로 운영된 적은 없다.

- 트래픽(페이지뷰) 추이는 어떤가.
하루 1만~3만 사이다. 이번 달은 50만~60만까지는 나올 것 같다. 폭발적으로 오르진 않았지만 계속 성장 중이다. 트래픽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미디어를 하는 사람으로서 초연할 수도 없다. 그러나 트래픽이 1순위는 아니다.

- 슬로우뉴스는 대안 미디어인가.
스스로 그렇게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냥 미디어다. 내 의견은 여러 의견 중에 하나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지금 지상파 뉴스가 파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9시 뉴스를 보는 시청자들이 나와 같은 처참함을 느낄 것이다. 아직은 대표 격인 미디어의 어떤 쪽팔림을 목격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의 가치를 크게 느끼지 못하는 시대에 돌입했다.

(슬로우뉴스가) 지상파 영역을 대체할 수 있는가? 그렇진 않다. 여러 미디어가 검색어 기사를 쓰고,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생각을 여과없이 내보내고 있다. 우린 좀 더 늦더라고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고 싶다. 객관, 중립이 아니라 우리 합의체에서 한 번 더 고민한 의견을 내보내고 한 번 더 확인한 사실을 내보내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전업이 적은 인적 한계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성, 유연성이 되기도 한다. 속도만이 전부인 것 같은 시대에 대해선 굉장한 우려와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많은 뉴스 속에서 우리는 좀 더 좋은 아들, 오빠, 직장인이 되었나?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사람들은 전부 다 일등만이 사회를 독식하는 걸 당연시 하고 일등을 모방하려고 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의미를 한 번 더 숙고하는 것을 지겹고, 촌스럽다고 본다. 그러나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표피가 아니라 이면을 한 번 더 고민하는 것은 사건, 사람의 존재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다는 소망, 노력이다.

다른 미디어와 물량경쟁은 안된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것이다. 사실을 빨리 전달하는 것보단 사건에 대해서 입체적인 시각과 분석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 지향에도 맞다

- 슬로우뉴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나.
여러 달 거쳐 상징적인 이름을 고민했다. 슬로우라는 이름은 단순히 '빠르다 느리다'가 아니라 삶의 속도, 존재의 속도에 대한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굉장히 다양한 희로애락을 겪고 결국 죽는다. 뉴스도 그렇다. 언젠가 모든 뉴스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뉴스를 기억한다는 것은 뉴스의 교훈을 기억하는 것이지 단순히 횡령, 누가 죽었다는 걸 기억하는 게 아니다.

지금은 뉴스의 탄생만 있고 성장과 희로애락, 소멸이 없다. 사건만 터지고 피의사실 공표 단계에서 모든 뉴스가 끝나버린다. 사람들이 사건의 교훈을 알래야 알 수가 없다. 그 사건의 결론을 모른다. 그런 게 계속 반복된다.

'아거'라는 블로거가 이렇게 말했다. '뉴스라는 것이 어쩌면 시간과 공간을, 또 사람을 달리한 채 계속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 마치 연꽃처럼.' 그렇다면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냐. 물리적인 메마른 서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어떤 교훈으로 주는가. 어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주는가. 그런 차원에서 우리나라의 뉴스는 안 읽어도 충분히 살만하다. 나라도 야근한 후에 들어와서 저런 '쓰레기'를 읽는 것 보다 내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재밌는 드라마 보고 싶지.

그런데 슬로우뉴스는 봐도 안봐도 그만인 뉴스보단, 한 번을 읽더라도 그 사람에게 어떤 여운을 남기는 혹은 수공예품의 정성을 느끼고 '이 사람들이 내게 이야기를 전해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정말 표피적, 자극적인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이 사건의 소재, 주제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하고 있구나. 그런 관점에서 편집하고 있다.

물론 좋은 기사는 지금도 소명 있는 기자에 의해서 쓰여질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대적인 쓰레기에 묻혀서 발견되지 않는다. 계속 쓰레기가 쓰레기를 덮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래도 좋은가'라는 질문을 한 번 했으면 좋겠다.

권력과 자본은 스스로 팽창하려고 하는 욕구가 있다. 언론에는 그런 것을 '감시하는 존재'라는 역사적 가치가 부여된다. 또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 없이 의견을 제시하는 것. 과연 그런 것들이 지금 존재하는지, 또 미약하게나마 존재하는 게 나은 것인지 독자들은 한 번 쯤 물어봤으면 좋겠다. 언론이 갖는 역사성, 저널리즘이라는 가치는 여전히 19세기든, 23세기이든 존재해야 하고, 존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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