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와 노동운동을 정면으로 다루는 만화가 네이버 웹툰에 등장했다.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최규석씨가 지난해 12월 16일부터 <송곳> 연재를 시작했다. 포털사 다음(Daum)에 비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네이버 웹툰에서 등장한데다 그 내용 또한 리얼리즘으로 무장한 한 편의 문학 같아 입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최규석씨도 포털 웹툰 연재는 처음이다. 그는 젊은 층에게 접근성 높은 웹툰을 통해 노동운동을 대중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한국근현대민중사를 보여준 <대한민국 원주민>, 1987년 6월 항쟁을 소재로 한 <100도씨>, 삼화고속파업을 다룬 <24일차>, 프레스에 잘려 마법을 쓸 수 없는 노동자 둘리의 삶을 다룬 <공룡둘리>, 노동인권변호사들의 삶을 다룬 <변호사들> 등으로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송곳>은 그가 직접 취재하며 다뤘던 여러 노동현장 가운데 한 곳인 대형마트를 배경으로 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지금은 대형마트 과장인 주인공 이수인은 경영진으로부터 야채청과팀 노동자 전원을 해고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질문 안 받습니다. 하세요.” 강압적 명령 앞에 이수인은 법 위반이라며 지시를 거절한다. 그러나 고뇌하며 번민에 빠진다. 이 모습을 보고 한 누리꾼(kps2****)은 “모 중형마트 부점장이다. 마트 내 직원해고 내용이 왠지 나와 비슷하다”며 공감을 드러냈다.

   
▲ 네이버 웹툰 '송곳'의 장면들. ⓒ네이버
 
<송곳>은 이수인 과장을 중심으로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투쟁과정이 담길 예정이다. 여기에는 이들의 투쟁을 도와줄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다. 노동상담소장 구고신이다. 중국집에서 배달 일을 하다 임금을 떼이고 거지처럼 누워있는 낯선 청년을 위해 체불임금을 받아주면서도 사례비는 받지 않는 인물로, 노동법 전문의 노동조합 전도사다.

주인공 이수인은 김경욱 전 이랜드 일반노조 위원장과 유사하다. 김경욱 위원장(당시 과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스스로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까르푸 중동점에서 구조조정을 막아냈다. 그의 노력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다. 구고신의 경우 노동운동가 출신의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대학장과 유사하다. 현실의 인물과 노동현장이 떠오를 정도로, 만화는 사실적이다.

위원석 휴머니스트 교양만화 편집장은 “최규석 작가는 지금껏 노동현안에 대해 여러 작품을 그려왔는데 기왕 노동 이야기를 그릴 거면 인쇄매체보다 영향력 있는 미디어에서 하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위원석 편집장은 “네이버에서 사회성 이슈를 다루는 만화를 보기 힘들었는데 소재의 다양성면에서 봐도 의미 있는 일”이라 덧붙였다.

얼마 전 연재를 마친 <미생>이 화이트칼라 노동자에게 큰 공감을 일으켰다면 <송곳>은 비정규직 신분에 열악한 노동환경을 피할 길 없는 블루칼라 노동자까지 공감대를 확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한 누리꾼(saeb****)은 “많은 분들이 만화를 보고 우리나라의 기득권이 어떻게 노동자를 기만하는지 봐주면 좋겠다”고 적었다.

특히 이수인이 육사생도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은 공감을 넘어 현실 그대로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육군사관학교에서 정치적 중립을 어기고 선거에 개입하는 일이 발생했고 우리가 그것에 눈 감는다면 병사들에게 우리는 도대체 어떤 말로 군의 존재이유를 교육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위법한 명령을 거부하라고 교육받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침묵한다면 다음에 위법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 될 것입니다.”

1980년대 노동자들이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을 읽었다면, 30여년이 지난 오늘의 노동자는 온라인에서 웹툰을 읽고 있다. 시든 만화든,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닌 공감이다. <송곳>의 등장이 수많은 코믹형 웹툰의 범람 속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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