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미디어오늘은 신원을 밝힐 수 없는 취재원에게 심각한 제보를 받았다. 경찰이 포털 사이트 네이버를 압수수색해 한국철도공사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쓰는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밴드의 대화 내용을 복사해 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미디어오늘 기자가 곧바로 네이버에 확인 취재를 했지만 네이버 관계자는 처음에는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확인은 했지만 경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라 알려줄 수 없다”고 둘러댔다.

미디어오늘은 개인정보 관련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2011년 개정 때 신설된 형사소송법 106조 4항에 따르면 “법원은 컴퓨터용 하드디스크나 이와 비슷한 정보저장 매체에 기억된 정보를 출력 또는 복제 등 압수할 경우 정보 주체에게 해당 사실을 지체 없이 알려야 한다”고 돼 있다. 알려야 하는 주체가 법원이라고 돼 있는 데다 “지체 없이”라는 표현도 애매하고 정작 알리지 않아도 아무런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게 문제로 지적돼 왔다.

진보네트워크센터 장여경 정책실장은 “원래 압수수색은 사전 통보까지는 아니라도 압수 직전에 당사자에게 통지하고 당사자 또는 변호인이 집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형사소송법 121조) 통신 관련 압수수색은 해당이 안 되는 것처럼 해석해 왔고 오남용도 많다”고 지적했다. 장 실장은 “일단 이 경우는 당사자가 경찰에 문의하면 답변을 해주게 돼 있다”면서 “네이버도 사전사후 통지는 안 했지만 문의하면 사실대로 말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디어오늘은 철도노조 백성곤 홍보팀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고 백 팀장이 네이버 홍보팀을 통해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한 뒤, 이날 저녁 네이버 법무팀을 통해 답변이 왔다. 네이버의 공식 답변은 “경찰이 철도노조 조합원들 밴드 대화 내용을 압수수색한 건 맞다, 다만 네이버 입장에서는 구체적인 대상이나 범위를 밝히기 곤란하다”는 정도였다. 네이버 다른 관계자는 “우리도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영장을 가져오면 내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모바일 메신저는 철도 파업과는 무관한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경력 3000명 이상을 동원해 사상 최초로 민주노총 사옥을 침탈해 샅샅이 뒤졌으나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는 데 실패했다. 경찰 사상 최대의 작전 실패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다급한 경찰이 노조 지도부의 행적과 관련 단서를 찾으려고 단순히 수사 편의를 위해 노조 조합원들의 사적 공간까지 침탈하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철도노조 개인정보를 경찰에 넘겨 논란이 됐던 포털 사이트 네이버 밴드의 광고 화면. 국내 포털 사업자들은 압수수색 영장이 나오면 개인정보를 통째로 내주고도 이용자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는다. ⓒ네이버.
 
문제는 미디어오늘이 제보를 받고 취재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이 영원히 알려지지 않고 묻혔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심각한 인권 침해가 과거에도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고 아무런 감시도 규제도 없다는 데 있다. 어느 정도나 되는지 제대로 집계조차 안 되고 당사자에게 통지도 안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당신도 모르게 당신의 메일이나 메신저가 털리고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법무법인 나눔의 김보라미 변호사는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았다면 절차를 문제 삼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일단 영장만 나오면 메일이나 메신저, 커뮤니티 서비스 등을 무차별 조회할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면 대부분 내주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건 압수수색의 범위가 매우 포괄적이고 당사자 참여가 완전히 배제돼 있다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장여경 실장은 “일반 압수수색 영장의 경우 만약 자취방을 뒤지는데 당사자가 집에 없으면 집 주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집 주인에게 집행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 과연 네이버가 집 주인이고 당사자가 없다는 이유로 네이버를 상대로 영장을 집행하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취방을 털 때는 어떻게든 당사자가 알게 되겠지만 이처럼 메일이나 메신저가 탈탈 털리는데도 당사자가 모르고 있다는 건 정말 문제”라는 지적이다.

지난 8월 통합진보당 당사 압수수색 때는 당직자들이 저항하긴 했지만 변호사들 입회 아래 철저하게 영장에 근거해서 진행됐다. 심지어 자취방을 압수수색 당하더라도 당사자가 항의도 할 수 있고 최소한 어떤 게 압수되는지 확인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사적인 대화 내역을 경찰이 들여다봤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 받았을 뿐 아무런 구체적인 정보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철도노조 관계자 누구도 영장조차도 본 적이 없다.

   
ⓒ Privacy International.
 
애초에 법 조항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비밀보호법 9조3항에는 “검사로부터 공소 제기 또는 기각 처분을 통보 받거나 내사 사건의 경우 입건하지 않기로 처분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서면으로 통지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통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불기소 처분이 날 경우 아예 통지를 하지 않아도 당사자는 알 방법이 없다. 정작 공소장을 받을 무렵에는 어차피 알게 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실제로 경찰이 지난 2008년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주경복 건국대 교수의 선거법 위반 의혹을 수사하면서 7년 분량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한 적도 있었다. A4 용지 기준으로 무려 4만1300여쪽 분량이었다. 지난해 주 교수가 낸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법원은 “강제수사의 비례원칙을 위반했다”며 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사전 통지 없이 압수수색을 했다는 주 교수의 주장은 “위법하다 단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수신이 종료된 이메일이나 메신저 대화 기록 등은 통비법에 규정된 전자통신이 아니라 형사소송법의 물건으로 보기 때문에 좀 더 포괄적인 압수수색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통신 감청은 영장 요건이 훨씬 까다롭게 적용되는데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통신 관련 압수수색은 영장 기각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법 조항의 문제라기 보다는 적용의 문제”라면서 “영장 발급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 실장도 “형사소송법도 문제지만 통비법은 더욱 허술해서 통화 내역 등 통신사실 확인자료 조회 같은 경우 영장도 필요 없고 범죄 수사에 필요하다는 정도만 적어서 허가 요청서를 법원에 내면 통화내역을 쉽게 뽑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통비법에 따르면 기소 또는 기각하는 시점에 통지하면 되기 때문에 무분별한 통신사실 조회나 통신 감청이 무분별하게 남발되는 경향이 있다.

   
조지 오웰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1984'의 한 장면.
 
최근에는 청와대 비서관이 시사저널 기자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사건을 경찰이 조사하면서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메시지 기록 등을 뒤진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문제는 경찰이 “이 사람이 제보자가 맞느냐”고 물을 때까지 기자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 경우도 통비법에 따라 경찰은 이 기자에게 기소 여부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통지를 할 의무가 없다. 설령 기소가 기각돼 은근슬쩍 없던 일로 하더라도 경찰을 처벌할 규정이 없다.

심지어 범죄 수사를 명분으로 통신 기지국 단위로 특정 지역에서 통화한 내역이 있는 수만명의 통화내역을 한꺼번에 뽑아서 뒤지는 경우도 많다. 방통위에 따르면 2010년의 경우 2160만건의 통신사실 조회 가운데 98.7%에 해당하는 2131만건이 기지국 수사 목적의 열람이었다. 이들 가운데 자신의 통화 내역을 경찰이 들여다봤다는 사실을 통지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 감옥 파놉티콘. 감시 당하는 사람은 감시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위키피디아.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는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이 938만건, 법원 허가 없이 단순히 가입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추적하는 통신자료 제공이 483만건, 통신 감청이 3540건에 이른다. 통신사에 의뢰한 감청이 이 정도고 수사기관이 직접 감청한 내역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전교조나 철도노조의 경우처럼 이메일이나 메신저 등 통신 관련 압수수색은 그나마 실태조사도 없고 당연히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외에서는 감청과 통신내역 취득, 이메일 압수수색이 이뤄지면 행위 직후 일정 기간 안에 알려주게 돼 있는데 우리는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기소 또는 불기소 처분 이후에야 알려준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감시 당하는 것도 억울한데 감시 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지 않는 건 너무 하지 않느냐”면서 “당사자 모르게 이뤄지기 때문에 반발도 적고 그래서 마구잡이로 뒤지고 보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장여경 실장은 “인터넷 시대에는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이 글로벌화되고 독과점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가뜩이나 이들이 권력기관과 유착한다면 이런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있을 때 피해 당사자가 어디 가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장 실장은 “헌법 정신에 미뤄보면 형사소송법과 무관하게 네이버는 이용자들의 권리 침해 소지가 있을 때 즉각 통보해야 할 도의적 의무가 있다”면서 “네이버도 억울하겠지만 이건 신뢰의 문제”고 지적했다.

철도노조 백성곤 팀장은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대응을 못했지만 곧바로 법률 대리인을 통해 이의제기를 하고 구체적인 영장 집행 내역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백 팀장은 “밴드가 범죄에 동원된 것도 아닌데 단순히 수사 편의를 위해 사적인 대화 내역을 마구잡이로 뒤졌다면 심각한 인권 침해”라면서 “경찰과 네이버에 강력히 항의하고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정환·이재진·이하늬 기자 black@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