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종범(33)씨의 장례가 55일만에 치러졌다. 유가족과 삼성전자서비스지회(지회) 동료들은 "최종범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밝혔다.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 관광버스가 연달아 도착했다. 버스에선 'SAMSUNG 삼성전자서비스'라는 로고가 박힌 짙은 소라색 옷을 입은 남성들이 내렸다. '노조탄압분쇄' '표적감사중단' 등이 적힌 검은색 만장도 함께 내렸다. 최씨의 동료들은 만장을 들고 삼성전자 본관 앞 도로에 섰다. 이날 오후 삼성본관 앞에서는 최씨의 노제가 열렸다.

삼성전자는 노제가 열리는 곳 맞은편 도로에 관광버스를 배치해 차벽을 만들었다. 경찰 역시 경찰버스 3대를 삼성본관 앞에 배치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버스들 사이로는 사람 한 명도 지나갈 수 없어 본관 앞 인도를 지나가는 시민들은 관광버스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턱이 없었다. 빌딩 숲 사이에서 최씨를 애도하는 장송곡만 울러퍼졌다.

   
▲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기사 고 최종범씨의 노제에서 동료들이 만장을 들고 있다. 사진= 이하늬 기자
 
최씨가 일했던 천안센터에서 영결식을 마친 운구차가 도착하자 노제가 시작됐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이 자리에 이건희 나왔습니까. 최종범 열사를 학살한 살인마 이건희 나왔냐고요"라며 "최종범 열사, 가슴을 펴고 눈을 똑바로 뜨고 앞으로 나아가세요. 우리 산자들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지난 3일부터 삼성본관 앞에서 노숙투쟁을 했던 최씨의 부인 이미희(30)씨는 수척한 모습이었다. 이씨는 "다시는 이런 일이, 아빠 없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평소 집회에서 발언을 곧잘 했던 그다. 대신 최씨의 형 종호(36)씨가 대신 조문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종호씨는 "동생이 삼성을 향한 싸움에서 최초의 승리를 얻었다고 들었다. 지금은 그 승리가 큰지 작은지 보다는 승리했다는 점, 그리고 승리를 얻기 위해 함께 싸워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며 "지금 작은 최초의 승리가 나중에는 최대의 승리가 될 수 있도록 유족도 미약하지만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최씨의 장례식은 지난 20일 밤 사측과 협상이 타결되었기에 진행될 수 있었다. 지회는 지난 21일 삼성본관 앞 노숙 농성을 접으면서 "사측과 협상을 벌인 결과 최종범 열사 유족과 삼성전자서비스 전 노동자들에게 사과하고 노동조합 활동을 보장한다는 등 6개 항에 대해 합의했다"고 밝혔다.

양측 합의안에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에 대한 생활 임금 보장 ▲오는 2014년 3월 1일부터 업무 차량 리스 및 유류비 지급 ▲건당 수수료 및 월급제 문제에 관해서 임단협에서 성실히 논의 ▲노조 측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으며 향후 불이익 금지 ▲유족 보상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관련기사:<[단독]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경총과 협상 타결>)

   
▲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기사 고 최종범씨의 노제에서 아내 이미희씨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사진= 이하늬 기자
 
그러나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에 교섭권을 위임한 측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사장단으로 노조가 협상을 원했던 삼성전자서비스와는 달라, 조합원들은 못내 아쉬움을 드러냈다. 유족 역시 노숙농성을 접은 지난 21일 미디어오늘과의 만남에서 "합의대상이 삼성이 아닌 것은 아쉽다. 그러나 삼성과의 싸움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싸움은 시작되었으나 그것은 열사가 몸을 던져 만든 불씨였을 뿐, 우리는 부족했고 여전히 미숙했다. 삼성 재벌을 굴복시키기는커녕 삼성의 민낯을 제대로 벗겨내지도 못했다. 사과도 공식화시키지 못했다. 열사여 죄송합니다. 송구합니다. 동지여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변호사는 "하지만 열사의 짧은 유서로 인해 우리사회는 삼성 재벌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경제 30%를 장악한 삼성재벌을 바꾸지 않고서는 우리사회가 올바른 사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다"며 "전태일은 못 되어도 라고 말했던 겸손한 동지, 그대가 진정 전태일이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추모객들은 노제가 끝난 뒤 고인의 영정에 국화꽃을 헌화했다. 최씨가 마석 모란공원 열사묘역에 묻히기 전 마지막 인사였다. 사람들이 헌화를 마치고 장소를 정리하던 중 최씨의 부인이 다시 영정 앞으로 왔다. 이씨의 품에는 딸 별이가 안겨있었다. 얼마 전 돌을 맞은 별이는 최씨의 영정에 마지막으로 국화꽃을 올렸다.

   
▲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전자서비스 기사 고 최종범씨의 노제에서 조문객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이하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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