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에서 일하다 질병을 얻은 피해자들이 오는 18일 삼성전자와 본교섭을 시작한다. 본교섭에서는 직업병 문제에 대한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대한 협상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2005년에 유미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지금이 2013년이다. 그 세월이 벌써 7년이 지나고 8년이 넘어간다. 반도체 공장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병들어가는데 삼성은 개인적인 질병이라고 했다. 삼성이 어떻게 교섭에 응하는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볼 것이다"

황상기(59)씨가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외쳤다. 그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다. 유미씨는 2005년 백혈병 판정을 받고, 2007년에 사망했다. 황씨는 이번 교섭에서 교섭단 대표를 맡았다.

교섭단에는 황씨 외에도 삼성반도체와 삼성LCD 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뇌종양, 악성림프종 등에 걸린 피해자 가족 6명과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 활동가 2명이 포함됐다. 삼성 측의 교섭단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반올림 측은 환경안전보건 분야를 대표할 수 있는 교섭단을 요구하고 있다.

   
▲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 가족들과 반올림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본교섭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진행중이다. 사진= 이하늬 기자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유미씨의 죽음 이후 6년만이며, 삼성전자가 지난 1월 교섭을 제안한 뒤 본교섭에 이르기까지만 8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간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5차례 실무교섭을 진행했다. 실무교섭 결과에 따라 본교섭에서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이 논의될 예정이다. 보상 또한 반도체 부문과 1994~2012년 사이 LCD부문에 종사한 노동자에 대한 확대 적용 기준을 논의한다.

반올림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07년 황유미 님의 억울한 죽음과 산재 인정을 위한 투쟁 6년만의 일"이라며 "2007년 반올림 발족 당시 삼성전자는 백혈병 피해자가 단 여섯 명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지금 반올림에 제보된 피해자 수는 138명이며 사망자는 56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더 늦기 전에 삼성전자는 제2, 제3의 황유미를 만들지 않기 위한 재발방지대책과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직업병 피해 당사자와 가족들, 그리고 이들과 더불어 싸워온 이들의 인권을 훼손해 온 일들에 대해 공개사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고 최종범씨 유가족과의 교섭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반올림이 삼성과 공식적으로 본교섭에 이르게 되었음을 환영한다"면서도 "그 교섭이 제대로 될지 우려된다. 삼성이 진심으로 교섭에 응하겠다면 왜 지금 삼성본관 앞에서 비를 맞으며 농성하는 최종범 열사 유족의 교섭요구에는 응하지 않냐"고 비판했다.

현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는 고 최종범(33)씨의 유가족과 동료들이 지난 2일부터 무기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로 일하던 최씨는 지난 10월 31일 "삼성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어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유가족이 수차례 교섭을 요청했으나 삼성전자는 "실사용자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편 2013년 12월 6월 기준으로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는 총 138명이고 그 중 56명이 사망했다. 이들 중 36명이 산재를 신청했으며, 기흥사업장 유방암 사망노동자 고 김도은씨와 온양사업장 재생불량성빈혈 투병자 김지숙씨가 2012년 산재를 인정 받았다. 지난달 25일에는 반올림에 제보되지 않은 삼성반도체 재생불량성빈형 사망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기도 했다.

고 황유미씨, 고 이숙영, 고 김경미씨는 행정소송 1심에서 산재를 인정 받았으나 공단이 항소해 현재 항소심이 진행중이다. 이외에도 이들을 포함해 14명의 피해자가 현재 항소심을 진행중이며, 근로복지공단에서 심의중인 피해자는 13명이라고 반올림은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