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ver the Top)와 같은 '스마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유료방송의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 미디어 시장 경쟁이 심한 미국에선 OTT가 시장 접수를 시작하면서, 유료방송업계도 다양한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미디어 시장 전체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지난 27일 나온 LG경제연구원 'LG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세계적으로 유료방송(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가입자가 줄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2013년 2분기에만 30만 가구 이상이 줄었으며, 지난해와 분기별로 비교하면 3분기 연속 감소 중이다. 
 
일부는 유료방송 중의 하나인 케이블TV의 위기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케이블TV 가입자가 IPTV나 위성방송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LG경제연구원은 "IPTV의 성장세도 유료방송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이 IPTV를 선택하는 이유가 IPTV의 장점때문이 아니라, 통신요금을 절감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 미국 유료방송 가입 가구의 감소 추세. 자료=Deutsche Bank(2013.10) ⓒLG경제연구원
 
유료방송업계의 위기는 '콘텐츠의 부재'에서 온다. 미디어시장의 무게중심은 플랫폼에서 콘텐츠로 이동 중이다. LG경제연구원은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사업자가 콘텐츠를 기반으로 사업 모델을 설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는 항상 새로운 콘텐츠를 원하는데 콘텐츠의 원 저작권을 소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으로 콘텐츠 자산을 유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료방송의 사업 모델은 단순했다. 지상파 방송사 등에게 콘텐츠를 사서 여러 채널로 묶음 상품(번들링·Bundling)을 만든 후 가입자들에게 제공하면 됐다. 별다른 경쟁이 없는 상황에서 유료방송은 지상파 방송사 등 콘텐츠 사업자들과 결속력이 강했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미디어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콘텐츠 사업자들의 수익 모델도 다양해졌다. 
 
콘텐츠 사업자에게 유료방송만이 유일한 수익원이었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콘텐츠 사업자들은 이제 온라인, 모바일 등에서도 콘텐츠를 판매할 수 있다. 또 넷플릭스, 훌루와 같은 강력한 OTT도 유료방송 사업자 못지 않게 콘텐츠 비용을 지출하고, 스마트TV와 같은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도 콘텐츠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 OTT 사업자 넷플릭스가 자체 제작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CBS는 지난 7월 이 드라마가 에미상 후보로 선정된 소식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보도했다.
 
방송 콘텐츠 제작비용의 증가도 유료방송를 압박하고 있다. 결속력이 약해지면서 지상파 방송사는 재전송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SNL 파이낸셜은 유료방송 사업자가 콘텐츠 사업자에게 지불하는 재전송료가 2013년 30억달러에서 2018년 120억달러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입자들의 유료방송 이탈 현상으로 수익이 주는데 비용까지 증가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의 유료방송 사업자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고, 신사업에 진출하고 있다. 직접 OTT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채널 번들링'을 약화하며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이들은 유료방송 시장 축소를 우려해 OTT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를 느끼면서 더 저렴하고 강력한 상품을 내놓는 것이다. 
 
미국 최대 유료방송 사업자인 컴캐스트는 최근 '인터넷 플러스'라는 상품을 출시했다. 20Mbps 속도의 인터넷 망과 함께 NBC, ABC 등 지상파 실시간 채널, 그리고 프리미엄 유료 채널인 HBO 등으로만 구성된 '알 라 카르테(a la carte·원하는 채널만 골라 시청하는 상품)' 형태의 서비스다. 가격도 기존 인터넷, 케이블TV 결합상품 중 최저요금(월 100달러)의 절반 수준(월 49.99달러)이다. 
 
   
▲ 컴캐스트의 모바일 서비스 '엑스피니티 티비 고(Xfinity TV GO)' ⓒ엔가젯(engadget)
 
유료방송 사업자는 또 다른 시장으로 떠오른 모바일 서비스도 대거 내놓고 있다. 컴캐스트는 '엑스피니티 티비 고(Xfinity  TV GO)'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CNN, Disney, ESPN 등 35개의 실시간 방송 채널과 2만5000개 이상의 VOD를 모바일 기기에서 제공한다. 유료방송을 상징했던 셋톱박스가 앱 형태로 변화한 것이다. 
 
아직 한국은 미국에 비해 미디어 시장 개편이 느린 편이다. CJ헬로비전 티빙(TVing)과 지상파 4개사 합작의 푹(Pooq) 등 OTT가 수년 전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유료방송을 위협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비용 압박이 커지는 등 미디어 시장 환경이 변하는 건 비슷하다. 지상파 방송사의 주수익인 광고시장은 정체되고 있고, 제작비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반면 유료방송 시장은 이미 포화되어 있다. 또 한국 소비자들은 오랜 기간 1~2만원 수준으로 저렴한 유료방송 요금제도에 익숙해져 있다. 신재욱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금은 OTT 시장이 미미하지만, 유료방송 요금이 인상될 경우 상황은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며 유료방송의 위기가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유료방송의 사업 모델이 중장기적으로 한계에 다다를수 있다"며 "한국 유료방송 환경도 미국을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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