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위원장 이상민, 이하 공정성특위)가 28일 활동을 종료했다. 박근혜정부의 대선공약이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갔다. 지난 3월부터 6개월 간 공전하던 공정성특위는 지난 9월 운영 종료를 앞두고 두 달 간 활동을 연장했으나 사실상 아무것도 합의하지 못했다. 핵심의제였던 ‘특별다수제’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최종보고서 채택에 실패했다.

야당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특별의결정족수 제도(이하 특별다수제)를 이사 증원 및 여야 추천 몫 조정과 함께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현재는 KBS·EBS 사장 선임 시 이사회의 과반이 찬성하면 통과인데 이를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변경하자는 것이 요지다. 특별다수제가 도입될 경우 추후 KBS 사장을 임명할 때 여당이 추천 이사뿐 아니라 야당이 추천한 이사의 일부도 동의해야 통과가 된다.

KBS·EBS이사회는 11명의 이사 가운데 여야 추천구조가 7대4이며, 특별다수제가 도입될 경우 최소 8명의 이사가 사장 선임시 찬성안을 내놔야 한다. 전국언론노조는 “현재 공영방송의 불공정성은 정권의 추천을 받은 이사들이 다시 정권의 뜻에 맞는 사장을 뽑는 '후견주의 정치 문화'에 기인하고 있다”며 “일방적인 합의를 막아내자는 게 특별다수제의 정신이다. 특별다수제를 통해 공영방송 사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특별다수제가 시행될 경우 사장 공백을 우려하며 현행 제도를 유지하자며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특별다수제는 여야 합의 불발로 최종 보고서에 포함되지 못했다. 미합의 부분은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로 넘겨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이지만 미방위에서 합의를 못해 특위를 만든 사실을 떠올린다면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 민주당 의원들이 '특별다수제 도입'을 요구하며 국회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는 모습. ⓒ민주당
 
28일 여야가 합의한 방송공정성특위의 보고서의 주요내용은 △KBS·EBS 이사 및 방송통신위원장·방통위원 결격사유 강화 △KBS 사장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보도·제작·편성의 자율권 보장을 위한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설치 의무화 △KBS·MBC·EBS 이사회와 방통위·방송통신심의위원회 회의 속기록 작성 의무의 법률 규정 등이다.

이밖에도 ‘해직언론인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해 방송공정성특위가 국회 차원의 다양한 해결방안 모색을 위해 앞장설 것이며, 정부 당국과 관련 단체·방송사 노사 양측 역시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설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예정이다. 미방위는 특위가 제출한 보고서를 토대로 관련 법률의 제·개정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합의내용이 소기의 성과가 있다 하더라도 정권의 ‘낙하산 사장’을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인 특별다수제 합의에 실패한 사실은 여야 특위 모두 그 존재의 이유를 의심케 한다. 유승희 민주당 의원은 “현재 합의한 내용들은 굳이 방송공정성특위가 아니라도 미방위에서 법안을 통해 처리가 가능했던 부분”이라며 “방송공정성특위가 성과 없이 이런 식으로 종료해 유감”이라고 밝혔다. 신경민 민주당 의원 역시 “어쩔 수없이 합의문에 동의했지만 이런 현실은 대국민 사기행각의 하나다. 이런 식의 특위는 안 하는 게 훨씬 나았다”고 말했다.

   
▲ 강성남 언론노조위원장등 언론노조 지도부가 공영방송 정상화 등을 주장하며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모습. ⓒ언론노조
 
180여개 언론 시민사회 단체의 참여로 구성된 ‘언론정상화를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는 특위 합의문을 두고 “성적표가 너무 초라하다. 정치권력과 공영방송의 고리를 최소화하는 것이 방송 공정성의 핵심이고, 유일한 대안이었던 특별다수제 도입이 무산됐다는 점에서 특위의 이번 결과물은 낙제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여야가 추천한 교수들로 구성된 자문단에서조차 특별다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는데 새누리당이 이를 거부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웠을 때는 특별다수제 도입을 요구했다가 자신들이 정권을 잡자 자기들이 언제 그랬냐며 시치미를 떼는 형국”이라고 새누리당을 규탄했다.

이들은 또한 “민주당의 무능과 전략부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위는 여야 동수였고 위원장을 민주당이 맡았다. 그런데도 시종일관 자신들의 한계만 내세우며 엄살을 떨었다”며 야당도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그나마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해직언론인의 복직을 촉구한 결의문 정도다. 사법적으로도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이 하나 둘씩 나오고 여야 정치권의 합의된 결의도 나온 만큼 즉각 복직시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그동안 특위 활동을 살펴보면 새누리당 위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는 모양새였고, 야당 의원들은 사안을 돌파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무능했다”고 비판했다. 강성남 위원장은 “특위 활동 8개월 동안 언론노조와 언론노동자들이 저들(공정성특위)에 의해 무시를 당했다”며 “정치권에 기대할 만한 게 없다. 언론노동자의 문제를 투쟁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언론노조는 29일 오후 2시 총파업 결의대회를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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