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밤 방송된 KBS 1TV <파노라마> ‘바보병원’ 편은 누구도 쉽게 채널을 돌릴 수 없는 내용을 다뤘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치료비가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마음이 어떨까. 이날 방송 중 돈이 없어 응급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한 남성의 모습은 의료가 오직 이윤만을 추구할 때 드러나는 비극의 단면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의료공공성을 강화하고 재정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공공병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전국에 있는 공공병원 다섯 곳의 일상을 취재해 공공병원에서 고통을 이겨내고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상식과 양심이 있는 시청자라면 방송을 보는 내내 공공병원이 왜 줄어들어야 하는지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 ‘의료민영화’ 세력은 적자를 이유로 진주의료원의 문을 닫았다. 진주의료원은 몰락하고 있는 공공병원의 상징적 공간이었다. 2011년 기준 전국 공공병원의 평균 적자는 151억 1800만원. 공공병원은 정부와 지자체가 의료공공성을 위해 세운 병원으로 목적 자체가 수익성 추구와 관계없지만, 이윤추구 논리만으로 ‘도태’를 강요받아야 했다.

   
▲ KBS '파노라마-바보병원' 편.
 
하지만 방송에서 드러난 공공병원은 결코 ‘도태’되어선 안 되는 곳이었다. 영리만 따지는 병원들로 인해 지역에선 병원이 줄어들고 있다. 의사는 돈이 안 되는 야간 분만과 휴일 분만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에서 갈 곳 잃은 산모들을 받아 새 생명을 탄생시킨 곳은 공공병원이었다.

또다른 공공병원인 서울시 어린이병원에는 유기아동이 찾아온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버려진 뒤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영리병원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곳에는 중환아가 60여명이나 있다. 중증장애아를 장기간 치료할 수 있는 병원도 여기밖에 없다. 뇌병변으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속 타는 마음을 이해하는 곳은 이곳뿐이다.

서울의료원에는 노숙인 응급실이 있다. 노숙자에게선 치료비를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서울의료원은 노숙인 전용병동을 만들어 치료하고 있다. 이곳은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장소다. 공공병원에서의 치료를 통해 새 삶을 찾은 이도 있다. 영리병원이었다면 이들은 이미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 KBS '파노라마-바보병원' 편.
 

   
▲ KBS '파노라마-바보병원' 편.
 
의료 돌봄을 사회적으로 보장하려는 노력은 반자본주의적이다. 그러나 의료가 자본의 논리로만 진행될 때, 사회 전체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영리병원은 돈을 벌기 위해 과잉진료에 나서고 과잉처방을 한다. 상품에 불과한 환자는 빠른 ‘회전’을 위해 진료시간을 1분, 또는 30초로 단축시킨다. 내 몸을 온전히 맡겨야 하는데도, 의사와 환자와의 교감은 없다.

하지만 의료가 공공성을 갖출 때 나와 내 이웃은 안전망을 갖게 된다. 서울시가 안심병동제도를 시행한 뒤 환자 1인당 한 달 평균 간병비는 약 200만원 절감됐다. 공공병원 응급센터에선 돈이 없어도 치료를 해준다. 자본 입장에선 투자할수록 손해를 보지만, 사람의 입장에선 투자할수록 이익이다.

오늘날 전체 병원 가운데 민간병원은 60008곳에 달한다. 그러나 공공병원은 2000여 곳에 그치고 있다. 집계가 시작된 1949년부터 공공병원의 병상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언젠가 공공병원이 모두 자본의 논리에 먹혀 사라져버리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어디에서 마음 편하게 몸과 마음을 치료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바보병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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