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으로 ‘반격’을 시도했지만 국정원과 서울경찰청의선거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책임론이 비중있게 제기돼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대학생·교수·국민이 함께 하는 11차 국민촛불집회’는 여느 촛불집회 때보다 자유발언을 신청하는 시민들의 숫자가 많았고, 화답하는 박수 소리가 컸다.  7000여명의 시민들은 촛불을 들며 한 목소리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관한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 있는 조처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에 깊숙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의 해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날 대학 교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한 요구를 내걸어 많은 시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서울대 최갑수 교수는 빨간 표지의 책을 높이 들며 “이 빨간 책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찍어낸 대한민국 헌법이다”면서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붉은 주장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헌법은 국정원에게 정치적 중립을 요구했지만 국정원을 특정 정당 후보에 유리한 댓글을 수만번 달아 여론을 조작했고 국민을 기만했다”면서 "우리가 큰 요구하는 거아니다. 민주주의의 최고 조건인 공정한 선거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 헌법은 선관위를 규정하고 있고 그들은 공무원이다. 선관위는 지금 뭐하고 있나? 지난 대선 때 선관위는 직무유기를 했다. 다 알고 있었다. 과거에 대통령 스스로가 헌법을 부정한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유신이며 이는 대통령이 쿠데타,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반 국가행위를 한 거다. 그래서 그 당시에 저는 헌법을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다. 그것은 죽은 문서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나 87년 민주화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헌법이 죽은 문서가 아니라 우리의 살아있는 삶에 기본 원칙임 확인했다. 여러분 이 헌법을 우리가 되 찾아야 한다. 그걸 위해서 국정원은 해체해야 한다. 우리가 다시 87년의 국민들처럼 다시 우리가 주권자로 우뚝 서야한다. 만약에 현 정권이 이렇게 모르쇠로 일관하고 물타기로 일관하게 되면 결국 대통령은 방 빼야 할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해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전국 교수노조의 홍성학 수석부위원장은 "우리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파괴되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촛불을 들고 행동에 나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조직적으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은 그것을 뛰어 넘는 대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 민주주의가 파괴됐을 때 우리 민초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동안 우리는 잘봐왔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해서 촛불을 들고 이 자리에 나선 것입니다. 저는 국정원 해체를 넘어서서 새누리당도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긴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중앙선관위는 이제 국민들의 손으로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선출직으로 해야 됩니다. 경찰 개혁해야 됩니다. 국정원만 얘기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그리고 이번 부정선거에 관여했던 당은 다음 대선에서 출마조건 자체를 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집회가 열리는 시간, SNS 상에서도 홍 교수의 발언에 대해 “새누리당도 해체해야 한다는 교수 발언에 촛불이 광분하며 환호한다. 촛불이 얼마나 꾹 참고 왔는지 알겠다”, “열광적인 반응, 이것이 민심인가 봅니다”라는 반응이 올라오고 있다.   

   
이날 시국선언에 동참한 인천지역 고등학생 1515인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학생들이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도 청소년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이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성토했다. 경북 구미에서 촛불집회 참석차 서울로 올라온 고등학생 2학년 최건호군은 “박근혜 대통령은 질서 파괴와 부정부패와 비겁함을 가르쳐준다”면서 “촛불집회에 나온 어른들은 불의 앞에 용감하고 정의 앞에 올바르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어른들처럼 자라자는 우리 학생들에게 정의의 표본이 되어주시면 안되겠느냐”라고 말해 많은 시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70대 할아버지는 “국민을 우롱하고 조롱하며 막장으로 끝난 국정조사에 한없이 분노해서 촛불이라도 들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74일간 촛불을 들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할아버지는 “특정 정치인이나 어느 특정 정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정원 및 국가기관이 대선에 조직적으로 불법 개입한 것을 특검으로 낱낱이 파헤쳐 관련자 전원을 법적으로 엄히 처벌하길 바라며 국정원이 빼앗아간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촛불을 든다”라고 말했다  
 
촛불집회의 단골메뉴인 국정원 의혹은 외면한 채 내란음모 혐의만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규탄도 수차례 이어졌다. 청소년 시국회의 소속 이아무개군은 “국정원과 장악된 언론들이 청소년 시국회의를 왜곡했다”면서 “의견 차이로 나간 일부 회원들에게 동아일보 한 기자가 자신의 기자 생명을 걸고 취재하겠다며 취재했지만 나온 기사의 결과물은 우리들을 종북세력과 통합진보당의 꼭두각시로 매도하는 소설을 써댔다”고 비판했다. 
 
한 이화여대 학생은 “일주일 동안 내란음모 혐의를 다룬 기사수가 국정원 의혹 보도보다 2배나 많다고 한다”고 했고, 한림대학교에 다니는 최윤미씨도 “방송사 뉴스엔 국정원 의혹에 대해 보도가 나오지 않고, 인터넷 뉴스를 보거나 촛불집회 현장에 와야만 그 열기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당원들도 촛불집회에 참석했고, 이에 대해 집회를 주체한 시국회의 측이나 시민들이 이에 불만을 제시하지 않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기조발언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고 힘빠져 하는 부들이 많다"면서 "하지만 이 사건은 범죄 성립의 어려움으로 인해 끊임 없이 새로운 증거를 요구받고 있으며, 녹취록은 작성 과정에 대해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는 등 그 실체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 사건은 별 것 아닌 사건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한국독립당부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까지 정부가 관여한 내란음모 사건은 모두 무죄로 결론났던 역사적 교훈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면서 "설사 이 사건이 실체 있는 사건으로 밝혀진다고 해도 우리는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국정원 개혁의 행보를 멈춰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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