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면 전 YTN노조위원장과 현덕수·조승호·임장혁 기자는 지난해 11월 “‘BH하명’에 따라 총리실의 불법사찰조직이 주도한 범죄행위로 막심한 경제적,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와 원충연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을 상대로 각각 2억 5천 만 원의 손해배상창구소송을 제기했다. 남대문 경찰서장이 총리실로부터 압력을 받은 사실은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5부(부장 이성구) 심리로 열린 이번 손해배상소송 공판에서 밝혀졌다.
2009년 3월 당시 서울 남대문경찰서장이었던 김기용 의정부경찰서장은 이날 증인출석 대신 제출한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경찰서장실에 지원관실 직원 두 명이 찾아와 수사사항, 특히 (YTN)노조 측 폭력행사 부분을 우려스럽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고 답변했다. 당시 경찰이 총리실 지원관실로부터 ‘BH’(청와대)의 언질을 받고 수사지시를 받은 정황을 인정한 것이다. 만남 시점은 YTN노조 파업 직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2009년 3월 22일 경찰에 의해 기습체포됐던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노종면 지부장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는 모습.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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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경찰서장은 이어 “우리 경찰 입장이라 할 건 없고 아마 검찰 쪽에서도 나름대로… 해당관련기관이라던가, 이런 흐름이라던가 우리가 보는 시각하고 다른 시각이 있으니까 그러지 않았을까”라고 말을 흐린 뒤 “저희도 참 곤혹스럽죠, 사실”이라고 말했다. 종합하면 ‘해당관련기관’으로 상징되는 총리실 불법사찰팀이 하명한 ‘YTN노조 구속수사’ 입장을 경찰도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경찰은 총파업 직전인 2009년 3월 22일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임장혁 기자를 자택 인근에서 체포했다. 노종면 위원장의 구속은 1999년 방송법 파업 당시 KBS·MBC 노조 지도부 6명이 구속된 이후 10년 만의 언론인 구속사태였다. 당시 노조는 갑작스런 체포에 부당하고 수상쩍은 점이 많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와 관련 검찰은 지난해 민간인 불법사찰 재수사 결과 발표 당시 원충연 전 조사관이 “경찰이 YTN 사태에 미온적이라 (YTN을) 사찰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재판부는 이번에 등장한 서면답변서를 근거로 김 서장을 증인으로 소환할 방침이다. 다음 공판일은 10월 8일이다. 재판부는 출석하지 않을 경우 구인장을 발부할 계획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소인 측 변호를 받은 최강욱 변호사는 “김기용 서장은 불법사찰과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에 대해선 모른다며 잡아뗐지만 총리실 직원 두 명이 찾아왔던 사실은 명확히 확인해줬다. 답변을 보면 총리실 직원들이 경찰서장을 찾아가 할 얘기는 아니었다”고 지적한 뒤 “총리실 직원이 다녀간 이후 김기용 서장은 정복을 입고 직접 YTN 건물까지 들어가 현장지휘를 운운해 논란을 일으켰다. 뒤에서 서장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만약 수사권도 없는 총리실에서 언론사 노동조합에 대한 수사지침을 내린 것으로 결론이 나고, 이 같은 지침에 의해 언론사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며 공정방송투쟁을 전개했던 기자들이 구속되고 해고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 실상은 또 한 번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BH지침에 의해 노종면 등 언론인들이 부당하게 해직됐다는 주장 또한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