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이 “예술이 배고프다 해도 기본은 해야하는 거 아니냐”며 현장에서 겪는 부당함을 호소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전국 을 살리기 비상대책위원회는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을의 눈물’ 이라는 사례발표회를 개최했다. 이 날 발표회에는 방송연기자, 보조출연자, 그래픽 디자인 생산노동자, 인디 뮤지션, 영화스태프 등이 사례발표자로 참석했다.

9년차 뮤지션인 단편선(본명 박종윤·28)씨는 한 달에 70~80만원 정도 번다. 이마저도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먹고 살만한’ 편이다. 그는 “예술가가 가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기본은 해야한다”면서 “보통 월세가 50만원인데 한 달에 70-80만원 벌면 곤란한 거 아닌가, 그래도 제가 9년차인데”라고 말했다.

인디 뮤지션들이 음악활동으로 수익을 내는 방법은 음반·음원·공연 3개 정도다. 그러나 중소뮤지션은 대부분이 이 중 어느 것에서도 제대로 된 수입을 얻지 못한다. 음반은 구매자가 없고 음원은 한 곡당 500원 이지만 보통 ‘패키지 상품’으로 판매가 된다. 이 경우 한 곡당 100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린다. 공연 역시 임대료 등을 내고나면 뮤지션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다. 단편선씨는 “5년 동안 200회 이상 공연을 했는데 돈을 받은 적은 딱 2번”이라 말했다.

비단 인디 뮤지션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갑 방송연기자노동조합 정책위 의장에 따르면 현재 활동하는 방송연기자 70%가 연소득 1000만원 미만의 생활을 하고 있다. 문 의장은 “방송인들이 사회에 한 기여로 따지자면 최상위에 속해야 하지만 을에 위치에 있는 것은 방송 3사의 엄청난 힘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 의장은 “2009년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소속사·배우간 노예계약이 개선됐다”면서 “그러나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와의 계약은 전혀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방송사가 열악한 조건으로 계약을 할 뿐만 아니라, 외주제작이라는 보호막 아래 책임과 의무는 방기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말이 외주제작이지 모든 것을 방송사가 관리한다”면서 “방송사의 권력 앞에 외주사는 전혀 힘이 없다”고 지적했다.

통상 ‘엑스트라’로 불리는 보조출연자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보조출연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지난해 KBS <각시탈>에 보조출연하던 박희석씨 사망으로 사회에 알려지게 됐다. 지난해 4월 보조출연자들이 탄 승합차가 전복되면서 박씨는 숨지고 29명이 다쳤지만 KBS는 100일 이상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됐다. (관련기사 <보조출연자 사망-시청률 1위…각시탈의 명암>) 그 후 KBS는 보조출연자 대기실을 만들어 보조출연자의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 날 참석한 문계주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위원장은 “보조출연자들은 여전히 열악하다”면서 “보조출연자 대기실도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실상은 KBS의 홍보물이었다”고 비판했다. 마땅한 대기실이 없는 보조출연자들은 단 한 컷의 촬영을 위해 공원·피시방·사우나 등에서 대기시간을 보낸다.

임금도 열악하다. 문씨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보조출연자의 임금은 8시간에 5만 5천원이었다. 여기서 용역업체가 1만 2천원을 가져가고 보조출연자는 4만 3천원을 받았다. 그런 올해에는 오히려 임금이 깎였다. 방송사가 용역업체에게 4만 8천원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올해 보조출연자들의 임금은 8시간에 4만원이다. 이마저도 매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임금체불 역시 빈번하다.

이에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헌욱 변호사는 공적개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지금까지 문화는 자율성이 중요하다며 ‘지원은 하지만 간섭은 안 한다’는 원칙이 있었지만 이는 콘텐츠에 관한 것이지 거래에 관한 것은 아니”라며 “거래에는 국가가 간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권리를 침해받는 사람들에게 당사자가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안 된다”면서 “거래관계를 책임지는 담당관을 배치하는 등의 공적 개입이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단편선씨는 “나라가 저한테 도움을 하나도 주지 않고 있다”며 “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국가가 그 길을 막는다면 국가는 그 젊은이에게 빚을 지는 것”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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