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태를 의역하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비판의 상대에게 던지는 말로는 다소 거칠고 험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번 귀태의 대상이었던 박정희나 기시 노부스케에 대해서 그렇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대선 시 지방강연을 하는 중 강연 내용 중에 우리 대한민국에 태어나서는 안됐어야 할 것과 다시 태어나면 안돼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고 한 말이 이번 귀태파문으로 인해 기억이 되살아 한 마디 하고자 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귀태라고 할 만한 자들이 한 둘이겠는가. 우선 이완용 등 을사오적이 있고, 일제에 충성한 문인 이광수 등 크고 작은 친일파들이 무수히 널려있다. 해방 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쿠데타 독재 세력들이 그들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또 60여년간 온 국민들이 피땀 흘려 이룬 경제 부흥을 권력에 유착하여 독점한 것도 모자라 국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재벌, 권력·금력과 야합한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귀태 발언, 막말과 촌철살인(寸鐵殺人)

   
1961년 11월11일 일본 총리 관저 만찬회. 가운데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오른쪽이 이케다 하야토 총리, 왼쪽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사진=민족문제연구소 자료집
 
귀태 논란은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박정희와 일제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를 귀태라고 하고, 박 대통령과 아베를 ‘귀태 후손’이라고 한 지적이 그 발단이다. 청와대 홍보수석,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통해 격렬하게 성토하고, 새누리당은 국회를 보이콧 했다. 민주당과 홍 의원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공세에 사과하고 물러섰다. 국민 여론도 귀태 발언을 좋지 않게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번 귀태 발언에 대해 막말이라며 비판하는 의견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언어와 문화는 그 시대 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귀태가 우리 역사와 정치 현실을 담았다면 촌철살인이다.

독립운동가로 임시정부 위원을 지내신 성균관대 설립자 심산(心山) 김창숙 선생이 이승만을 향하여 “남들은 피 흘리고 싸울 때 외국여자하고 놀다 온 게 무슨 대통령이냐”고 하셨다가 미운털이 박혀 옥고를 치르신 적이 있다.

   
스물여섯의 광복군 장준하. ©장준하기념사업회
 
사상계 대표 장준하 선생은 66년 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해 “우리나라 밀수 왕초는 바로 박정희”라고 하여 체포되어 옥살이를 하셨다. 심산 선생은 평생 불의와 타협하지 않은 곧은 삶으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고 있고, 장준하 선생은 의문의 죽음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박정희 유신독재에 끝까지 항거했다.

육두문자가 아니면 상관없지 않은가? 작금 우리 정치 수준과 권력의 도덕성이 그렇게 점잖지 않고, 또 우리 현실이 그렇게 점잖은 말로 비판이 가능한가? 국정원이 정치공작도 모자라 외교문서를 마음대로 공개하고, MB정권은 국토의 젖줄을 파헤치고, 원전비리로 국민의 생명을 농락하고, 새누리당은 공개된 정상회담 문서를 갖고 국민들을 난독증으로 모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귀태’에 대한 청와대 비판이 엉뚱하다

   
만주군관학교 졸업앨범에 실린 박정희 사진
 
   
1967년 4월 대통령 선거 기간 중 국가원수모독죄로 구속된 장준하. ©장준하기념사업회
 
대통령의 아버지를 발가벗겨 귀태라고 했으니, 청와대가 발끈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청와대의 논리가 엉뚱하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홍 의원의 귀태 발언에 대해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김행 대변인도 “금도를 넘어선 민주당 의원의 막말에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이는 대통령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맹비난했다.

   
고 장준하 선생 장남 장호권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그런데 귀태 발언이 과연 대통령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인가? 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망치고, 국민을 모독하는 일인가? 권력을 비판하는 것을 어찌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으로 단순 연결하는가? 오버하는 것이다

군사 쿠데타와 유신독재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박정희의 망령,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역사를 부정하고 군국주의 부활을 노리는 아베에게 적당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다만 박 대통령을 아베와 함께 ‘귀태의 후손’이라고 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대해 아직 섣부른 면이 있다. 과거사, 경제민주화, MB정권 부패 심판, 국정원 개혁 등 정책이 그동안 불만족스럽긴 해도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귀태의 후손’이 되고 안 되고는 더 두고 볼일이다. 선택은 대통령과 청와대, 여권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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