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측이 용역 직원들을 동원해 편집국을 폐쇄한지 15일로 한 달이 됐다. 기자들의 출입을 가로막은 회사 측은 하종오 편집국장 직무대행을 비롯한 일부 부장 및 기자 10여명으로 신문을 제작·발행해왔다. 법원이 기자들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인 결과 지난 9일부터는 기자들이 다시 편집국으로 출근하게 됐지만, 이른바 ‘짝퉁신문’은 여전히 발행되고 있다. 
 
편집국 폐쇄 이후인 17일(월)부터 7월15일까지 신문이 발행된 날은 모두 25일이다. 25번의 ‘짝퉁신문’이 발행된 것이다. 평소 190여명의 기자들이 제작하던 신문을 10여명의 기자들로 제작하겠다는 사측의 ‘결심’은 무모했다. 25일 동안 무수한 ‘사고’가 발생했다. 언론노조 한국일보사지부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정상원)는 “‘쓰레기 뭉치’라는 말도 과분”하다고 지적했다. 
 
CJ E&M 부회장이 이미영?…오타·오보 속출
 
한국일보 6월26일자 14면을 유심히 지켜본 독자라면 고개를 갸우뚱했을 법하다. ‘검찰 소환 이재현 CJ그룹회장 경영공백 누가 메울까’라는 어깨제목 밑에 ‘이미영 부회장? 손경식 회장?’이라는 제목이 굵은 글씨로 보도됐기 때문. ‘이미영 부회장’은 ‘이미경 부회장’의 오타였다. 기사 본문에서는 ‘이미경 CJ E&M 부회장’이라고 써놓고도, 제목에서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 한국일보 6월26일자 14면. CJ 이재현 회장의 검찰 구속수사 이후 경영권 승계 향배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CJ E&M '이미경 부회장'을 '이미영 부회장'으로 잘못 지칭하는 제목이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6월27일자 1면도 ‘대형사고’ 감이다. 한국일보는 <암 등 4대 중증질환 필수치료 2016년까지 모두 건보 적용> 기사를 내보내면서, 기사 안에 ‘비과세·감면 총액 추이’, ‘소득규모별 비과세·감면 현황’ 그래프 두 개를 배치했다. 바로 위에 배치된 <비과세·감면 대폭 축소…‘부자증세’> 기사에 들어갔어야 할 그래프가 엉뚱하게도 자리를 잘못 잡은 것이었다.
 
스포츠면도 다르지 않았다. 6월21일자 21면에 실린 <이승엽 홈런 새역사 352호> 기사에는 이승엽 선수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다. “이승엽이 20일 인천 SK전 3회초 1사 1·3루에서 통산 352호 홈런을 쏘아 올리고 있다”는 설명이 달렸다. 그러나 나머지 신문들에 실린 이승엽 선수의 모습과는 달랐다. 한국일보에 실린 사진 속 유니폼은 10년 전의 것이었다. ‘오보’였다.

   
▲ 동아일보 6월21일자 1면
 
 
   
▲ 한국일보 6월21일자 21면. 이승엽 선수의 홈런 신기록 달성 소식을 전하면서 “이승엽이 20일 인천 SK전 3회초 1사 1·3루에서 통산 352호 홈런을 쏘아 올리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이 사진은 10여년 전의 사진인 것으로 드러났다.
 

연합뉴스 기사 표절 일색…사설도 표절해 ‘경고’
 
‘짝퉁신문’은 꼬박꼬박 나왔다. 10여명의 부장 및 기자들은 연합뉴스 기사를 가져다 옮기거나, 연합뉴스 기사를 적당히 수정해 본인의 이름을 달고 지면에 내보냈다. 6월18일자의 경우, 전체 91건의 기사 중 연합뉴스를 그대로 전재한 기사가 절반이 넘는 46건이나 됐다. 경제면, 문화면 등 연합뉴스 기사로만 한 면을 채운 경우도 꾸준히 발견된다. 
 
‘바이라인’이 달려있는 기사들도 미심쩍긴 마찬가지다. 6월19일자 8면에 실린 <상가 과잉 냉방 “절전 나 몰라라”> 기사는 6월18일 저녁 송고된 연합뉴스의 <'문 열고 냉방' 단속 혼란…일부 상인 '나 몰라라'>를 빼닮았다. 서울 명동과 광주 충장로 일대를 돌며 상인들의 반응을 전한 기사인데, 한국일보는 연합뉴스 기사에 등장한 상인들의 발언을 제멋대로 가위질 했다. 

   
▲ 한국일보 6월19일자 8면. 연합뉴스의 기사를 베끼는 과정에서 연합뉴스 기사에서 광주의 한 상인이 한 발언으로 보도된 부분이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 책임자'의 것으로 둔갑되기도 했다.
 
 
심지어 사설도 베꼈다. 6월19일자 한국일보 사설 <성범죄 근절, 법률 강화 이후 과제 크다>는 하루 전 나온 연합뉴스의 시론 <성범죄 근절, 법률 강화만으론 부족하다>를 거의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신문윤리위원회가 ‘중앙 일간지가 이처럼 다른 언론사의 사설을 전면적으로 표절하는 것은 유사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경고’를 결정할 정도였다.
 
비대위, “‘쓰레기뭉치’라는 말도 과분”
 
 
비대위는 또 “한국일보 고유의 스타일이 소리 소문 없이 파기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 지면에서 앞뒤가 맞지 않거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지면구성도 비일비재했다”고 지적했다. NLL 대화록 공개 논란, 국정원의 대선 개입, 한·중 정상회담 등의 이슈에 대해서도 “크게 균형을 잃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게 비대위의 설명이다.
 
비대위는 “‘쓰레기뭉치’라는 말도 과분한 지난 한달 동안의 한국일보의 지면에 대해 회사는 지금까지도 ‘정상적인 제작을 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이런 후안무치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런 지면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국일보가 진짜 한국일보가 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대위, “관계사 외상거래 배임 의혹”…‘경영파탄’ 자료 공개
 
한편 비대위는 15일부터 장재구 회장의 ‘부실경영’ 실태를 고발하는 자료를 시리즈로 배포한다고 밝혔다. “2002년부터 10여년 동안 장 회장은 부실 경영과 배임 횡령 등으로 한국일보를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망가뜨렸으며, 앞으로 그 의혹들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그 첫 순서로 비대위는 관계사 외상 채권과 관련한 배임 의혹을 제기했다. 

   
▲ 최근 2년 동안 한국일보의 관계사 외상매출 현황. ⓒ한국일보 비상대책위원회
 
 
이에 따르면, 한국일보사가 코리아타임스, 서울경제 등 관계사에 대해 보유한 매출채권은 265억원에 달한다. 비대위는 “지난해 한국일보의 총매출이 731억912만원임을 감안할 때 연매출의 36.2%를 관계사 외상으로 주고 있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외상 판매대금’은 매년 증가해 전년도(2011년)에 비해 68억원이나 증가했다.
 
비대위는 “회사 규모에 걸맞지 않은 큰 금액을 관계사 매출채권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경영난 가중에도 불구하고 이런 외상을 회수하려는 의지를 전혀 내비치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행우는 한국일보에 대한 배임행위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법원도 회수가 불가능한 외상거래 등 업무상 부당한 외상거래에 따른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비대위는 “이렇게 회사 측이 매출채권의 회수를 게을리 하는 이유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외상으로 처리된 금액 중 상당수가 장재구 회장의 주머니로 들어갔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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