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방통심의위 ‘백년전쟁’ 심의서 한바탕 ‘역사 논쟁’
방통심의위 ‘백년전쟁’ 심의서 한바탕 ‘역사 논쟁’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vs “사실에 근거한 다큐”

12일 오후,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 위치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소위원장 권혁부) 회의장에선 ‘역사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1월21일부터 3월3일까지 퍼블릭 액세스 채널 RTV를 통해 방송된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이 심의 안건으로 올라온 탓이었다.
 
<백년전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역사 다큐멘터리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룬 두 편이 RTV를 통해 방송됐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이후 유튜브에서는 이미 200만건을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각각의 시리즈에는 ‘두 얼굴의 이승만’, ‘프레이저 리포트-누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켰는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심의는 두 편에 대해 별도로 진행됐지만, 결론은 비슷했다. 심의위원들의 의견은 예상대로 여당 측과 야당 측으로 갈렸다. 여당 측 위원들은 ‘역사왜곡이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이라며 중징계 의견을 냈고, 야당 측 위원들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공정성 심의 대상이 안 된다’며 문제 없다는 의견을 냈다.

   
▲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민족문제연구소
 
 
권혁부 위원은 ‘이승만의 두 얼굴’ 편에 대해 “이 프로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전면 부정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가지 왜곡한 구석이 드러났다”며 “이렇게 매도해도 되느냐”고 지적했다. “공정하지도 않고 객관적이지도 않은 편향적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엄광석 위원은 “증오의 먹물로 써내려간 역사물”이라며 “엄청난 역사왜곡”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엄 위원은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비판이 함께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오로지 이승만 대통령의 부정적 면만 강조했다”며 “이런 건 우리 방송에서 허용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성희 위원은 “음란물이나 폭력물만 위험한 게 아니라 역사왜곡물도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이승만을 악마화해서 문제가 아니라 어느 한쪽 면만 부각시킨 것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걸 덥석 방송이라는 매체에 뿌린 사람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여당 추천 위원들은 최고 수준의 징계인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의견을 냈다. 

   
▲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민족문제연구소
 
 
반면 김택곤 위원은 “이 프로그램처럼 철저히 고증과 자료에 의존해서 풀어간 프로그램도 본적이 없다”며 “사실 기술에 있어서 크게 어긋남이 없다”며 ‘문제 없음’ 의견을 냈다. 그는 “불편한 내용이 있을 수는 있지만 불행히도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의 모습을 제대로 담았다”며 “문제를 제기한다면 어떤 게 왜곡이고 사실이 아닌지 설명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장낙인 위원은 “이 프로그램은 이승만 대통령의 또 다른 모습을 사료를 통해 알려주고 있는 내용”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장 위원은 “공과 과를 다루는 입장에서 서로 상반된 시각에서 한 인물을 평가할 수 있다”며 “(그건) 논쟁과 토론의 영역이지, 심의대상이 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각하’ 의견을 낸 것이다. 
 
곧바로 이어진 ‘프레이저 리포트-누가 한국 경제를 성장시켰는가’ 편에 대해서도 비슷한 양상이 전개됐다. 위원들은 산업화와 민주화, ‘한강의 기적’과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에 대해 저마다 다른 평가를 내놓으며 해당 프로그램을 심의했다. 
 
엄광석 위원은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우리 민족중흥을 일으킨 지도자, 북한보다 국민소득이 낮았을 때 그걸 극복해서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지도자라고 평가하는데 이런 다큐의 시각과는 차이가 크다”며 “그야말로 증오의 시각으로 써내려간 것 아니냐. 이런 게 어떻게 방송에서 가능하겠냐”고 강조했다.
 
박성희 위원은 “경제개발을 미국이 주도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심한 억측 아니냐”며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객관적 사실을 하나하나 따질 생각은 없다”면서도 “큰 틀에서 역사를 조명하는 방송사의 태도나 사명감을 지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민족문제연구소
 
 
권혁부 위원은 “과(過)만을 부각한 부정적 시각의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권 위원은 “경제개발이라는 게 설사 계획을 (미국에서) 짜줬다 하더라도 추진력이나 통치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일본 총리 앞에서 ‘명치유신의 지사들을 존경한다’고 말했다는 내용에 대해 “이렇게 매도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김택곤 위원은 “미국이 당시 한국을 공산화로부터 지키기 위해 최소한 경제발전을 이뤄야 겠다고 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며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굳이 토 달 게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리포트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미국이 짰고,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해서 성공시켰다는 내용도 있다”며 “자료 왜곡이나 편중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낙인 위원은 ““미국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봤는지 전달하는 내용”이라며 “악의적 평가를 위해 사실을 왜곡했다면 문제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장 위원은 “미국이 제안한 걸 박정희 대통령이 받아서 한 게 박 대통령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라며 역시 ‘각하’ 의견을 냈다. 
 
여당 측 위원들이 ‘관계자 징계 및 경고’ 의견을 내고 장낙인 위원이 ‘각하’ 의견을, 김택곤 위원이 ‘심의보류’ 의견을 내면서 결국 합의는 무산돼 전체회의로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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