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가까이 다가온다. 정부는 그동안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부분적 민영화를 추진한 이명박 정부와 달리 ‘공공기관 합리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가스, 철도, 의료 등 공공 서비스 및 인프라에 대해 민영화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다르다. 최근 정부는 2015년 개통할 수서발 KTX를 ‘한국철도공사가 일부 출자하는 제 2의 법인’에게 맡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경상남도(도지사 홍준표)는 ‘적자’와 ‘강성노조’를 탓하며 지역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을 폐업했다. 이명박 정부가 민영화와 구조조정의 터를 닦았다면 박근혜 정부는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모양새다.

기후정의연대와 ‘민영화 반대 공동행동’은 30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전력·가스 분야 경쟁도입- 민영화 현황과 쟁점>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는 전력, 가스 등 공공서비스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는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정전이 발생할수록 돈을 버는 것은 재벌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박근혜의 에너지 민영화=박근혜 후보는 대선공약에서 “전력, 가스 시장의 독점 구조 때문에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면서 “비합리적인 전기요금으로 전기사용이 불편하고 수요관리 효과가 낮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경쟁 체제가 이끄는 건실한 수급시장 형성”을 주요 공약으로 발표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전력 판매 시장을 경쟁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유력한 방안은 한전의 배전을 분할해 특정지역의 소매전력 시장을 민간에 개방하는 것이다. 현재 민간발전회사들은 자신이 생산한 전력을 한국전력에 공급하고 비용을 받는다. 판매시장이 개방될 경우, 기업이 특정지역 인프라를 구축한 뒤 시민들에게 전기를 판매할 수 있다. 공공 서비스로서 전기가 아니라 사기업의 상품이 되는 것이다.

애초 에너지 부문 민영화 움직임은 IMF 경제위기를 전후로 시작됐다. “원래 민자발전은 정부가 자본조달을 목적으로 1990년대 중반 추진했다. 당시 급격히 증가하는 전력수요로 인해 한전 자본력이 부족하자 일부 민간자본이 발전소 건설을 허용하는 대신 생산전력을 한전이 전량 구매하는 방식(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에너지 민영화는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수요전망 이후 본격 추진됐다. 2010년 정부는 2030년 에너지 수요가 388.9백만TOE(TOE, Ton of Equivalent)로 예측했다. 이는 2008년에 예측한 342.8백만TOE보다 13.8% 증가한 것. 이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2008년 4.95TOE에서 2030년 8.0TOE로 61.6% 증가하게 된다. TOE는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정한 에너지 단위로 1TOE는 석유 1톤을 태울 때 발생하는 열량이다. 일반가정(200kWh/월)에서 약 1년 반 정도를 쓸 수 있는 전력량이다.

▷폭증한다는 전기소비, 이 전기는 누가 만드나?=많이 쓸 것이기 때문에 발전소를 늘려야 하고, 사기업의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이명박 정부는 이와 함께 제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계획에 따르면 2024년 전원별 발전량은 원자력 48.5%, 석탄 31%, LNG 9.7%, 유류 0.5%, 양수 1.3%, 신재생 8.9%다. 2010년과 비교할 때 원자력과 신재생은 늘고 석탄과 LNG는 줄었다.

문제는 민간발전사들이 석탄화력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에 따르면 동부건설와 현대건설은 석탄화력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다.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SK건설과 삼성물산, 동양파워도 석탄화력 발전을 추진한다. 석탄화력은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방식이다. 석탄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10이라면 LNG는 6이다.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기조는 저탄소 녹색성장이었지만 사실 고탄소 산업을 마구 허용했다. 민간발전사들은 석탄화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올해 2월 지식경제부의 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에 따르면 정부는 원자력의 피크기여도를 2012년 26.0%에서 2027년 27.7%로, 석탄도 30.8%에서 34.6%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력발전에 대한 실질적 의존도는 높아지면 민간발전사들은 손해볼 일이 없을뿐 아니라 시장에서 입김이 세진다.

현재 건설 중인 발전설비와 제 6차 계획에 선정된 민자 발전설비까지 더하면 2027년 한국의 화력발전 설비용량 중 민자발전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된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민간발전의 비중이 증가하는 것은 발전 부문에서 공공의 통제범위를 벗어나는 발전소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민간 기업은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의 감시와 감독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발전사인 포스코에너지, SK E&S, GS파워, GS EPS 홈페이지 화면 캡처.
 
▷전기는 1/10 만드는데 순이익은 더 많은 민간발전사=1990년대부터 전기를 만들어 온 포스코에너지와 SK E&S, GS파워, GS EPS 등 민간발전사가 몸집을 키웠다. 정부는 또한 중국계 발전기업 메이야(MPC)의 석탄화력발전 진출을 허용했다. MPC는 순천과 대산에 발전소를 두고 있다. 반면 한전 자회사의 부분적 민영화가 진행됐다. 한국전력의 자회사 한국전력기술과 한전KPS의 지분 일부가 매각됐다. 노동계에서는 이를 우회된 민영화라고 보고 있다.

재벌이 에너지 산업에 욕심을 내는 이유는 결국 수익성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남동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등 한전의 자회사와 민자발전사 6곳의 설비용량과 당기순이익을 비교해보면 설비용량은 공기업이 10배 많은데 이익은 민자발전사보다 더 많다. 2012년 기준 한전 자회사들의 설비용량은 70,000MW이고, 민간발전사는 7,200MW 정도다. 그런데 한전 자회사의 당기순이익 총액은 8061억 원이고, 민간발전사는 9348억 원이다.

민간발전사의 이 같은 고수익 배경에는 원료 직수입, 수입 과정에서 특혜, 민간에 유리한 전력거래 시스템이 있다. 특히 예비전력 생산능력을 가늠하는 설비예비율은 민간의 참여 뒤 크게 떨어졌다.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김동성 정책실장이 제시한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기의 설비예비율은 2002년 15.3%에서 계속 하향 추세다. 2008년 12.0%였는데 2011년 4.8%까지 주저 앉았다. 2012년은 7.7%다.

▷“전력난이 심할수록 재벌이 돈 버는 구조”=전력시장의 가격 결정구조도 민간에 유리하게 돼 있다. 발전기의 입찰가격으로 결정되는 계통한계가격(SMP)이 기준이 되는데 복합화력이 주로 SMP를 결정한다. 민자발전사의 설비는 모두 복합화력이다. 공기업 발전사들은 한전에 SMP에서 연료비를 공제한 뒤 일정부분 할인한 가격으로 전력을 파는 반면 민자발전사는 할인이 없다. 민간이 시장 거래 가격을 결정하고 공적 역할은 하지 않는 셈이다.

김동성 실장은 “전력난이 심해질수록 민자 발전회사들의 판매가격 결정력이 높아진다”면서 “공급예비율이 떨어질 경우 민자 발전회사들은 기록적인 이윤을 챙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전이 발생할수록 민간발전사의 시장 지배력과 가격 결정력이 강해진다”는 것이 김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어 “전력수요 관리를 위해 민자 회사에 엄청난 보조금을 줘야 하는데 정부가 공기업과 세금으로 재벌 대기업을 육성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력기반기금 중 전력부하관리에 사용되는 보조금은 2002년 551억 원에서 2012년 4046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민자발전회사의 당기순이익은 290억 원에서 9407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뿐 아니라 현재 한전 자회사들은 22개 민자발전사에 지분을 투자하는 등 민자사업자를 육성하고 있다.

한전은 만성적인 적자를 자회사의 배당금, 할인율 조정, 전기요금 인상 등으로 해결하고 있다. 한전 분할이 비효율적인 대목 중 하나다. 한전은 지난해 3조 2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8년부터 따지면 누적 손실액은 9조 4000억 원이다. 부채는 총 55조 원이다.

▷한전을 에너지공룡으로 만들어 해결하자?=그렇다고 한전이 무작정 설비를 늘리고, 자회사에 민간발전사와 같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 대안은 아니다. 한전이 민간발전사에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해 이들이 폭리를 취할 수 없게끔 규제하는 것이 급선무다. 산업용 요금을 인상하는 것도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원자력 육성 정책을 포기하고 에너지 다변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사회공공연구소 송유나 연구위원은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적자의 원인인 전력거래시스템을 바꾸고 자회사와의 불편한 거래를 중단해야만 궁극적인 적자 축소가 가능할 것”이라며 “또한 원가에 아직도 미치지 못하는 산업용 요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자료 링크: 사회공공연구소 2013년 4월 이슈리포트 <박근혜 정부의 친재벌 에너지(전력·가스) 정책 : 민자발전확대+가스직도입=재벌 사유화>]

2012년 전체 전기소비 중 산업용이 55.3%를 차지한다. 주택용은 14.0%다. 판매단가는 주택용 1kWh당 123.69원인데 산업용은 92.83원이다. 산업용 단가는 원가의 90%다. 정부는 전기 사용 자제를 주장하지만 한국의 가정용 전기소비량은 프랑스나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한전이 협박하고 언론에서 아껴 쓰라고 강조하는 주택용과 공공소비 비중은 채 20%도 넘지 않는다. 전기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소비 중 절반 이상은 자동차, 중공업, 반도체, 조선, IT 등 모두 대기업 사용분이다. 재벌기업은 낮은 산업용 요금으로 특혜를 받고, 민자발전에 진출하여 엄청난 수익을 얻고, 전력의 도매공급도 스스로 하고 -도매공급업자 허용-, 천연가스 직수입에도 참여하여 값싸게 쓰고 비싸게 되파는 오퍼를 자처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민영화의 진실이다.”

▷민영화 아닌 ‘공적 통제 강화’만이 대안=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 2001년 두 민자회사가 파산해 10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발전노조 김동성 정책실장은 “전력공급 불안으로 대규모 정전사태와 전기요금 폭등 그리고 전력 사기업의 파산으로 인한 공적자금의 투입 등은 전력산업 민영화가 몰고 올 필연적이고 경험적인 폐해”라면서 전력산업 국유화를 주장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지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전노조 이경호 사무처장은 “민자발전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나눠진 한전 자회사를 재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기업이 투자한 설비는 인정하되 중소 발전소부터 한전이 인수해 공공성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한전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정부 노동조합 소비자가 동수로 이사회에 참여하는 프랑스식 관리 모델을 제안했다.

사회진보연대 정영섭 사무처장은 “화력, 원자력, LNG로 분할된 전력산업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영섭 처장은 “(지금대로면) 분할된 부문이 각각 확대하는 것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렇게 되면 수급 조절은 물론 통제과 규제가 미약해진다. 특히 민간자본에게는 적정이윤을 보장해야 하는데 환경적 고려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소유와 운영을 민주적으로 바꾸고, 시민의 통제가 가능한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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