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유사보도PP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던 날,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와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문기)가 동시에 움직였다. 방통위는 유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엄벌’을 약속했다. 미래부는 ‘협조’를 약속했다. 일단 CJ와 경제신문들은 반발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학계에서는 이번 논란을 종합편성채널의 대리인 방통위와 PP를 진행시켜야 할 미래부의 첫 ‘지역 획정’ 싸움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의견은 갈린다. 방송법 취지를 존중해 유사보도 프로그램을 일부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방통위와 미래부의 단속은 과잉규제이자 언론탄압이라는 의견도 있다. 업계에서는 방통위와 미래부의 ‘협의’에 따라 유사보도PP는 현행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방통위는 10일 보도자료를 내 미래부와 함께 보도프로그램에 대한 세부 분류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CJ 계열 PP와 경제지들이 운영하는 방송채널이 내보내는 ‘유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실태를 조사하고, 등록취소에 이르는 중징계를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방통위는 “관련 사업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미래창조과학부 등과 협의를 통해 보도프로그램의 세부적인 분류기준을 조속히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링크: 연합뉴스 5월 10일자 기사 <방통위, 유사보도 실태조사 착수…적발땐 강력 제재>]

시작은 조선일보의 기획기사였다. 조선일보는 5월 10일자 신문에 관련 기사 3건을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CJ E&M과 시민방송 RTV, 경제신문의 증권정보 방송채널이 유사보도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내보내고 있지만 미래부와 방통위가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링크: 조선일보 5월 10일자 6면 <법률상 뉴스報道 할 수 없는 케이블채널, 교양프로그램으로 포장해 類似(유사)보도 일삼는데… 관심도 없는 미래부 “조사할 여력없다” 뒷짐만>]

기사에는 CJ E&M이 내보낸 <백지연의 끝장토론>과 <쿨까당>이 대표적인 유사 보도프로그램으로 등장했다. 조선일보는 “법률상 뉴스 보도를 할 수 없는 케이블 채널(PP)들이 오락이나 교양 프로그램 형식으로 유사(類似) 보도를 일삼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행 방송법상 보도는 “국내외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의 전반에 관하여 시사적인 취재보도·논평·해설 등의 방송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으로 방통위의 허가 및 승인을 받은 지상파방송,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만 보도프로그램을 편성할 수 있게 돼 있다. 반면 상품소개 및 판매 등 전문편성을 하는 사업자는 미래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전문편성채널은 교양 또는 오락에 관한 프로그램만 편성할 수 있다.

조선일보는 한국경제, 머니투데이, 이데일리, 서울경제 등 경제신문이 운영하는 방송채널도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방송업계 “유사보도 채널만 6개 이상” 장르 비틀어 갈수록 교묘하게 뉴스보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흔히 ‘증권 방송’으로 불리는 채널들은 경제 정보 프로그램이란 명분으로 앵커와 기자가 나와 온종일 뉴스를 전한다”면서 “‘증권 정보’와 ‘뉴스 보도’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고 보도했다.

   
▲ 조선일보 2013년 5월 10일자 6면 머리기사
 
학계의 의견은 갈린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신문방송학과)는 1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보도’라는 이름을 달지 않고 보도하는 프로그램을 방송법 위반으로 단속하는 것은 현행 방송법의 인허가, 승인제도를 고려할 때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제도 자체를 부정한다면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자가 일반PP를 만들고 유사보도 프로그램을 내보낼 위험성이 커진다”면서 “이렇게 되면 자본이 많은 사업자가 뉴스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보낼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전북대 김승수 교수(신문방송학과)는 ‘보도’에 대한 방송법상 정의로 분류할 수 없을 때는 언론 자유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판단해야 한다면서 방통위와 미래부의 ‘재분류’ 방침을 비판했다. 그는 “<백지연의 끝장토론>을 유사보도라고 시비를 거는데 보도와 교양의 거리가 멀지 않은 만큼 성격이 중복되거나 불분명할 경우 언론 자유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교양프로그램의 개념을) 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쟁점은 토론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유사보도 프로그램으로 볼 것인지, 방통위와 미래부의 프로그램 분류 기준이다. 조선일보가 지목한 CJ와 경제지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CJ E&M 관계자는 MBC <100분 토론>도 교양프로그램으로 분류돼 있고 CJ는 방송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CJ 관계자는 “<끝장토론>과 <꿀까당>은 모두 교양프로그램”이라며 “CJ E&M은 방송법을 지키고 있는 만큼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데일리도 13일자 <정책 아닌 정치 우려 ‘유사보도’ 논란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법률상 뉴스 보도를 할 수 없는데 사실상 뉴스를 보도한다는 ‘유사보도’에 대한 논란은 우리나라 방송법이 모호한 탓도 있지만,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입맛에 따라 부풀려져 온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법 상 ‘보도’ 기준이 고무줄 잣대이고, 이번에는 종편이 정치권력을 움직여 잠재적 경쟁자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머니투데이는 조선일보가 방송법을 위반하고 있다고까지 비판했다. 정보미디어과학부 강미선 기자는 13일자 기자수첩 <종편 눈치보는 방통위?>에서 “문제를 제기한 종편은 어떤가. 이들은 ‘종합편성’이라는 존재감을 무색하게 한다. 50% 이상을 보도시사에 할애해 ‘편성 위반’ 논란에 휩싸인 지 한참”이라면서 오히려 종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머니투데이 2013년 5월 13일자 8면 기자수첩
 
조선일보가 ‘법률 검토’를 하고 방통위와 미래부가 움직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종편’ 대리인 방통위와 ‘PP’ 대리인 미래부는 분류 기준을 두고 실랑이를 벌일 수 있지만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기관인 만큼 적당한 선에서 분류 기준을 정하고 프로그램 몇 개에 대한 시정명령 정도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일보가 얘기하는 유사 보도 프로그램은 세부기준을 거쳐 ‘보도’가 아닌 ‘교양정보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PP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할 때 ‘유사보도PP를 정리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있었지만 알만한 나라 중에서 프로그램을 장르별로 규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면서 “조선일보의 타깃은 CJ와 경제신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경환 상지대 교수(언론광고학부)는 “방통위와 미래부가 지역 획정을 하는 힘겨루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면서 “보도와 정보전달을 구분하기 어렵고, 실제 보도를 하는 채널이 늘어난 만큼 규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스 홍수 시대에 뉴스채널의 효용이 희석됐고, 더 많은 보도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사업자의 광고 수주와 시민들의 이용편의에 딱히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이어 “미래부와 방통위가 시장을 놓고 전선을 형성하는 첫 안건”이라면서 “전문뉴스와 일반 정치·사회 뉴스는 성격이 다른데 결국 미래부가 PP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이를 묵인, 허용하는 쪽으로 귀결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는 것은 이경재 방통위원장이 경제신문들의 채널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약속한 대목이다. 한국경제는 13일자 12면에 이경재 방통위원장 인터뷰를 크게 싣고 이 위원장에게 ‘전문편성채널’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확답을 받아냈다. 이 위원장은 전문편성채널을 운영하는 경제신문의 ‘관련 뉴스’가 일반적인 보도가 아니기 때문에 ‘금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예를 들어 바둑채널은 바둑 뉴스, 기독교채널도 교계 뉴스를 내보내는데 보도채널이 아니라고 해서 ‘안 된다’고 하지 못하죠. 보도를 단순히 뉴스로 얘기할 게 아닙니다. 방통위가 걱정하는 것은 정치적 공정성입니다. 최종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면 되는데요. 가이드라인을 정하려 하지만 무궁무진한 스펙이 있어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연구해야 할 사안입니다.”

   
▲ 한국경제 2013년 5월 13일자 12면
 
방통위와 미래부 관계자들의 입장은 ‘갈팡질팡’이다. 방통위 편성평가정책과 관계자는 “방송법상 보도는 취재보도·논평·해설로 돼 있고, 유사한 형태에 대한 실태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쇼 형태를 빌리거나 장르 간 융합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 보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면서 “세부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래부 방송산업정책과 최정규 과장은 “편성에 대한 규제는 방통위가 상당부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편성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논의 과정에서 (세부 분류기준에 대해) 얘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협의를 통해 유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는 만큼 협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관할 아래 있는 사업자들에게 규제를 빠져나갈 기회를 줄 가능성이 높다.

김승수 교수는 “방통위와 미래부가 헌법적 가치와 법률로 규정한 문제를 ‘자체 기준’을 만들어 규제한다면 과잉규제이고 언론탄압”이라면서 “이는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행 방송법은 비정기적으로 사회성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것을 유사보도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면서 “문제가 된다면 모호한 방송법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시민방송 RTV 등 공익적 방송채널과 <뉴스타파> 정도가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온다. 조선일보는 “더 큰 우려는 정치나 선거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한 중소 유사 보도 채널의 등장 가능성”이라며 “자본금 5억 원으로 채널을 만들어 미래부에 등록한 뒤 특정 정치 세력을 옹호하는 시사나 토론 프로그램을 쏟아내는 경우”라고 보도했다.

   
▲ 시민방송 RTV 누리집.
 
이에 대해 언론개혁시민연대 추혜선 사무총장은 “조선일보가 제기한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광고를 둘러싼 밥그릇싸움으로 보이지만 보도와 관련해 정치적인 목적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공익적인 채널이 규제를 받고 (채널이)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추혜선 총장은 “이번 논란은 다가올 채널 재배정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면서 “사업자들 갈등과 이해관계 측면에서만 접근하다보면 사각지대가 생기는데 조선일보의 경우, 나눠진 규제 체계를 교묘하게 활용해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되는 채널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서중 교수는 “<뉴스타파>의 경우 시민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RTV의 편성 요건을 충족시킨다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RTV가 뉴스사업자로 등록한 를 내보내는 것은 등록사항과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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