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해커집단인 '어나니머스'가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해킹했다고 주장하면서 회원 정보 9001명의 리스트를 공개한 뒤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인터넷 유저들이 명단을 가지고 신상 털기를 하고 수사당국도 곧바로 내사에 착수하면서 사실관계가 명확치 않은 상황에서 마녀사냥이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과거 수사당국은 불법으로 수집한 정보는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경우 내사에 바로 착수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상식적으로 명단의 정확성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우선인데도 수사 당국이 내사에 착수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가정보원은 해킹이라고 확인했지만 공개된 자료의 신뢰성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는 분위기이다.
 
어나니머스는 'paste***.com'이라는 사이트에 우리민족끼리의 회원 아이디와 성별, 이메일주소, 국적, 로그인 암호 등을 공개했다. 공개된 회원들의 명단에는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 이메일 계정뿐만 아니라 대기업 이메일 계정, 조중동과 인터넷 매체 등을 포함한 이메일 계정, 교수, 대학생 회원들이 포함돼 있다.

해킹 정보가 공개되고 난후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들은 특히 '간첩명단'이라는 제목으로 이름과 이메일 계정을 입력한 구글링 검색으로 회원 정보를 마구잡이로 공개하고 있다. 이들은 명단에 나온 회원들의 가입 행위만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이 된다면서 간첩으로 몰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명단에 포함된 시민단체 한 인사의 경우 과거 행적과 함께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등이 공개됐다. 전교조 소속 한 교사는 명단에 포함돼 있지도 않는데도 이름과 소속을 공개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해달라는 게시글도 발견됐다.

한 누리꾼은 자신을 "우리민족끼리 명단에 있는 1993년생 ○○○ 본인입니다"라는 제목으로 "굉장히 불쾌하고 솔직히 좀 무섭다"면서 "솔직히 기억도 희미한데 우리민족끼리는 뭐 중고딩 때 가입했는지도 모르겠다. 김정일 욕할라고 들어갔을수도 있고…최근 몇년 동안 그 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한 적도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마녀사냥식 인권침해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가 북한 사이트 우리민족끼리를 해킹하고 가입자 명단을 공개해 파장이 일고 있다.
 

우리민족끼리에 가입을 한 적이 없다는 인사도 취재결과 확인됐다. 명단에 올라온 정일용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연합뉴스 기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우리민족끼리 사이트에 가입한 적이 없다. 현재 차단돼 있는 사이트에 접속하는 방법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정 전 회장은 "연합뉴스에는 북한의 방송과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는 팀이 별도로 있다. 모니터팀이 내 이름으로 가입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연합뉴스는 국가정보원에서 허락한 특수자료취급 기관으로 지정돼 있고 기관장(연합뉴스 사장)이 특수자료취급 인가자를 승인해 북한 자료에 접근할 수 있다. 국정원 전신이 안전기획부에서는 산하기구로 '내외통신'을 둬서 북한의 방송과 신문을 보도하다가 해외에서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를 국정원이 통제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지난 1999년 내외통신을 연합뉴스로 통폐합했고, 연합뉴스는 조선중앙통신과 계약을 맺고 북한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정 전 회장은 "취재과정에서 정보목적과 취재목적이 있다면 우리민족끼리에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이것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고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전 회장은 "어떤 사람이 해킹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적이 내부에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거기에 대해서 떠들고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반드시 후유증이 생기게 돼 있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박주민 변호사는 "정보 자체가 확실한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확인이 안된 정보를 가지고 마녀사냥을 하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를 가지고 수사당국이 수사에 들어가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2005년 삼성 엑스파일 수사 당시 검찰은 진보정의당 노회찬 대표가 폭로한 떡값 검사 명단에 대해 불법취득한 정보로는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독수독과 이론을 내세워 떡값 명단에 있는 검사를 수사하지 않았다. 결국 노회찬 대표는 '삼성 엑스파일 떡값 검사'를 폭로한 행위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라며 유죄가 인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반면 이번 해킹 사건으로 명단이 공개되자 수사당국은 우리민족끼리 가입자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청은 우리민족끼리 가입자 9001명에 대한 명단과 개인정보를 확보해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면서 이적 표현물을 게시하거나 게시물을 퍼날랐을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국가정보원도 "이 문제는 원래 우리 기관이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사안이다. 수사파트에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법적인 해석 문제가 남아있다.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 섣불리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힐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언론사의 이메일 계정도 8개가 포함돼 있어 예의주시된다. 이메일 계정이 포함된 언론사들은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사이트 회원 명단에 포함돼 있는 중앙일보의 편집국 관계자는 "법적인 문제를 논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 "처음있는 일이라서 검토를 해봐야 한다. 허위 계정인지 진짜 직원의 계정인지 아직 모르고 있다. 법적인 문제를 잘 몰라서 아직 회사의 방침이 없다"고 말했다.

박주민 변호사는 "종북이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을 써서 여러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 있는데 구글링을 통한 신상정보 유통은 극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면서 "명단에 나온 사람을 범죄자인 것처럼 기정사실화하고 유포하는 것 자체가 마녀사냥이고 비이성적이다. 수사당국도 중립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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