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 일이다. 월 정액 4만5000원짜리 요금제를 쓰다가 월 1만원을 더 내고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로 갈아탔더니 인터넷 소비 패턴이 확 달라졌다. 우선 와이파이를 켤 일이 없어졌다. 무제한 요금제가 아닐 때는 ‘잠금 해제’를 할 때마다 와이파이를 찾는 게 일이었다. 스마트폰 쓰는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가장 귀찮은 것은 와이파이가 어설프게 잡혀서 인터넷이 느려터질 때다. 안테나 한두 칸 밖에 안 되는 와이파이는 안 잡히느니만 못하다.

무제한 요금제로 갈아타고 난 뒤 동영상 소비가 늘어난 것도 중요한 변화다. 출근 길 지하철에서 3G로 유튜브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팟캐스트를 내려 받거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시도 때도 없이 하고 대용량의 지도 업데이트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무엇보다 편리한 건 스마트폰으로 국회 의사정보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다는 거다. 국회 주요 회의를 스트리밍으로 생중계해주는데 옛날 같으면 컴퓨터로 할 일을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한다.

고작 1만원을 더 낼 뿐인데 이런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니, ‘와이파이 따위는 돈 없는 사람들이나 쓰는 거지’, 이상하고 알량한 우월감마저 들었다. 이제 데이터를 얼마나 썼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다. “데이터 사용량이 ○만원 초과 하셨습니다” 따위의 문자에 가슴이 철렁할 일도 없다. 심지어 같은 스마트폰 단말기를 쓰면서도 데이터 닳는 게 아까워 핸드폰 좀 빌려달라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가 바로 가진 자의 여유를 부릴 기회다.

통신사들은 그동안 소수의 헤비유저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한다며 무제한 요금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헤비 유저 입장에서는 억울할 일이다. 마케팅 수단으로 떠들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소비자 탓을 하다니. KT의 경우, KT의 주장에 따르면 10%의 가입자가 96%의 트래픽을 쓴다. 1%의 가입자가 45%의 트래픽을 쓴다. 이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게 통신사들 주장이다.

선량한 소비자라니, 그럼 나 같은 사람은 사악한 소비자란 말인가. 모바일에서의 데이터 트래픽 폭증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애초에 경쟁적으로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을 때부터 감수했어야 할 일이다. 유선 인터넷에서는 20%의 가입자가 95%를 쓰고 5%의 가입자가 49%를 쓴다. 무선이 유선보다 쏠림 현상이 심하다는 이야기지만 네트워크 자원이 제한돼 있는 무선에서는 문제의 차원이 다르다.

통신사들이 LTE(롱텀에볼루션)로 넘어오면서 무제한 요금제를 은근슬쩍 없앤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T의 경우 3G에서는 5만5000원만 내면 데이터를 무제한 쓸 수 있었는데 LTE에서는 월 5만2000원에 2.5GB 밖에 안 준다. 6만2000원을 내도 6GB 밖에 안 준다. 최대 월 12만5000원을 내면 25GB를 준다. 사실상 데이터 사용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요금을 더 내야 하는 인터넷 종량제나 마찬가지다.

   
SK텔레콤 3G요금제와 LTE요금제 비교.
 

며칠 전 아이폰5에 눈이 멀어 LTE로 넘어오면서 이제 더 이상 가진 자의 여유를 부릴 수 없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 속도가 빨라진 만큼 로딩 시간이 짧아졌고 그만큼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났다.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이제 동영상을 볼 때마다 남는 데이터를 확인해 가면서 봐야 한다. ‘빠름빠름’을 외치는 LTE 시대가 됐는데 LTE를 끄고 느려터진 공짜 와이파이를 찾아다니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이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통신사들 주장도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나 같은) 소수의 헤비 유저가 네트워크 자원을 과점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를 방치하면 트래픽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시스템 전체가 느려지게 된다는 게 통신사들 주장이다. 그러나 드는 의문은 헤비 유저들에게 요금을 올려 받아야 할 만큼 통신사들 비용 부담이 크냐는 거다. 통신산업은 장치산업이라 초기에 설비투자 비용이 크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면 이익이 급증하게 돼 있다.
 

   
LTE를 즐겨 보라는 SK텔레콤의 광고. 그러나 현실은 무제한 요금제가 사라지면서 헤비 유저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방통위에 따르면 3G의 경우 다량 이용자 상위 10%가 전체 트래픽의 69.1%를 사용한 반면, LTE의 경우 상위 10% 다량 이용자가 전체 트래픽의 26.7%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K텔레콤
 

정상적인 경쟁상황이라면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적정가격을 찾아가게 마련이지만 우리나라 통신사들은 과점 구도를 형성하고 담합으로 가격을 떠받치고 있다. LTE에서 일제히 무제한 요금제를 없앤 것도 담합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런 담합을 묵인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호하고 있다. 단말기 보조금 규제가 대표적이다. 가입자들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사실은 통신사들 이익이 줄어들까 걱정하는 꼴이다.

방통위에 따르면 이동통신 트래픽은 지난 10월 기준 4만2145TB, 이 가운데 LTE 트래픽이 50.1%로 절반을 넘어섰다.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던 2009년 11월과 비교하면 127배나 늘어났다. 무선 인터넷 사용 시간도 2010년 상반기에는 하루 1시간 남짓이었는데 올해 상반기에는 1.6시간으로 늘어났다. 특히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2분에서 25분으로 크게 늘어난 게 주목된다.

통신사들은 LTE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설비투자 비용이 크게 늘어났다고 엄살을 떨지만 통신사들의 수익구조는 설비투자 비용을 크게 뛰어넘는 영업이익을 보장한다. SK텔레콤과 KT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각각 2조1310억원과 1조9740억원에 이른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LTE 투자 때문에 영업이익이 줄어들긴 했지만 올해도 각각 1조5620억원과 1조164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시민단체들은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나면 요금을 낮추는 게 맞다고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애초에 투자비용이 일시불로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금융비용 이상으로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면 방통위가 적정수준에서 요금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LTE로 넘어오면서 트래픽이 급증해 무제한 요금제를 없앴다는 주장도 터무니 없는 억지다. 여전히 네트워크 자원이 남아돌고 추가로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는 계획도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들은 헤비 유저를 비도덕적이라고 매도하지만 그건 정말 억울한 일이다. 유선 인터넷의 경우, 집에서 내가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든 뉴스를 보든 온라인 게임을 하든 말든 통신사가 관여할 일이 없다. 그런데 무선 인터넷은 많이 쓴다고 요금을 더 내라고 하고 심지어 다른 이용자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한다. 심지어 내가 무슨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감청하느라 트래픽 감청까지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네이버 온라인 대비 모바일 트래픽 비교. 이미 모바일 트래픽이 온라인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늘어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맥투자증권·에프앤가이드 자료.
 

좋다. 정말 통신사들이 트래픽이 급증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헤비 유저들 때문에 네트워크가 마비될 정도라면 그 구체적인 데이터를 공개하면 된다. 투자비용이 커서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공개하면 된다. 그게 무슨 엄청난 기업 비밀이라고 숨기는 걸까. 우리나라처럼 통신사들이 독과점 담합을 하고 있는 구조에서는 최소한의 정보가 반드시 공개돼야 한다. 방통위는 왜 그런 통신사들을 감싸고 심지어 거들고 있는 걸까.

LTE 무제한 요금제 폐지는 이용자들을 단돈 몇 천원에 쩔쩔매는 찌질이로 만든다. 생색이라도 내듯 와이파이 억세스 포인트를 늘려주겠다고 하지만 사실 와이파이는 모바일 인터넷 확산을 위해 깔아주는 ‘밑밥’일 뿐이다. 무제한 요금제 폐지는 ‘요금 폭탄’의 우려에 편승해 상위 요금제로 옮겨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폭탄이 두려우면 돈을 더 내라, 더 낼 여유가 없으면 아껴쓰면 될 거 아니냐는 폭력적인 발상이다.

LTE 무제한 요금제 폐지는 통신사들의 독과점 담합일 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바일 인터넷에 종량제를 도입하는 퇴행적인 변화다. 기술은 발전하는데 요금은 더 뛰고 이용자들의 선택의 폭은 더욱 줄어들었다. 앞으로 대용량 서비스가 늘어나면서 모바일 트래픽도 계속 늘어날 것이고 이에 편승해 통신사들은 천문학적인 이익을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방통위와 통신사들의 결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인터넷 요금은 전기요금이나 수도요금과는 다르다. 전기나 수도는 쓰면 줄어들고 다시 생산해야 하지만 네트워크는 많이 쓴다고 해서 자원이 줄어들거나 비용이 늘어나는 게 아니다. 전체적으로 트래픽이 늘어나면 설비투자를 확충해겠지만 네트워크 구축 비용을 사용량에 따라 차등 부과할 경우 상대적으로 가격에 민감한 저소득 계층의 정보 접근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 통신사들은 인터넷 접속을 제공하는 것이지 인터넷을 팔고 있는 게 아니다.

데이터를 많이 쓰는 사람이 요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단 돈 몇 만원의 차이도 저소득 계층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인터넷 종량제는 정보 불평등과 정보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할 수도 있다. 5만원쯤 더 낼 수 있는 사람은 부담없이 유튜브에 접속하겠지만 4만5000원 요금제에 가입한 사람은 와이파이를 찾거나 아예 정보 접속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인터넷은 자유와 혁신, 공유의 가치에서 출발한 공공의 네트워크다. 인터넷은 과거 소수 특권 계층에게 허용됐던 정보 생산과 교환, 유통을 모두에게 개방하는 기술이다. 통신사들이 소유하고 제어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통신사들이 영리기업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공공의 자산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감독해야 할 방통위가 통신사들과 결탁해서 담합을 방조하고 심지어 조장하고 있는 건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무제한 요금제 폐지를 무작정 반대한다기 보다는 적정한 수준의 무제한 요금제를 도입하고, 동시에 통신 사업의 공적인 성격을 감안해 최소한의 통신 원가를 공개하고 폭리를 막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거다. 혁신적인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는데 오히려 요금이 뛰어오르고 더 느린 서비스를 선택해야 하는 이런 상황은 분명히 문제가 많다. 통신사들의 탐욕이 창조와 혁신을 억압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