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이강택)과 MBC 노동조합(위원장 정영하)은 8일 여의도 MBC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6월 여야 개원 협상 당시부터 정치권과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문화진흥회 모두 김재철 사장 퇴진을 약속하고 추진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25일 방문진 이사회 직전까지도 김 사장 퇴진을 위한 절차를 밟고 합의 직전까지 이르렀는데, 결국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 캠프쪽에서 방문진 여당 이사를 압박하면서 그르쳤다는 것이다.

사실상 개원 합의 당시 여야 지도부가 김재철 사장을 퇴진시킨다는 이면 합의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이면 합의를 바탕으로 김 사장의 임면권을 가지고 있는 방문진이 김 사장을 퇴진시키기로 했다는 주장이다.

MBC 노조 정영하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6월 방송통신위원회 쪽에서 노조에 파업을 철회하면 8월 새로운 방문진을 통해 MBC 정상화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MBC 노조는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 임명의 주체이고 김재철 사장의 임면권을 가지고 있는 방문진이 MBC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평가하고 권고안을 받아들여 파업을 잠정 중단했다.

방문진 여당 이사가 김재철 사장 퇴진 결의안 준비

특히 지난 10월 1일 방문진 여당 추천 김충일 이사가 노조에 찾아와 '김재철 사장 해임안을 가결시킬 수 있는 결의안을 추진하고자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MBC 노조는 밝혔다. 김 이사가 제안한 결의안에는 ‘MBC 사태의 책임을 지고 김재철 사장과 노조위원장이 동반 사퇴하고 쌍방에서 제기한 고소고발을 취하고 상호 비방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정영하 위원장은 10월 3일 "MBC 정상화를 위해선 김재철 사장이 퇴진해야 첫 단추를 꿰멜 수 있다"면서 김 사장과 노조위원장이 동반사퇴한다는 결의안을 수용했다. 지난 10월 20일에도 김충일 이사는 결의안 내용을 수용한 것이 유효하냐는 뜻을 재차 확인까지 했다.

당시 정 위원장은 "결의안을 통과시키면 김재철 사장이 자진사퇴를 해야 하는데 만약 성사가 안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질문했고, 김 이사는 이에 대해 "다수 이사의 결의라는 것은 과반 이상을 의미한 것이다. 임면권은 방문진에 있다"고 말했다. 방문진 이사 9명 중 과반 이상의 뜻을 결의안에 담아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이끌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23일과 24일 사이 갑자기 '더 이상 결의안 진행이 어렵게 됐다'는 뜻을 전해들었다. 정 위원장은 "다수의 표가 만들어진 상황이었고, 노조위원장이 재차 확인까지 했다. 중간에 진행이 되지 못한 것은 외부적인 힘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정 위원장은 "(결의안에)서명을 한 이사가 과반수를 확보된 상태였다. 김재철 사장이 스스로 퇴진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해임안을 제출해서 가결시키겠다는 뜻도 전달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정치권도 김재철 사장 퇴진 추진 약속

방문진 여당 추천 이사가 김재철 사장 퇴진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주도적으로 추진했을 뿐만 아니라 방통위원회에서도 김재철 사장 퇴진을 약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6월 29일 여야 개원 협상 타결이 되기 전 5월 29일부터 6월 18일까지 여의도 공원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는데 6월 중순 야당 추천의 김충식 방통위 부위원장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충식 부위원장은 '8월 방문진 이사를 제대로 교체해서 김재철 사장을 퇴진시키겠다. 파업을 접어달라'는 뜻을 전달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약속 이행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라고 물었고, 김 부위원장은 자신과 야당추천 양문석 방통위원이 김 사장이 퇴진하지 않는다면 사퇴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강택 위원장은 두 위원의 사퇴로는 김재철 사장 퇴진 약속 이행 여부를 확신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며 MBC 노조 파업 중단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며칠 뒤 김 위원이 농성장을 다시 방문해 이계철 위원장을 포함한 여야 위원 5명이 노조업무복귀 이후, 김재철 사장을  퇴진하는데 의견을 모았고, 이면 합의 형태로 '국민의 눈높이에 따라 김재철 사장 문제를 처리한다'는 내용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여야 지도부도 충분히 공감을 해서 개원 협상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방통위 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김재철 사장 퇴진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야 개원 이후 석달이 지난 10월이 돼서도 김재철 사장 퇴진 움직임이 없자 이 위원장은 "(이면에서 약속한)모든 것을 공개하겠다"는 뜻을 전달하자 "표결이라는 방식을 가급적 피하고 싶다"면서 김충일 방문진 이사가 MBC 노조에 제안했던 김재철 사장 퇴진 결의문 추진 방안을 들고 나왔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주장이다.

또한 이 위원장은 새로운 방문진을 통해 김재철 사장 거취 문제를 결정한다는 내용에 대해 "실제 방통위 여당 상임위원인 홍성규 부위원장과 또 한명의 이행 (결의문 추진)책임자였던 청와대 하금열 대통령실장이 방문진 이사 구성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해 방통위가 8월 선임된 방문진 이사 구성부터 주도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이 같은 과정을 공개하면서 △ 방통위 양문석 위원뿐만 아니라 여야 위원 모두 자신의 직을 걸고 김재철 사장을 퇴진시키겠다고 한 점 △여야 원내 지도부가 이면 합의 내용을 알고 있었다는 점 △청와대 하금열 대통령실장까지 약속 이행 책임을 지고 있었다는 점 등을 강조했다.

결국 지난 6월부터 정치권과 방통위, 방문진 모두 김재철 사장 퇴진에 뜻을 함께하고 결의문을 바탕으로 김 사장의 자진 사퇴를 이끌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 캠프 쪽의 압박을 받고 김 사장을 유임시켰다는 것이다.

청와대-박근혜 캠프 압박 정황은?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 캠프 쪽에서 ‘김재철 사장을 유임시켜라’라고 압박한 정황도 전모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앞서 양문석 방통위원은 청와대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이 김충일 방문진 이사에게 지난 23일 밤 전화를 해 김 사장을 유임시키도록 한 정황을 폭로한 바 있다.

방문진 야당 추천 이사들에 따르면 지난 23일 밤 여당 추천 김충일 이사가 청와대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로부터 ‘김재철 사장을 유임시켜라’라는 압박성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24일 김 이사는 야당 추천 이사에게 ‘더 이상 결의안 추진을 하지 못하겠다.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30일 김충일 이사는 야당 추천 선동규 이사와 김충식 방통위 부위원장을 만나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 캠프 쪽으로부터 압박성 전화를 받았다고 털어놨다는 것이다.
선동규 이사는 미디어오늘 통화에서 ‘30일 김충일 이사가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 캠프의 압박성 전화를 받았다고 얘기한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야당 추천 한 이사는 “김충일 이사가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과 30년 지기 친구라면서 최근에 전화 통화는 한 적이 있다고 한 것은 거짓말을 해놓고 통화 내역이 나올까봐 하는 소리”라며 “김 이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방통위, 방문진 모두 거짓말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김충일 이사는 하지만 청와대와 박 후보 캠프 쪽으로부터 김재철 사장을 유임시켜라라는 내용의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이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저는 이사 9명 전원이 찬성하는 조건으로 결의안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었는데 반대를 한 이사들이 있어서 결의안 카드가 이미 드롭(폐기)된 상태였다"면서 "23일 밤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김무성 새누리당 총괄선대본부장이 이사회에서 김재철 해임 결의안을 추진한다는 얘기를 듣고, 사실 확인 차원에서 나에게 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이들로부터 김재철 사장을 유임시켜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 이사는 지난 30일 방문진 야당 추천 선동규 이사와 김충식 방통위 부위원장을 만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전혀 다른 얘기를 나눈 것으로 기억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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