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찾아간 부천시 오정구 영안모자 본사 앞에서는 대우자동차판매(대우자판) 해고노동자들과 영안모자 관리자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해고노동자들이 영안모자에 고용승계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달려는 것을 영안모자 관리자들이 막으려고 한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신경전이 벌어진다.

영안모자 본사에는 대우자동차판매와 대우버스·자일자동차·클라크지게차 본사도 함께 있었다. 영안모자가 대주주로 있는 OBS는 바로 옆에 붙어 있었다.

OBS는 지난 14일 메인뉴스에서 ‘불법현수막 가려 가며 철거 논란’이라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오정구청이 이중잣대를 적용해 현수막을 가려가며 철거한다는 지적이었는데 하필이면 그 문제의 불법현수막은 대우자판 해고노동자들이 영안모자 앞에 걸어놓은 현수막이었다. 영안모자는 OBS의 대주주이다.

OBS 기자협회는 “보도국장이 사주에 충성하려 공정보도 원칙을 훼손했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보도국장은 방송이 나간 지 일주일 만에 기자들에게 공개 사과했다.

문제가 된 리포트에는 정작 왜 대우자판 해고노동자들이 영안모자를 상대로 투쟁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24일 영안모자 본사 옆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변성민 금속노조 인천지부 대우자동차판매지회장은 “영안모자가 정리해고에 대한 법적 책임은 없을 수 있지만 도의적 책임은 있다”고 말했다. 해고노동자들은 이날로 38일째 천막농성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정리해고가 발표되고 회사측과 교섭하면서 ‘없어지는 회사가 정리해고를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회사에서는 인수하고자 하는 영안모자에서 요구했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대우자판은 외환위기 시기에도 수백억 원의 흑자를 내던 국내 유일의 자동차판매 전문회사이자 인천지역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이었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자본금이 1500억 원, 부채비율은 자본금의 70% 수준, 자산은 1조5000억 원에 달했던 초우량기업이기도 했다. 변성민 지회장은 “자동차판매 사업은 차를 팔면 대금 중 완성차에 수수료를 납부하고 나머지는 갖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투자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대우자판은 그러나 전체매출의 약 5%로 소규모 운영을 하던 건설부문에서 2000년대 중반 건설경기 호황에 힘입어 많은 흑자를 기록하자 2007년부터 건설부문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호황은 얼마 가지 않았다. 2008년 건설경기가 주저앉으면서 대우자판은 창사 이래 한 번도 없었던 적자를 기록한 뒤 2009년과 2010년에도 대규모 적자를 봤다.

급기야 2009년에는 건설부문 부채상환에 차량판매대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았고 자동차제조 공급사인 GM대우·타타대우트럭·대우버스와 갈등을 빚었다. 2010년 3월 GM대우는 대금 지급 지연을 이유로 승용차 총판계약을 해지한 데 이어 같은해 11월 타타대우와의 트럭(상용차) 총판계약도 기간만료로 종료됐다. 자동차 판매사업부분 관련 계약은 대우버스와의 버스총판계약만 남게 됐다.

대우자판은 2010년 4월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나 지난해 8월 워크아웃마저 좌초되고 법원의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법원은 지난해 12월 회생계획안을 승인했다.

법원의 회생계획안 승인으로 대우자판은 잔존법인(청산법인)인 대우송도개발, 차량판매부분을 인수한 영안모자 계열사 대우버스의 신 대우자동차판매, 건설부문을 인수한 중국계 법인인 대우산업개발로 분할됐다. 영안모자는 대우자동차판매 사명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대우버스가 신 대우자판의 최대주주이다.

변 지회장은 “실질적으로 회사가 어려운 시기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당시 건설부분의 송도 부지를 팔아 부채만 정리했어도 큰 문제없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회생계획안이 통과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법원이 승인한 회생계획안에는 “신 대우자판은 버스판매사업부문에서 근무하는 모든 종업원의 고용 및 법률관계를 승계한다”면서도 “분할 대상 부문 이외에 승용차 사업부문 등 나머지 사업부문에서 근무하는 종업원의 고용 및 법률관계는 승계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대우자판과 계약이 끝난 승용차(GM대우)·트럭(타타대우) 판매 부문 고용승계는 책임이 없다고 명시한 것이다. 영안모자가 해고노동자들에게 법적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영안모자측은 “신 대우자판은 기존과 동일한 상호만을 사용할 뿐 구 대우자판의 사업 중 △버스판매사업부 △A/S 사업부 △수입차 일부 사업부 △코래드 광고사업 △우리렌트카 등 5개 사업부문만을 인수한 신설법인”이라며 “구 대우자판 조합원들의 정리해고·고용승계와 관련된 회사는 잔존법인인 대우송도개발”이라고 주장했다. 해고노동자들은 올해 7월 대우송도개발을 상대로 한 해고무효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영안모자가 해고노동자들을 고용할 만한 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영안모자(신 대우자판)는 오토마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브랜드의 전자제품을 모아놓고 파는 하이마트와 비슷한 개념으로 국내외 자동차 영업소와 자동차 부품 매장을 한 건물에서 운영하는 ‘자동차 백화점’ 개념이다.

현재 부평에 있는 대우자판 본사 B동 건물도 1층은 승용차·버스 매장, 2층은 자동차 부품점, 3층은 정비사업소 등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동 건물에서는 해고노동자들이 지난해 1월부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부평 본사를 기점으로 전국적으로 매장을 확대해 나갈 계획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성훈 영안모자 홍보팀장은 “오토마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현재 해고노동자들의 점거농성으로 사업이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변 지회장은 “기존에 영안모자가 인수해 운영하고 있는 대우버스 쪽도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버스 부문은 저희(대우)가 유일하게 현대를 이겼던 차종입니다. 2006년 50% 전후로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었는데 2008년 전후로 점유율이 추락했습니다. 내부적으로 투자를 하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우버스 판매 인력이 44명인데 현대는 전문판매사원만 250명이 넘습니다. 경쟁이 안 되는 거죠. 버스를 잘 만들어도 판매할 활로가 없습니다.”

지회는 고용승계를 통해 일단 영안모자 계열사인 대우버스·클라크지게차·수입차판매·렌터타사업 등에 배치하고 오토마트 사업이 활성화되면 필요 인력을 전환배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용이 승계된다면 한국GM 판매권을 회복하기 위해 노사가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제안도 하고 있다.

변 지회장은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은 청계천에서 일군 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고 기업의 목적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며 “백 회장 주변에서 고통받는 160여명의 노동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사람은 백 회장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영안모자에서는 한국GM이나 청산법인인 송도산업개발(대우송도개발)에 가서 고용을 얘기하라는 데 청산법인에 가서 고용을 얘기할 수도 없고 한국GM은 차량 판매 업무를 하고 있지 않다”며 “원칙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지역 사회 발전과 고용에 기여할 수 있는 차원에서 고용승계 여력이 있는 영안모자가 심각하게 고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반면 영안모자측은 “구 대우자판에서 승용차와 트럭을 판매하다 해고된 조합원들은 GM·타타대우 총판과 관련된 인원”이라며 “신 대우자판과 이를 인수한 대우버스에서 고용을 승계해야 할 아무런 의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영안모자측은 이어 “백성학 회장이 정리해고 조합원들의 어려운 사정을 헤아리고 도움을 주려 하자 이를 역이용해 회사가 마치 고용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주장하면서 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고용을 주장해야 할 회사들은 배제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무와 자산인수책임 등 터무니없는 논리로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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