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주에서 일어난 아동성폭력 사건과 함께 정치권은 ‘화학적 거세 확대’를 포함한 처벌 수위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형벌 강화론에, 보수언론은 연일 ‘포르노’, ‘성도착증’까지 꺼내들며 장단을 맞추고 있다.

지난달 말 새누리당·정부·청와대는 화학적 거세 확대를 합의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3일 라디오연설에서 “성범죄에 대해 약물치료를 포함한 모든 대책을 검토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힘을 보탰다. 보수언론은 한 목소리로 처벌을 강화하자고 주장해왔다.

조선일보는 1일자 5면에서 ‘성범죄 공식’에 술, 게임, 야동이 있다고 주장한 데 이어 3일자 1면 <수천명의 ‘고○○’이 인터넷서 웃고 있다>에서는 “인터넷에는 아동 성도착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가 10여 개 개설돼 있다”면서 “카페엔 많게는 2780명에서부터 10여명까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고 전했다.

중앙일보는 3일자 3면 <한국, 아동 포르노 하루 1만 건 다운… 제작량 세계 6위>라는 기사에서 “아동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는 ‘롤리콘’에게 아동 포르노는 일종의 범죄 촉매제로 작용한다”고 보도했다.

특히 동아일보는 흉악범죄자에 대한 사형집행을 부추기며 처벌 강화를 강도높게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4일자 1면 머리기사 <흉악범 충격에 부활한 ‘사형집행’ 논란>에서 올해 들어 경기도 수원, 경남 통영, 제주도 등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거론하며 “최근 연이은 흉포한 범죄에 분노한 시민들 사이에서 15년 가까이 중단된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학적 거세를 가장 강하게 밀어붙인 것도 보수언론이다. 동아일보는 이날 13면 <‘性도착증 환자’ 판정 받은 모든 성폭행범에 확대 추진>에서 화학적 거세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며 관련법 개정을 위한 질문 대답까지 구성해 내보냈다. 중앙일보는 앞서 지난달 27일자에 비슷하게 썼다.

동아일보는 “미국 오리건 주의 경우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간 가석방한 성폭력 범죄자의 재범률을 분석한 결과 치료에 응하지 않은 55명 가운데 10명의 재범률은 18.2%였지만 약물 치료를 받은 79명 중에서는 재범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됐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법원이 최대 15년까지 치료기간을 결정할 수 있고, 여기에 쓰이는 약물은 남성 전립샘암, 여성 자궁내막증 등 치료에 쓰이는 ‘성선자극호르몬 길항제’다. 여성호르몬(MPA)과 전립샘암치료제(CPA)는 알약으로 사용된다. 동아는 “이 약물을 주사하거나 경구로 복용하면 뇌하수체에 작용해 남성호르몬을 억제한다”면서 “약물을 투입하면 수염이 나지 않거나 어지럼증이 생기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맥거핀(MacGuffin)은 영화 등의 줄거리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서 관객의 주의를 끄는 일종의 트릭이다. 영화용어로 만들어졌지만 최근에는 각종 매체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자리잡게 되어 영화가 아닌 다른 분야의 설명에도 종종 쓰이곤 한다.)

정치권과 보수언론의 이런 처벌 일변도의 선동과 정책에 대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해와 의학적 이해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지난달 31일 경향신문에 쓴 칼럼 <그들이 ‘화학적 거세’를 선호하는 이유>에서 “2~6%에 불과한 성폭력 신고율, 신고와 기소 과정에서 피해자가 겪는 고통, 낮은 신고율만큼이나 낮은 기소율과 더 낮은 유죄 판결률을 고려할 때, 성범죄를 막기 위한 대책이 ‘주사(注射)요법’이라니, 그다지 설득적이진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어쨌든 성범죄의 규모와 실태가 워낙 심각하기에, 효과라도 확실하다면 극렬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문제는 성범죄의 원인이 성별 권력관계의 불균형 때문이지, 남성호르몬 과다로 인한 생리현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고 했다. “‘화학적 거세’는 진짜 문제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는, 이 경우에는 질 나쁜 맥거핀”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처벌을 강화하자’는 정부와 여론에 대한 비판은 오래 전부터 계속돼 왔다. 정유석 한국성폭력상담소 자문위원은 화학적 거세와 관련된 쟁점으로 화학요법의 실질적 효과 이외에 가해자 인권 침해 여부를 제기했다. 그는 상담소 소식지 ‘나눔터’ 2009년 겨울호에 실은 <아동성폭력 관련 정부대책의 맹점들: ‘화학적 거세’ 관련 미국과 유럽의 정책 동향> 제하 글에서 가해자와 관련된 쟁점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법안에 따라 법원이 ‘물리적, 화학적 거세’를 명할 수 있는 경우 해당조항이 본질적으로 잔인하고 과도한지 △이러한 조치가 범죄에 상응하는 정도인지 △다른 수단에 의해서는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지 △가해자의 자발적 선택과 동의에 의해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경우는 당사자가 약물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바탕으로 동의한 것인지 △가석방이나 보호관찰 등 조건부로써의 동의가 자발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지 등이 쟁점으로 제기된다.

정유석 위원은 ‘처벌’ 중심의 정책이 성폭력 문제를 더욱 비정치화, 병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전반의 공포와 분노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위험 관리를 강조하는 정부의 규제적 경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반문했다. 그는 이어 “성폭력을 정상화하는 사회문화적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성폭력을 개인의 정신적 결함의 문제로 보게 하는 등 성폭력 이슈를 더욱 비정치화, 병리화하는 것이 아닌지 등을 질문한다”고 지적했다.

의학적으로 따져볼 점도 많다.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 정신과학교실 문수진 민정원 반건호 박사팀은 지난해 대한정신약물학회지에 실은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에 대한 임상적 고찰>(A Clinical Review of Chemical Castration Against Sex Offenders for Children) 제하 논문에서 약물의 부작용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성범죄자의 약물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인한 한계도 고려돼야 한다”면서 “CPA, MPA 등의 약물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부작용은 드물지만 심혈관 질환 및 골다공증 등 다양한 부작용으로 인해 치료가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으며, 부작용을 고려해 볼 때 화학적 거세 자체가 비인권적인 처벌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으로 정형화된 의학적 대상 기준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자발성’ 없는 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는 대목도 있다. 현행 한국의 관련 법률에 따르면 화학적 거세는 만 16세 미만의 사람에 대하여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성도착증 환자에게만 적용되며, 검사의 치료명령 청구대상자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이나 감정을 받은 뒤 치료명령을 청구 받은 사람에 한하여 시행된다.

이에 대해 문수진 박사팀은 “대상자의 자발성이 결여된 상황에서 의사의 진단이 곧 대상자의 치료와 처벌을 결정짓는 입장이 될 수 있다”면서 “의사는 화학적 거세의 필요성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신중한 진단과 판단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국내에서 화학적 거세에 관한 효율성과 안정성을 입증할 수 있는 임상적 연구나 학문적 검토가 충분치 못한 점”도 쟁점으로 지목했다.

미국의 경우, 1996년 캘리포니아주가 처음으로 외과적 고환절제술과 남성호르몬 조절 약물요법을 도입했다. 2009년 기준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조지아 아이오와 루이지애나 몬태나 오리건 텍사스 위스콘신 등 9개 주에서 유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9개 주에서 집행을 강제하는 곳은 6곳이지만 초범에게 이를 강제하는 곳은 단 2곳으로 루이지애나와 오리건이다. 그것도 의료·정신과적 기준으로 치료 적합성을 평가한 뒤 이루어진다.

동아일보와 새누리당이 사례로 드는 오리건은 미국에서도 가장 심한 처벌을 내리는 곳으로 꼽힌다. 교정당국이 매해 가석방 대상자나 보호관찰 중인 출소자를 대상으로 강제 화학적 거세를 실시한다. 피해자의 연령에 상관없이 가해자가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

이와는 달리 조지아에서는 17세 이하를 성추행하거나 (피해자에게 신체적 상처를 주거나 남성 간 성교의 경우 포함) 가중된 성추행을 한 가해자에게 화학적 치료를 한다. 의료·정신과적 기준으로 치료 적합성을 평가하지만 집행 강제력은 없다. 약물을 부작용을 가해자에게 사전에 고지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받는다. 비용은 가해자가 부담한다.

화학적 거세를 실시하고 있는 유럽의 언론과 시민단체들 거세의 한계를 지적해왔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3월 14일 <Should sex offenders be chemically ‘castrated’?>(성폭력 가해자들은 화학적으로 ‘거세’되어야 하는가?)라는 제하 기사에서 “피해자 지원 단체들, 보호관찰 전문가들과 형벌개혁단체들은 모두 성폭력이 단순히 섹스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권력과 통제에 관한 것이라고 지적한다”며 “성을 고립시키는 것은 잠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하워드 형벌개혁연맹의 프랑시스 크룩은 “성폭력은 때론 전혀 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폭력과 억압에 관한 것”이라며 “이 약물들은 그러한 성향들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다른 유형의 성적 이상 행동으로 피해자들을 괴롭힐지 모른다”고 비판했다.

한편 새누리당 국회의원 19명은 5일 의사의 소견과 관계없이 검찰과 법원의 뜻에 따라 고환을 적출하는 ‘물리적 거세’를 할 수 있는 ‘성폭력범죄자의 외과적 치료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처벌의 수위를 ‘회복 불가능한 신체 훼손’까지 강화한 것이다.

19세기 후반 스위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물리적 거세는 1990년대 이후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사용돼 왔다. 대부분 가해자의 동의를 얻어 시행되고 있다. 정유석 위원에 따르면 체코의 경우는 최근까지 다수의 사례가 보고됐지만 유럽연합의 고문방지위원회는 이를 ‘치료가 아닌 회복불가능한 신체훼손’으로 보고 체코 정부에 중지를 요청했다. 미국의 경우 텍사스주에서만 화학적 거세 없는 물리적 거세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가해자의 자발적 동의 없이 하지 못한다.

‘물리적 거세’를 두고 인권단체와 학계는 봉건시대로 회귀하자는 발상이라며 비판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강제적으로 인간의 신체를 영구적으로 훼손하는 형벌은 근대 형법에서 모두 사라진, 역사적으로 끝난 제도로서 조선시대에도 없었다”며 “법안을 낸 의원 자신도 통과가 안 될 것을 알고 낸 정치쇼”라고 비판했다고 한겨레는 전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어떤 형벌이든 법정에서 범죄인이 법적으로 다툴 수 있는 상황에서 정해져야 하는데, 그런 절차 없이 소급해서 적용하겠다는 것은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고 한겨레는 보도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트위터(@unheim)에 “성범죄자 고환 제거 법률 나왔답니다. 나라가 점점 무서워지네요. 이제 봉건적 신체형까지 부활하는군요. 아주 저열한 포퓰리즘입니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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