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사태가 심상치 않다. 이번 사태에 대해 전면 대응을 결의했던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지난 1960년 출범 이후 53년 만에 처음으로 집회를 열었다. 이처럼 방송 작가들이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사태에 대해 전면 반발하고 있는 것은 이 문제가 단순한 방송사-작가 고용 문제를 떠나있기 때문이다.

MBC 경영진이 PD수첩 작가들을 전원 해고한 과정을 보면 특히 일반 고용 관계에서도 볼 수 없는 상식밖의 행태가 벌어지면서 방송 작가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해고 통보도 없었고, 납득할 만한 사유도 듣지 못했다. 해고 되는 과정에서 절차가 무시되면서 법적인 하자도 발견됐다. 1년 전속 계약으로 돼 있는 작가들은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말 한마디에 거리에 나앉게 되는 현실에 처해있다.

이번 해고 사태 배경에는 PD수첩 색깔을 바꾸기 위한 결정판으로 작가들을 '정치적'으로 해고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어찌됐든 작가들은 방송 작가들의 직업군이 이번 문제로 철저히 무시당했다는 데 분노하고 있다.

김옥영 한국방송작가협회 전임 이사장은 짧은 시간 한국 방송이 발전한 것은 "비정규직 작가들을 값싼 대가를 지불해 고급 인력으로 기용해서 그 힘으로 압축 성장을 한 것이다. 한국 방송이 세계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방송으로 콘텐츠에 대해 성과를 이룬 것은 작가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이번 해고 사태는 "작가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희는 잘려질 수 있는 존재라고 얘기한 것"이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는 우리 방송 작가들은 자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정당한 사유를 가져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타 장르 작가들이 거리에 나선 것도 이들의 해고 사태가 앞으로 방송 작가들의 암울한 미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장금> <뿌리깊은 나무>의 김영현 작가는 단적으로 "22년 가까이 작가 일을 해왔고 MBC와 같이 작업을 한 것을 후회하게 만든다"는 말로 이번 사태에 대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사태는 또한 MBC 노조 파업에서 보여준 공정방송 요구 목소리가 재차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MBC 경영진은 작가 해고 사유에 대해 '불편부당성과 중립성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밝혀 논란을 자초했다. PD수첩 작가들이 노조의 파업 지지 성명에 참여했다는 것이 해고 사유가 됐다고 밝히자 당장 개인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며 공정방송이 훼손되고 있는 현실을 옆에서 지켜봤던 PD수첩 작가들의 증언이 잇따라 이어졌다.

정재홍 작가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MBC 간부가 아이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눈 앞에서 아이템 기획안을 찢어버렸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이금림 이사장은 “어떤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를 캐려면 작가 정신이 있어야 하고 사상과 철학이 들어가야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불편부당함을 들어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며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대적인 소명의식이 있다. 특히 시사탐사 프로 작가들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 불편부당함에 대해 끊임없이 파헤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마저도 못하게 한다면 아예 프로그램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 작가들 입에서 김재철 사장 퇴진이라는 구호가 나온 것도 예사롭지 않다. 김 사장이 이번 해고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며 PD수첩을 죽이기 위해 작가들을 희생양 삼고 있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결국 이번 해고 사태는 전체 방송 작가 대 MBC 경영진의 싸움으로 확산되면서 어느 한쪽이 치명타를 입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이번 해고 사태에 대한 MBC 경영진의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김재철 사장 면담을 요구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MBC 경영진은 인사는 결정권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전면 대응 결의를 밝혀 이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물러설 경우 사실상 존립 근거가 희박해진다. 7일 열린 회의에서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이번 사태는 방송 작가들에 대한 도전이다. PD수첩 작가 전원 원직 복귀 이외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며 "계속 단계를 밟아 최종 종착지까지 갈 것"이라는 입장을 정한 것도 이번 싸움이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임을 보여준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MBC의 입장 표명을 거듭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시 방송 주무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 이계철 위원장과 9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들을 잇따라 방문해 면담할 예정이다. MBC가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외부에서 압박을 가한다는 계획이다.

MBC 경영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김현종 시사제작국장이 특보를 통해 직접 해고 사유를 밝힌 것도 방송작가들의 반발 확산을 차단하려고 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논란이 커지면서 조만간 MBC 경영진이 한국방송작가협회로 공식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공식 입장에서도 해고 사태에 대한 상황 설명 이외에는 바뀔 게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금림 이사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방송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누구의 입맛에 맞고, 기분에 맞고, 마음 편안해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국민 대다수가 알고 싶어 하고 원하는 것은 알리는 것이 방송의 의무"라며 "의무를 저버린 방송이 나갔을 때 국민들이 눈을 떠 직시하고 항거해야 그런 사태가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작가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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