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작협회 이금림 이사장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송작가 회원 2500여명의 권익 신장을 위한 자리에 올해 2월 부임해 불과 6개월 만에 작가의 권익을 위협받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작가 30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탄했다. 지난달 MBC가 PD수첩 작가 6명을 전원 해고한 사태를 두고 한 말이다.

이 이사장은 지난 1980년 데뷔해 <푸른안개> <당신 때문에> <은실이> 등의 작품을 쓴 우리나라를 대표한 드라마 작가이다. 드라마 작가로 30년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다. 1980년대 한 선배 작가는 마음에 들지 않은 글을 썼다는 이유로 한 공사 현장에 불러가 구타를 당했지만 적어도 방송국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다. 보통 석 달 전에 공지를 하고 협의를 통해 작가 교체가 이뤄진 관행으로 볼 때도 한참 거리가 멀다. 그런데 2012년 현재 PD수첩 작가들은 MBC 노조의 파업 지지 성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전원 해고를 당했다. 작가의 권익은 물론 자존심까지 땅바닥에 내팽개쳤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생각이다.

3일 여의도에 소재한 사단법인 한국방송작가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작가 교체라고 하는 것은 부득이한 경우 예를 들어 작가가 병이 났다거나 문제가 생겨서 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번 사태처럼 해당 작가들이 프로그램 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예고 없이 궁리를 해놓고 뒷통수를 치는 것은 30년 방송 경력에서는 볼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MBC는 PD수첩 작가들에게 통보도 없이 SBS 소속 작가들을 접촉해 PD수첩팀으로 영입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SBS 소속 작가는 MBC 선배 작가에게 'PD수첩 작가로 와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고 경위를 확인하면서 PD수첩 작가 전원이 이미 해고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논란이 커지자 MBC가 내놓은 해명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작가 교체가 필요했고, PD수첩의 시청률 하락과 작가 소구력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PD수첩 작가들이 불편부당성과 중립성을 무시했다며 MBC 노조 파업 지지 성명에 참여한 사례를 들었다.

이 이사장은 "다른 작가들도 아니고 하필이면 시사탐사 프로그램의 작가들만 교체하는 것이 MBC 차원의 쇄신인지 의문"이라며 "PD수첩 작가들이 아이템을 고르고 원고를 쓴 것을 내버려뒀을 경우 절대 시청률이 뒤지지 않았다"며 "오히려 간부들이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과정을 지나면서 시청률이 떨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PD수첩 작가들이 불편부당성과 중립성을 무시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시사프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발 프로그램"이라며 "어떤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를 캐려면 작가 정신이 있어야 하고 사상과 철학이 들어가야 한다. 아무런 생각 없이 불편부당함을 들어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그 자체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정면 반박했다.

PD수첩 작가들이 MBC 노조를 지지하는 성명에 참여한 것을 두고도 "공정방송을 하도록 해달라고 하는 노조의 입장을 이해한 것"이라며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시대적인 소명의식이 있다. 특히 시사탐사 프로 작가들은 같은 시대를 살면서 불편부당함에 대해 끊임없이 파헤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것마저도 못하게 한다면 아예 프로그램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런 내용을 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잘라말했다.

MBC가 대표 간판 프로그램인 PD수첩에 최고의 베테랑 작가들을 모아놓고 아무런 문제 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능력 부족이라며 다른 작가를 구하는 것도 역설적이다.

이 이사장은 "최고 실력의 작가들을 잘랐는데 MBC는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작가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들을 수입해서 와야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이 이사장은 PD수첩 전원 해고 사태는 작가의 권익을 떨어뜨린 것은 물론 MBC 시사탐사보도프로그램을 손보려는 상징적인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이사장은 "PD수첩을 이런 식으로 바꾸고 색을 지운다면 이미 다른 프로그램인 것이고 시사탐사보도프로를 말살하려고 한 것"이라며 "차라리 오락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MBC는 이번 해고 사태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PD 집필제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강수를 뒀다. PD 집필제는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작가들을 배제하는 제도다.

이 이사장은 PD 집필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MBC의 입장에 대해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음을 MBC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생각이다.

이 이사장은 "작가들은 아이템을 고르는 것부터 A에서 Z, 멘트까지 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일을 PD가 할 수 있는 시간과 여력이 없다"면서 "고도로 훈련된 작가들만이 가지는 노하우가 있다. 메인 작가 한번 안 해본 말단 작가들을 데리고 짜내다가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이사장은 "아무렇게나 엉터리로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뭘 못하겠나"면서 "결국은 입봉도 안한 작가들을 불러모을 텐데 질 좋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지난 1일 긴급회의를 열어 이번 해고 사태에 대해 전면 대응하다고 의결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이사장은 김재철 사장을 면담해 작가들의 해고 조치를 철회하라고 요구할 계획이다.

이 이사장은 김재철 사장과 면담에서 "이번 해고 사태는 일종의 언론 탄압이다. 외부의 세력이 언론을 통제하는 것은 봤어도 방송사에서 동료와 함께 일을 하다가 탄압하는 것이 있을지 있는지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이번 사태에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어느 때보다 작가들의 분노가 높기 때문이다. 이미 구성다큐 작가들이 PD수첩 대체 인력을 나서지 않겠다는 서명운동이 900명을 돌파했다. 또한 구성작가 뿐만 아니라 드라마, 예능, 라디오, 번역 작가들도 나서 PD수첩 작가 해고 철회와 원상복귀를 위한 서명운동에 나서 1000여명이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불과 하루만이다.

이 이사장은 이번 해고 사태를 접한 작가들의 분위기에 대해 "타 장르 작가들이 전부 격분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예의마저도 없는 무례함을 보여 작가들한테 상처를 줬다"며 "MBC 간부들이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인터뷰 도중 시계를 보면서 "아직도 MBC에서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MBC에 3일 오후 2시까지 해고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했고, 이때까지 답변이 없거나 상황 변화가 없을 경우 전면 대응에 준하는 '액션'에 돌입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방송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누구의 입맛에 맞고, 기분에 맞고, 마음 편안해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국민 대다수가 알고 싶어하고 원하는 것은 알리는 것이 방송의 의무"라며 "의무를 저버린 방송이 나갔을 때 국민들이 눈을 떠 직시하고 항거해야 그런 사태가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작가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국민의 지지를 부탁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는 오는 6일 오전 11시 여의도 MBC 사옥 앞에서 ‘PD수첩 작가 해고 규탄 및 원상복귀 촉구 대회’를 열고 이번 PD수첩 해고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후속 대책으로 중대 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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