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보수진영에서 복지 프레임을 끌어안고 나서는 반면 진보진영은 아직도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과 금융 부실을 해결하고 조세와 재정을 아우르는 경제 정의 어젠더를 누가 선점하고 선도하느냐가 정치 판도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이명박 정부 5년의 공과를 돌아보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릴레이 인터뷰를 시작합니다. 부동산 분야 세 번째 순서로 KAIST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아파트를 통해 본 ‘근현대 사회문화사’를 담은 책을 펴낸 박해천 홍익대 연구교수를 만납니다. <편집자 주>

①부동산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고통스러워도 집값이 빠져야 사람 값이 오른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 <“이명박 아무리 미워도 부동산 폭락은 막아야 한다”>

 
“나는 담론의 가상 세계에선 언제나 패배하지만 물질의 현실 세계에선 백전백승이다. (중략) 지면만 허락된다면, 그들은 거시경제학자의 시선으로 아파트 분양가나 매매가의 상승추이에 따라 유동자산의 흐름을 분석하고 사회경제적 함의를 밝혀낼 것이며, 문화사회학자의 관점에서 ‘강부자’로 표상된 특정 계층의 속물적 행태를 분석하고 가속화된 공간의 계급적 분화에 관해 울분을 토해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뿐이다. 고작.”

 
지난해 출간된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화자(話者)’가 된 아파트는 위와 같이 증언한다. 아파트를 ‘투기의 온상’으로 지목하거나, 일부 계층의 탐욕을 비판하는 도구로 대하는 ‘지식인’들에 대한 일침이다. 저자인 박해천 홍익대 연구교수는 자칭 ‘디자인 연구자’다. 흔히 언급되는 부동산 전문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해 아파트에 대해 두꺼운 책을 한 권 펴냈다. 전자제품 디자인의 변천사를 연구하다가, 아파트를 매개로 한 생활양식의 변화를 추적하게 됐고, 그러다가 ‘전문가’가 됐다.
 
그는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나 손낙구 선생 정도를 제외하곤 왜 국내 학자들이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흥미로운” 주제를 가지고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파트를 단순한 주거 형태나 투기의 대상물로 보는 게 아니라, 하나의 (사회·문화사적) ‘모델’로 보는 관점이 핵심이다. 그에 따르면, 아파트는 한국 사회 중산층의 탄생과 재생산을 매개했던 중요한 통로였다. 이러한 관점을 따르면 최근의 아파트 가격 하락은 단순한 ‘침체’가 아니다. ‘중산층 모델’의 종언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있을까. 
 
다음은 20일 홍익대 인근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아파트는 사회적 부의 재분배 시스템이었다"
 
-‘하우스푸어’라는 말이 다시 유행이다. 언론에서도 ‘하우스푸어’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쓰고 있다. 현재 상황의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용어라고 보나.
 
"애초에 ‘하우스푸어’라는 조어를 만들어내신 분이 의도했던 개념과 (사용되는 개념은) 많이 다르다. 결국 아파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다. 일반적으로 아파트에 대해선 크게 두 가지 관점의 이야기를 한다. 하나는 중산층의 주거공간으로서의 아파트이고, 다른 하나는 자산증식을 위한 재테크 상품으로서의 아파트이다. 이 두 가지 관점에서 보면, 지금 통용되고 있는 하우스푸어의 의미는 둘 중 하나다. 대출을 받아 겨우 내집마련을 했다가 현재의 임금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이자에 시달리게 된 사람들이 한 축에 있고, 또 한 축으로는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한 채 더 마련했다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한 분들이 있다. 그 두 가지만 놓고 보면 ‘성실한 중산층’과 ‘투기꾼’이라는 식으로 대립구도가 만들어 지는데, 지금 상황을 설명하기에 이 구도는 좀 미흡하다. 
 
70년대 중반,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후반부터 박정희 정권이 추진했던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정책들이 실제로 성장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아파트는 고도성장으로 축적된 사회적 부가 일련의 선택과 배제 과정을 거쳐 분배되는 일종의 시스템 같은 위상을 차지하게 됐다. 일군의 경제 주체들이 가장 큰 수혜를 받았지만, 이제 막 내 집 마련을 통해 중산층으로 발돋움 하려던 이들 역시 그 수혜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주로 1940년대 생으로,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지방의 명문고를 나오고 4·19나 한일협정 반대시위에 참여했으며 60년대 후반에 기업에 취업해서 70년대 전반에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내집마련을 했다. 이들의 내집마련의 시점은 강남 아파트의 등장과 맞물려 있다. 제2차 베이비붐 세대들의 아버지 세대이기도 하다.
 
강남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은 앞서 말한 사회적 부의 분배 시스템으로서의 아파트가 처음으로 실험된 공간이었고, 이후 이 시스템은 계속 서울 신시가지나 수도권 신도시를 통해 확대 재생산되었다. 적어도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이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잘 굴러갔다. 70년대 이후 현대사를 보면, 정치적 격변과 경제적 호황이 10년 단위로 맞물려 있고, 마치 이와 연동하듯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 역시 10년 단위로 생겨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70년대에는 강남이 있었고, 80년대에는 목동·과천·상계·하계가 있었고, 90년대 초중반에는 (수도권) 신도시들이 있었던 식이다. 바로 이 아파트들이 각 시기에 따라 한국사회에서 40년대생, 50년대생, 60년대생의 대졸자들이 중산층으로 성장하는데 있어서 ‘통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부가 아파트를 통해 일종의 복지정책을 실행에 옮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지금은 그 시스템이 작동을 멈춘 상황이다."

 
-아파트가 중산층 진입의 ‘통로’역할을 했다는 이야긴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달라.
 
"한국에서 중산층이 되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었다. 대학교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을 해서 내집마련을 하기 전까지 허리띠를 졸라매고 목돈마련을 하기 위해 저축을 하면서 산다. 90년대 중반 이전까지 정부에서도 성장 속도에 맞춰 저축을 독려하는 고금리 정책을 많이 썼다. 이를테면 ‘근로자 재산형성 저축’이라는 제도적인 틀을 마련해 줬고, 굉장히 저렴한 가격대의 아파트를 공급해서, 그 목돈의 상당 부분을 아파트 구입에 지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일단, 정부가 제공한 이 과정을 통해 집을 마련하고 나면, 이제 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발맞춰 소비도 점차 늘려가게 된다. 이 지점에 도달하면, ‘중산층’이라는 자기 정체성에도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그런데 97년 IMF외환위기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 98년도에 수도권, 99년에는 서울에 대해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한다. 그 이후의 아파트, 특히 2003년도 이후의 아파트는 이제 막 내집 마련을 하기 위해 아파트 분양 시장에 진입한 소비자들이 임금 소득의 저축만으로는 구입하기 어려운 가격대의 아파트다. 게다가 본격적인 저성장과 저금리의 시대 아니었나? 그럼에도 지난 30년간 작동하던 시스템이 2000년의 첫 십년동안 작동했다. 돌이켜보면 주택을 담보로 한 은행 대출 덕분이었다. 지금 언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가계대출 1000조원과 전세 보증금 900조원’이라는 금액은, 지난 10년간 이 시스템을 계속 작동시키기 위해 사회적으로 투여된 비용이었던 셈이다. 사실상 하우스푸어라는 범주는 이 과도기적 상황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 일간지에서 굉장히 많이 언급되는 50대의 1가구 2주택 하우스푸어를 보자. 사실 이 전 세대(60대)는 그런 식으로 자산을 증식했다. IMF 직후까지는 그런 방식으로 자산증식 하는 게 문제가 안 됐다. 평당 분양가 상한제라는 제도가 있었고, 분양권 추첨에 떨어져도 이른바 ‘프리미엄’이라는 웃돈을 주고 구입하고, 입주한 후 5년 정도 지나면 가격이 두 배 이상 상승했다. 50대 하우스푸어란 그 전철을 되밟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에 대출을 안고 아파트를 한 채 더 구입한 사람들이다.
 
하우스푸어의 또 다른 한 축은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제 2차 베이비부머들 중에서 뒤늦게 아파트로 내집마련을 했던 사람들이다. 2004년도 이후에 ‘지금이 아니면 아파트를 영영 못 사겠구나’ 싶은 심정으로 대출을 받아 내집마련을 한 경우다. 사실 <하우스푸어>라는 책에서 얘기되었던 건 후자의 사례들이었다. (덧붙이자면) 전자의 경우, 사실은 간단한 해결 방법이 있다. 손해를 보더라도 소유 아파트 두 채 중 한 채를 팔면 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아파트를 팔아도 해결이 어렵다. 원래 하우스푸어란 이런 경우를 사회적으로 의제화하기 위한 범주였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들과 뒤섞여 왜곡되고 있다.
 
아무튼, 앞서 말한 아파트의 맥락으로 확대하자면, ‘하우스푸어’가 의미하는 바는 사실상 아파트를 통해 중산층이 되는 것 자체가 이제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중산층'을 향한 '욕망의 거푸집', 아파트  
 
-아파트를 통해 중산층으로 편입되는 ‘모델’이 작동할 수 있었던 다른 요인은 없나. ‘자산증식’의 의미에 더해 실제로 어떻게 그런 모델이 작동했는지도 궁금하다. 
 
"일상 문화 차원으로 넘어가면, 아파트가 갖는 가장 큰 힘 중 하나는 ‘대량복제’다. 당시 대한주택공사나 기업들의 경우 굉장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후반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강남의 아파트 대규모 단지를 짓게 된다. 그리고 이게 굉장히 나름대로 성공적인 모델이었다. 아파트와 거기에 필요한 인프라가 들어가면서 이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현대적 도시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거주와 여가, 소비가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모델이 이후 10년 단위의 대규모 주거단지 건설을 통해 약간의 수정을 거쳐 반복적으로 대량복제가 된다. 중산층으로 진입하기 원하는 사회 계층을 지속적으로 체제 내로 편입시키는 통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파트만 대량복제된 게 아니라 ‘중산층’으로 표상되는 삶의 형식, 욕망까지 대량복제가 됐다는 점이다. 어떤 학자 분들은 지난 대선 당시의 표심을 두고 ‘욕망의 정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욕망은 정확히 말하자면 ‘시세차익의 욕망’이다. 근로소득보다 더 많은 자산소득을 얻어낼 수 있는 수단으로 아파트가 기능한다는 걸,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강남의 아파트가 실제로 현실화해서 보여줬다. 
 
그렇게 거둬들인 자산이 소비로 이어질 때 어떻게 구현 되느냐.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아파트 내부 공간을 꾸미는 것이었다. ‘교양 있는 중산층’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어떤 사물들을 소비하고 구입하고, 또한 그렇게 구입한 사물들을 일련의 문화적 취향으로 전시하는 방식들이 생겨났다. 또 다른 하나는 자녀교육이었다. 강남에 처음으로 입주했던 세대들 중 상당수가 해방 후에 처음으로 미국식의 현대적인 교육을 받고 ‘개천에서 용 난 경우’였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이전 세대에 비해서 자녀 교육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자신이 성취한 사회적 지위를 자녀 세대에게 넘겨주기 위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교육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이런 교육의 비용 지출 상당 부분이 자산소득에서 나온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 시장을 떠올려 보면, 평범한 중산층이 임금만으로 그 비용을 지불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파트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근로소득 전부를 소비와 자녀 교육에 지출하더라도 어차피 아파트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줄 것이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없이 지출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산업화 이후에 경험했던 물질적 풍요의 상당부분이 사실은 이렇게 자산소득, 아파트의 가격 상승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최근 아파트 가격 하락의 의미도 다르게 해석해야 할 것 같다. 
 
"결국 아파트로 인해서 가능했던 여러 가지 소비 및 여가 활동이나 사교육비용 지출 등이 전면 재검토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단순히 아파트 가격이 올라가냐 내려가냐의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를 매개로 가능했던 생활양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파트로 상징되는 중산층의 일상과 삶의 궤적이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한국 사회는 그런 변화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사실상 한 번도 ‘아파트 거주 중산층 모델’과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해 본 적이 없지 않나? 따라서 아마도 변화는 아주 느리게, 고통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자기 힘으로 내집마련 못하는 최초의 세대될 것"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하우스푸어’에 대한 일련의 접근은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보수·경제신문들이 ‘하우스푸어’를 거론하는 방식에 대한 대중들, 특히 젊은 층의 거부감도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사람들이 하우스푸어냐 아니냐 그런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다. 말하자면,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었던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지배적인 방식 자체가 점차 무너져 가고 있는 상황으로 봐야 한다. 하우스푸어라는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접근하면 이 문제에 대한 쓸모 있는 해결안을 얻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저성장과 저금리 시대에 부합하고 계층 간의 이동 가능성을 고려한 새로운 중산층 모델이 어떻게 가능할 지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단적으로 앞으로 갈수록 내집마련은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들은 해방 후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내집마련이 불가능한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이 세대에 속한 사회 구성원들이 앞으로 어떻게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들을 고민해야 한다. 임대료나 월세는 정신없이 뛰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은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고 있다. 
 
1940년대에 태어난 소위 ‘강남 1세대’들이 자산증식 해나가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표준적인 모델이 있다. 그 때는 자연스레 평형대를 늘려갈 수 있었다. 당시 강남에 아파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진 게 아니라, 10년에 걸쳐서 지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처음 강남에 진입해서 평당 가격이 30만원대인 아파트를 샀다고 치자. 1년 정도 지나면 가격이 두 배로 오른다. 그런데 옆 동네에서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평형대는 넓은데, 평당 분양가는 여전히 30만원대다. 그러면 이전 아파트를 팔고 넓은 아파트로 이사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도 인용을 했지만, 강남 중산층이 등장하는 박완서 선생의 7,80년대 소설을 보면 그 과정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또 다른 예로 분당, 일산 평촌 등 1기 신도시의 경우, (개발) 당시 평당 분양가가 180~200만원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1인당 소득이 6000~7000달러 하던 시절 이야기다. 지금 가격을 생각하면 (당시 입주한 사람들은) 엄청난 사회적인 혜택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앞에서 아파트를 일컬어 ‘선택과 배제의 분배 시스템’이라고 얘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 수준인데, 최근의 2기 신도시 같은 경우 평당 분양가가 1400만원대에 육박하고, 서울 시내 같은 경우는 2000만원대를 가볍게 넘어간다. 거칠게 비교해 소득 수준은 세 배 늘었는데, 아파트 분양가는 열 배 가까이 오른 거다. 아파트 첫 구입 예정자들이라고 할만한 30대 중반 이하 세대가 그들의 낮은 임금 수준으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가격대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아파트를 통해서 자산을 증식하고, 그 자산을 자녀 세대에게 투자하거나 증여하는 체계도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대개 1940년대-1970년대, 1950년대-1980년대, 1960년대-1990년대 출생 세대가 부모-자녀 관계로 연동되어 있다. 이 관계들 중 가장 취약한 고리는 1950년대생-1980년대생의 부모-자녀 관계다. 최근 몇 년 사이 50년대생이 빠른 속도로 은퇴를 하면서 자영업에 진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위기에 처하게 될 때, 이들의 자녀세대(1980년대 출생)는 경제적으로 부모를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직장 구하기도 어렵고, 직장이 있다고 해도 임금 수준도 낮고, 여전히 내 집도 없기 때문이다. ‘집값이 너무 비싸다’고, ‘아파트 가격이 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젊은 세대들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집값이 떨어졌을 때,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내집마련을 할 수 있을까? 가격이 떨어진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을 이들이 바로 그들의 부모들일 텐데?"
 
-<콘크리트 유토피아>에는 아파트가 우리 사회의 ‘보수화’를 추동했다고 쓰신 대목도 있더라. 
 
"70년대 중반 잠실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려고 했을 때 당시 주공이 내놓았던 건 (앞서 큰 성공을 거뒀던) ‘한강맨션’과 유사한 중대형 평형대의 아파트였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거기에 제동을 걸었다. ‘이런 식으로 고급 대형아파트를 지을게 아니라, 서울시민들의 소득 수준을 고려해서 실제 이 사람들이 일정기간 저축을 했을 때 구입할 수 있는 아파트를 만들라’고 지시를 했다. 그래서 설계가 대대적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7평에서 15평까지 아파트가 잠실에 건설되었고, 18평형과 24평형대의 아파트가 반포에 만들어졌다. 주공이 자신들의 원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만든 게 30평형대 잠실 5단지였다. 나머지 상위 평형대는 국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민간 건설사들에게 땅을 분양해서 지어졌다. 강남아파트의 중산층 모델이 그렇게 만들어 졌다. ‘계단식’으로 상승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도에 유신을 하기 직전인 1971년, 김대중 후보와의 대통령 선거에서 서울에서 크게 졌다. 이런 상황에 처해지면, 집권 세력은 당연히 열세를 우세로 바꿀 정치적 전략을 구상했을 것이다. 강남 개발은 그 문제에 대한 일종의 해결안처럼 보인다. 당시 경제성장과 더불어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특정 세대의 집단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내 집을 제공해줌으로써, 그들을 정치적인 우호 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있으리라고 판단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89년도에 노태우 정권이 ‘주택 200만호 건설’을 내걸었을 때도 이러한 정치적 판단은 실제로 굉장히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당시 87년도 (6월 항쟁) 이후에 한국사회 전반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급진화 되고 있었다. 정부 입장에선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특정 세대-특히 베이비붐 세대나 386세대-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면서 체제 내로 흡수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다. 그리고 1기 신도시가 바로 그 통로였다."

 
-문제가 간단하지 않은데, 어떻게 출구를 찾아야 하나.
 
"많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결국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 건 임대주택 정책이다. 지금 집주인들은 대개 5,60대(194,50년대 출생) 이상인 경우가 많다. 노후를 위해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투자를 한 경우다. 거기 들어가서 살고 있는 건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사람들이다. 안 그래도 임금 소득이 낮은데, 거기에 상당부분을 월세로 지출하고 있다. 저축은 엄두도 못 내고, 저금리인 상황이라서 저축을 해봐야 목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부모의 도움 없이 이런 식의 삶이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까? 아마도 전세 제도는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쌌던 이유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게 사라지면 전세가가 매매가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은행권에 담보로 잡혀 있는 않은 전세 주택들은 결국 거의 다 월세로 전환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내집마련’이 이제 불가능하다면, 내 집 없이도 살 수 있는 주거의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4인 가족 기준의) 표준가구 뿐만 아니라, 표준에서 벗어난 가구들을 위한 임대 주택 정책이 시급하다."

'나는 열심히 일해서 중산층으로 성공했다?'  

 
-정치권에서는 부동산 문제 자체에 대해 얘기를 잘 안 하는 것 같다.  
 
"지금 닥친 위기가 삶의 틀을 총체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또한 전환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선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 것 같다. (정치인을 포함해) 이전 세대의 중산층들은 사실 자신들이 어떤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서 아파트로 내 집 마련을 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중산층 신화가 이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고 할까? “나는 열심히 일해서 목돈 저축하고 집도 사고 자가용도 구입하고 자녀도 유학 보냈다”는 식의 성공담 말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신화가 가능했던 것은 앞서 말했듯이, 아파트를 통한 자산 소득의 증대였다."
 
-IMF 이후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 건 어떤 맥락에서 볼 수 있을까.
 
"한국사회가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 극단적으로 변모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당시 정부가 나서서 ‘금모으기 운동’을 했다. 그렇게 5개월간 약 340만 명이 참여해 모은 금이 약 220톤, 금액으로 환산하면 21억불 정도 된다. 그로부터 1년 뒤 타워팰리스 분양이 있었다. 고층 주상복합 두 동, 약 1,300세대의 분양대금으로 1조를 모았다. 공개 분양을 하기도 전에 VIP를 대상으로 한 비공개 분양만으로 그 금액을 모은 것이다. 금모으기 운동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헐값에 금을 판 돈은 그분들 호주머니에서 빠져나와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타워팰리스 분양대금 1조원은 지금 3조에 육박하는 자산으로 변모했다. 
 
주상복합 열풍도 있지만, 용인을 기점으로 삼았다가 강남 재건축 아파트로 입성한 대형 고급 평형대 아파트들도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된 이후, 당시 시장에 풀린 194,50년대 출생 중상류층의 유동성 자금이 만들어낸 신기루 같은 아파트들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언급했듯이, ‘포스트-강남’의 아파트였다. 게다가 2000년대 초중반, 금융이나 건설, 고급 내부 소비재 부문의 일반 광고들은 이런 식의 거품을 부채질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른바 명품 마케팅과 그에 따른 과잉소비 열풍이다. 
 
결국 이 국면에서 개인들은 앞 세대의 자산 증식 과정을 목도하면서 재테크를 학습했고, 동시에 시세 차익이 가져다 줄 욕망에 세뇌 당했던 것이다. ‘당신의 이름이 되는’ 아파트를 얻는 것, ‘대한민국 1%’의 ‘프리미엄’을 누리는 것, 오늘도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고 노래 부르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등. 결국 이런 욕망들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시세차익’의 욕망이 특정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화 되었고, 뉴타운 개발과 재건축을 통해 ‘정치’의 한 형식으로 진화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어떤 대안들이 있을까.
 
"특정 대안을 내놓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안을 만들어 가는 사회적 과정 자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2000년 초중반 기업들이 쏟아 부었던 광고들에 담긴 라이프스타일에 대적할만한 생활 문화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가? 그것과는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 그런 삶을 살았을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확신시킬 수 있을까? 개인의 자각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사회적인 의제화도 되지 않은 상태다. 막연하게 ‘복지’라는 명칭으로만 이야기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저성장 사회에 부합하는, 그러나 아파트와는 다른, 새로운 주거 모델과 생활양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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