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았을 법한 그들의 이야기.

1998년 초국적 제약회사 사노피-아벤티스의 프랑스 로맹빌 공장 노동자들이 합병에 따른 해고에 맞서 싸운 40년 간의 기나긴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 <우리 공장은 소설이다>(실뱅 로시뇰)은 그야말로 '소설 같은' 실제 이야기였다.

세계 기타 시장 점유율 30%, 단 한 해 빼고는 모두 흑자를 내던 잘 나갔던 기업 콜트악기와 자회사인 콜텍의 박영호 회장이 경영상의 이유로 2008년 돌연 공장 문을 닫았다. 기타를 만지던 노동자들은 거리에 내몰렸다. 공장은 이 나라보다 사람값이 싼 인도네시아로 갔다. 부산항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수출될 기타를 만들기 위해 각종 자재와 완재품이 오르내렸던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작업대와 책상이 치워졌다. 결국엔 모든 것이 사라진 공장은 이곳에서 가스충천소를 운영하려는 새로운 주인에게 넘겨졌다.

하지만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공장을 떠나지 못했다. 복직을 요구했다. 콜트악기 해고는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박 회장은 침묵하고 있다. 평생을 기타 장인으로 살아온 이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우리 공장이 소설이었다"고.

을씨년스럽게 텅 빈 공장 그리고 그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노동자들, 그 사이에 놓여진 긴장감 속으로 예술가들이 끼어든 것은 지난 4월이었다. 콜트-콜텍 농성장이 있는 부평 콜트 공장은 경비원이 돌아간 밤마다 예술가들로 북적였다. 몰래 밤샘 작업하기를 반복, 지난 15일 기습적으로 전시회 '콜트콜텍전'을 열었다. 맨 처음 이곳에 짐을 푼 전진경 작가는 "처음엔 선량한 새 주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에 '스ㅤㅋㅘㅅ(점거)'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해보자"란 생각이 들었다고.

누구에게 '함께 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들어 20명이 됐다. 소위 민중예술가, 현장예술가들만 모이지 않았다. 특별하게 기획된 전시회가 아니라 예술가 각각이 느끼는대로, 느끼는 만큼 표현하는 개인전으로 가기로 했다. 생각할 꺼리도 많지만 그만큼 재기 넘치는 전시회가 열리게 된 배경이다.

지금이야 평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초기엔 건물주가 직접 와서 수시로 나가라고 윽박지르고, 용역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불안하던 때였다. 전씨는 "그냥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나를 때릴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협박을 당한 다음날 전씨는 공장 안 자신의 작업실 벽면에 <여기 짐 좀 풀게요>라는 그림을 그렸다.

속에서 분이 치민 끝에 그린 그림이지만 꽤나 우아했다. 평온한 얼굴을 한 낙타가 기타를 메고 있었다. 낙타 등에 난 혹은 전씨가 한국화를 전공해서인지 우리 산천의 부드러운 능선을 닮아 있었다. 전씨는 벽면에 자신이 스ㅤㅋㅘㅅ을 하는 이유를 적어놨다. 방해꾼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힘 빠지는 일이다.

"나는 그림 그리는 예술가입니다. 나는요, '공생'을 하기 위해 이곳을 왔어요. 누굴 못살게 굴고 괴롭히려는 건 아닙니다…몇 년째 텅 비어있는 공장은 먼지와 곰팡이를 닦아줄 사람이 필요하고, 자본가는 그들의 미친 탐욕에 제동을 걸어줄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지난 18일, 5년 가까이 방치돼 음산해보이기까지 한 공장 안은 설치물과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공장의 폐가구, 파이프, 단열재, 부서진 기타, 심지어 먼지까지 작품 재료가 됐다.

공장이 돌아가던 시기엔 수십 명의 사람들의 발에 채였을 작업장 바닥에 적힌 '안녕하세요'(사진①)란 커다란 글씨는 주인을 잃은 채 황량한 공간에 홀로 남겨져 있었다. 이를 본 한 작가가 공장에 쌓인 먼지를 모아 글씨 안에 채워 넣었다. 

4명의 작가들로 이뤄진 '빨간번데기'가 만든 설치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좀 더 직접적으로 묘사했다(사진②). 컴컴한 작업장 안에 있는 단 하나의 창문 밑에 사다리가 놓여져 있지만 허공에 떠있어 올라갈 수가 없다. 조그마한 트럼플린 위에서 창을 향해 뛰어보지만 이내 바닥으로 낙하한다.

빨간 번데기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이 공장은 창문이 거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낮인데도 공장이 칠흑같이 어두컴컴했다. 현재 단전 중이라 전시를 위한 조명을 켜놓지 않으면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 없는 곳도 제법 있었다. 그곳에 있는 작가들은 "밖이 보이면 일 능률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창문을 막았다"고 했다. 낮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될 수 있는 한 노동력을 쥐어짠다는 발상이란다. 과연 공장 벽면을 살펴보니 있던 창문을 철판으로 판넬로 막아 놓았음을 알 수 있었다.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는 '상덕'씨는 여기 오자마자 '이 참을 수 없는' 철판을 뜯는 일부터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장에 널부러져 있는 폐가구와 컴퓨터 등을 가져와 거대한 철(鐵)코끼리를 만들었다(사진③). 굵은 파이프로 만들어진 코는 활짝 열린 창문과 맞닿아 있었다. 숨을 쉬려는 걸까. 김씨는 한 번도 정규예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은 1주일 간격으로 강정마을과 콜트 공장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그는 이 곳에 들른 평론가들로부터 '노동과 성실함으로 만든 정직한 작품'이라는좋은 평가를 받았다.

노동자들의 옷과 신발도 예술작품이 됐다. 조그마한 어두운 작업실 안엔 걸려 있는 콜트 작업복(사진④), 쌍용자동차 23명의 사망자들을 기리는 23켤레의 신발들.


물론 공장 곳곳은 여전히 5년 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높은 천장 밑으로 늘어진 형광능엔 녹이 가득 슬어 있었고, 구석의 창고에 채 치우지 못한 쓰레기들은 이곳이 주인 없는 공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8명 남짓의 노동자들과 20명의 작가들,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마지막까지 온기를 후후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이 작가들의 전시회가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모호하다. 박 회장 대신 이 공장건물을 산 주인은 농성자들과 예술가들을 불법점거 등의 이유로 고소했다. 가을이 오기 전 결과가 나올 예정인데 법적으로만 따지면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낮다. 그렇게 되면 농성장은 자리를 옮겨야 하고, 작품은 사라지게 된다.
 

그럼에도 이 공간을 떠나지 않는 이들의 마음은 한가지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폐업과 해고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본의 무책임을 부추기는 '정리해고법'에 제동을 걸고 반드시 복직할 것'이라는 방종운 콜트지회장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옆에 서있는 것이다. 전씨는 자신의 공책에 이렇게 적었다. "투쟁에서 필요한 것은 세 가지. 명분과 의지, 그리고 이웃들이다. 또한 이웃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이다. 그들의 이웃이 된 나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자유롭고 좋은 나의 에너지를 발산해야 한다"    

80년대부터 민중예술을 시작했다는 성효숙씨도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자신의 공간을 지키고 있다. 그의 부스 바닥에 그려진 푸른 물결은 콜트에서 만든 기타를 품고 있었다. 물결이 이어진 벽면에는 기타를 맨 사람들이 돌고래와 평화롭게 어울려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펼쳐졌다.

원치 않게 자신의 생존 공간을 빼앗겨 버린 제주 강정마을 앞바다의 돌고래와 콜트-콜텍 노동자들. 이들은 언제쯤 즐겁게 만나 노래부를 수 있을까.  


글=조수경 기자, 사진=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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