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부정 경선에서 촉발된 종북 논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의 막말 사건까지 겹치면서 신문 지면이 온통 종북 이슈로 뒤덮였다. 22일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저널리즘학연구소 토론회에서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주도하는 종북 논쟁이 내곡동 사저 논란이나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BBK 가짜 편지 의혹, 민간인 사찰 파문 등 주요 이슈에 대한 관심을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문소영 서울신문 기자가 5월21일부터 6월8일까지 언론재단 미디어 가온 서비스를 이용해(조선일보는 조선일보 홈페이지 이용),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지면을 분석한 결과, 종북 관련 기사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각 84건과 82건을 쏟아낸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47건과 59건으로 큰 편차를 보였다. 주사파라는 단어가 들어간 기사는 조선일보가 54건, 동아일보가 50건, 경향신문이 16건, 한겨레가 12건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부분은 이처럼 보수언론이 색깔론 이슈를 주도하면 진보성향 언론도 이를 방어하느라 상당한 지면을 소비한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정작 언론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가 밀려나는 현상도 발견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종북 논쟁을 주제로 사설을 각각 32건과 28건씩 썼는데 경향신문과 한겨레도 19건과 15건씩 썼다. 종북 논쟁이 1면에 올라온 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각 10건씩, 경향신문은 5건, 한겨레는 9건이었다.

통합진보당 관련 기사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각각 127건과 145건,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각각 160건과 142건으로 비슷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는 시각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진보성향 언론이 부정선거에 집중했던 반면 보수 언론은 집요하게 색깔론을 부각시켰다. 같은 시기에 출당론이 제기됐던 새누리당 김형태 의원 관련 기사가 조선일보가 2건, 동아일보가 6건에 그친 반면, 경향신문은 9건, 한겨레는 11건이었다.

문 기자는 “종이신문 독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조중동의 파워도 예전과 다르다고는 하지만 오피니언 리더들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문 기자는 “20대는 조중동을 보지 않지만 보수언론이 종북 논쟁을 치고 나가면 사회적으로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게 된다”면서 “정권 말 굵직굵직한 이슈가 터져나오고 있는데 아무도 뉴스를 파내지 않으니까 좋아하더라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덧붙였다.

김춘식 한국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과거에는 정치권력이 언론을 통제했지만 지금은 언론이 정부를 견제·통제하고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언론이 정부를 견인하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치에 투영하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비판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오히려 지금 한국사회는 정치권력이 언론의 권력을 수용해 맞물려 돌아가는 게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내곡동 관련 기사는 이 기간 동안 조선일보가 2건, 동아일보가 1건, 경향신문도 1건, 한겨레는 2건에 그쳤다.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는 4건, 4건, 9건, 11건이었다. 민간인 불법사찰은 8건, 9건, 21건, 29건으로 큰 차이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종북 논쟁이 묻혀 제대로 이슈 파이팅을 하지 못했다. BBK 의혹 역시 5건과 3건, 3건, 8건에 그쳤다. 문 기자는 “조중동의 색깔론을 방어하느라 권력비판 기사를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기자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조중동이 정부를 비판했던 걸 돌아보라”면서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20배, 100배 더 문제가 될 일을 해도 그 때 조중동이 했던 것처럼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 기자는 “이게 언론의 정도를 지키는 것인지 의문”이라면서 “언론은 공정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조중동의 이슈 파이팅에 끌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문 기자는 “공론장의 붕괴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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