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최승호 PD가 해고됐다. 그런데 많고 많은 조합원 중에 왜 최승호 PD였을까? 사측이 들이댄 사유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배경이 있다는 얘기다.

최승호 PD가 전직 위원장이고 함께 해고된 박성제 기자 역시 전직 위원장이라는 점에서 이번 파업을 계기로 MBC 노조의 뿌리를 뽑기 위한 공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MBC 간판 PD로 평가될 정도로 시청자로부터도 높은 인기를 받고 있는 최승호 PD에게 징계의 칼날을 들이대면서 충분히 역풍도 예상했을터다. 굳이 MBC 탄압의 상징으로 애써 만들어 줄 필요가 없는데 MBC는 모험을 감수한 셈이다.

MBC가 충분히 거센 반대 여론을 예상하고도 최 PD에 대한 해고를 강행한 이유는 이참에 PD 저널리즘을 길들이겠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PD들이 뽑은 PD 1위는?

지난해 12월 초 온라인에서 한국PD연합회에 등록된 224명 PD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교양 다큐 부문에서 최승호 PD는 PD가 인정한 최고의 PD로 뽑혔다. 최 PD가 맡은 프로그램이 큰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분석된다. 2위를 차지한 이는 역시 팀이었던 한학수PD가 올랐다. 의 두 명의 PD가 나란히 PD가 인정하는 최고의 PD로 뽑힌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은 PD 저널리즘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다.

은 지난 1990년 탄생했는데, 1987년 6월 항쟁 이후 봇물처럼 터졌던 언론 자유의 요구와 맞물려 우리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의 역사는 PD저널리즘의 역사와 괘를 같이 한다.

PD 저널리즘은 팩트를 기초로 해서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기자저널리즘과 달리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해석해서 진실에 접근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 현상에 대한 원인을 구조적으로 접근해서 보도의 심층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PD저널리즘이다.

PD저널리즘은 하나의 사안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깊은 내용의 취재 결과물을 내놓다. 출입처에 묶여있는 기자와 달리 PD는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출입처에서도 자유롭다. 

심층보도와 사회 모순을 고발하는 특성에 더해 영상 언어를 재구성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의 관심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은 이같은 PD 저널리즘을 구현한 우리나라 대표급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PD 저널리즘을 개척한 PD로 평가받는 대표적인 인물이 최승호 PD다.

1986년 MBC에 입사한 최 PD는 <경찰청사람들>, , <분단 반세기의 통치자들>, 등을 제작했다.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한번 쯤 경험하고 떠난 경우와는 달리 수십 년에 걸쳐 시사 프로를 만들어왔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난 2009년 으로 복귀한 최 PD는 <검사와 스폰서>편을 제작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검찰을 출입처로 두고 있는 기자들의 경우 스폰서 관행에 익숙했겠지만 최 PD의 눈에 비친 관행은 상식적인 수준이 아니었다고 판단했고 취재 결과 기업인들로부터 검사들이 지속적으로 금품제공 뿐 아니라 성접대까지 받아왔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4대강 문제 역시 긴 호흡을 통한 취재로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을 폭로하는데 앞장서 왔다. 과 최 PD가 정권의 눈엣가시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PD수첩 수난사

실제 이명박 정부 들어 MBC는 PD수첩의 탄압의 역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PD수첩은 무력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지난달 9일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강지웅 MBC 노조 사무처장이 발제한 'MBC 사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년간 PD 수첩의 수난사는 첫 번째 보복인사, 두 번째 사전검열, 세 번째 불방조치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월 윤길용 국장이 시사교양국의 국장으로 부임해 팀의 인사를 단행해 최승호 PD를 포함한 6명이 을 떠나야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이우환, 한학수 PD가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 없는 비제작 부서로 강제전보 당했고 한상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와 MB 무릎기도 파문을 취재하려고 했던 서정문 PD와 전성관 PD도 타 부서로 전보됐다. 지난해 9월에는 PD수첩 광우병 방송 제작진 김보슬 PD, 조능희 PD, 이춘근PD, 송일준 국장, 정호식 국장 등을 감봉 3개월에서 정직 3개월까지 중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 2월 한미FTA의 문제를 취재했던 김영호 PD는 경영진과 갈등을 겪고 결국 방송이 불방됐다. 지난 2010년 최승호 PD가 제작했던 <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도 불방돼 우여곡절 끝에 일주일 후에 방송되기도 했다.

PD수첩 불방 아이템 목록만 정리하면 남북경혐 중단 1년 점검, 후쿠시마 원전과 국내 원전, 대통령 국가조찬기도회 무릎기도 파문, 한진중공업 사태, 한상대 검찰총장 의혹 점검, 미군 고엽제 파문, 복수노조 시대 삼성 노조 간부 해고 파문, 4대강 공사현장 잇따른 사망 사고 등이다. PD수첩 탄압사는 역설적으로 MBC 불공정 보도를 보여주는 계기가 된 셈이다.

젊은 PD들이 조작방송 하고 있다?

PD수첩이 수난사는 이미 정치권에서 PD 저널리즘을 폄하하는 것에서부터 예고됐다.

지난 2009년 7월 옛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PD저널리즘의 문제,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토론회 현장은 PD 저널리즘을 여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토론회를 개최한 진수희 의원은 "우리 사회에 PD저널리즘이라는 한 영역으로 구축되어 있는 만큼 오늘의 PD저널리즘이 과연 언론으로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공정성, 객관성을 충분히 담보하고 있는가?"라며 을 예로 들었다.

특히 발제자로 나온 최창섭 서강대 교수는 "MBC의 일부 젊은 PD는 그들의 숙주와 같은 노동조합을 믿고 조작 편파 방송을 하고 있다"며 "MBC가 공영방송이 아닌 노영(勞營) 방송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서울대 윤석민 교수는 "기자저널리즘이 사실의 전달이라면 PD저널리즘은 사실의 창작에 가깝다"면서 "(PD수첩의)광우병 보도는 정부를 악으로 규정하고 정치적 타격을 가하려는 의도적 기획이었다"고 말했다.

옛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도 "PD수첩의 제작 구조에서는 작가가 정권에 대한 적개심을 풀기 위해 개인의 이념 성향을 프로그램에 고스란히 반영해도 아무런 여과 없이 방송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승호 PD의 해고 조치 이면에는 이처럼 정권 비판적인 PD저널리즘을 이번 기회를 통해 아예 뿌리째 뽑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파업 국면, PD들 솎아낼 절호의 기회?

MBC 파업 국면에서도 해고된 최 PD를 포함해 시사교양 PD들은 징계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69명 대기발령자 중 17명이 시사교양 PD이다. 시사교양국 조합원 56명 중 30%가 대기발령을 받은 것이다.

MBC는 동시에 약 50여명의 경력사원 채용 인원 중 10여명을 시사교양 PD로 뽑을 계획이다. 기존 PD들을 솎아내고 파업 국면에서 사상 검증과 가까운 과정을 거쳐 입맛에 맞는 PD들로 대체할 계획이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파업이 끝나더라도 향후 PD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들을 솎아내고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PD들로 대체되면 정권 비판 목소리가 현저히 떨어질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최승호 PD의 해고 조치를 단순히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대준 한국PD연합회 회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프로그램의 토대는 PD와 기자들인 것인데 기본적으로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 정신이 없으면 공정한 눈을 가질 수 없다. PD와 기자들은 이같은 정신을 상징하는 사람들"이라며 "이번 최 PD에 대한 해고 조치는 MBC 구성원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을 다시금 못 보게 하고 공영방송을 뿌리째 흔들어놓아서 시청자의 볼 권리와 공영방송에 대한 기대심리마저 뽑아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MBC의 이번 조치는 기본적인 저널리즘 정신을 훼손시킨 중대한 도전"이라며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본다면 기본 정신과 상식에 대한 도전이므로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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