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라는 용어가 언제부터인가 TV 등에서 일상화되었다. 국민 배우, 국민 가수, 국민MC, 국민 어머니, 국민아버지, 국민여동생, 국민남동생 등의 유행어가 넘치다 못해 범람의 지경에 이르렀다. 인기 넘치는 연예인들에게 수식어로 붙이는 것이라며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언어가 의식을 지배하는 힘이 있다는 점에서 대중매체의 용어 사용은 그냥 보아 넘기 어렵다.

‘국민’은 일본제국주의, 한국의 일제 미청산과 직결된 단어라서 김영삼 정부 시절 공식적으로 퇴출당한 용어다. 김영삼 정부가 1995년 12월 교육법을 개정해 1996년 3월 1일부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고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국민이라는 단어의 상징적 의미가 다양하기 때문에 21세기 들어서도 일제 시대의 뼈아픈 기억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뼈 속까지 친미와 친일’이라는 최고 권력자가 등장한 이후 나타난 이런 저런 변화와 ‘국민’을 따로 떼어 보는 것도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


이 대통령이 가끔 독도와 정신대 할머니 문제를 거론한다. 하지만 그가 취한 한일관계의 내용은 그의 말과 엇박자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 대통령은, 21세기이후 한반도 침략 근거를 독도에 마련해놓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일본과의 군사 교류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식민지 수탈기업으로 조선인 강제 징용 배상을 철저히 외면하는 미쓰비시 중공업에 인공위성 발사를 의뢰해 일본이 국제적으로 상업위성발사 시대를 여는 결정적 혜택을 부여했다. 이 대통령의 일본과 관련한 ‘말 따로 행동 따로’ 속에서 ‘국민’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되살아난 것은 혹시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국민이라는 단어의 유행은 현 정부 들어 태극기의 강조 현상과 무관치 않은 점도 있다. 청와대의 대소 행사나 외국 원수와의 정상회담 석상에는 다수의 태극기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많은 태극기를 빽빽이 뒤에 늘어세워 놓는 방식이 현 정부 들어 일반화 되었다. 국기를 소중히 하고 자랑스럽게 한다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은 없지만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것 같은 감을 주고 있다.

태극기와 국민의 강조 속에서 임시 정부에 뿌리를 둔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언급되면서 독재정권도 ‘우리의 소중한 정부’라는 논리가 큰 소리로 제기되었다. 한반도에서 정치적 정통성은 남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북한의 불법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독재자도 미화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그런 과정에서 남북 관계는 냉각되고 때로는 전쟁 일보 직전의 상황으로 악화되었다.

유행어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홀연히 나타났다 어느 틈에 사라지기도 한다. 유행어의 등장은 자연발생적인 경우가 흔하지만 인위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역사 교과서에 그런 사례가 많이 나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근현대 들어서도 국내외 정치가들은 라디오, 영화, TV 등 매스 미디어를 통해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를 일반인들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그런 짓을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 집단 세뇌 작업의 효과를 노린 짓이다.

현 정부는 방송사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내거나 대자본과 결탁한 조중동 방송사를 날치기 법안 통과 등을 통해 허가하면서 방송의 공공성, 공익성이 크게 파괴되었다. 현 정부가 방송 영역을 노골적으로 장악, 침범하면서 환경 비판적인 시사프로는 크게 줄어들고 대신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프로가 양산되었다. 거의 모든 영상매체들이 쏟아내는 유사한 프로에서 현 집권층이 미디어를 통해 전파하고자 하는 통치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

방송사들이 앞 다투어 벌이는 오디션 프로가 지닌 이데올로기를 살피면 신자유주의식 경쟁 논리와 함께 이 사회에 심각한 청년 실업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오디션은 승자 독식이라는 자본주의 경쟁 논리가 가장 짙게 풍기는 행사의 하나다. 오디션에서 패자는 당연히 다수가 나오기 마련이고 패배의 책임은 온통 그 당사자에게 있다.

청년실업, 비정규직 사태, 저소득층 급증의 시대 상황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을 잠재울 최상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오디션의 그것이다. 극소수의 행복한 승자와 다수의 빈털터리 패자의 공존을 당연시 여기는 오디션 프로가 많은 여러 분야에 걸쳐서 진행되면서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분노가 희석되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감을 준다.

오디션 프로가 일반화되면서 TV 방송사들이 타사 출연진을 기피하던 자사 이기주의라는 높은 벽도 어느 날부터인지 눈 녹듯 사라졌다. 타 방송사 출신이면 찬밥을 면치 못하거나 아예 출연 기회가 박탈되던 오래된 관행이 일시에 자취를 감추면서 스타 초년생들이 데뷔 방송사를 불문하고 이 방송 저 방송에 출연하는 일이 일반화되었다. 수십년간 뿌리 깊었던 부적절한 관행이 어느 날 퇴출된 것은 다행스럽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닥친 것이라서 혹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가수를 뽑는 오디션의 경우 한류 예비군을 뽑는다는 취지가 강조되면서 영어 노래와 외국 춤 동작이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현상을 통해 미국 프랜들리라는 효과가 양산되면서 이 정부 초기 우스개꺼리가 되었던 전 국민의 잉글리쉬 학습 필요성이 더 할 나위 없이 자연스럽게 실천되는 부수효과를 낳고 있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십대 청소년들이 반라의 의상으로 온갖 동작을 춤추는 장면이 시도 때도 없이 브라운관을 통해 방영되면서 과거 독재 정권이 흔히 써먹던 3S 정책을 연상케 하는 측면도 있다.

독일 제국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괴펠스라는 언론 조작 선수를 앞세워 독일 미디어를 독재정치의 수단으로 어떻게 써먹었는가 하는 것은 역사에 잘 나와 있다. 그런데 현 정부가 낙하산 사장 투하, 조중동 방송사 무더기 허가 등을 통해 방송매체에 엄청난 집착을 하는 것을 보면 괴펠스의 망령이 이 나라 일부 계층위에 군림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국민이라는 용어의 범람, 태극기와 대한민국 정통성의 강조, 오디션 프로의 일상화 등은 모두 현 정부 들어 등장했다. 이런 것들이 자연 발생적으로 브라운관을 점령했을 것으로 추정하기에는 개개 현상들이 지닌 숨어 있는 의미들이 간단치 않아 찝찔한 느낌을 억제하기 힘들다. 이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 언론 조작의 피해가 아직도 이 사회 많은 분야에서 독기를 품고 있고 현 정권 등장이후 독재 정권의 ‘선수’들이 현장으로 복귀했다는 사실 때문인지 모른다.

이명박 정권이 환경 감시와 비판을 주로 하던 많은 TV 프로를 폐기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든 것도 보도지침 못지않은 심각한 언론 조작이다. 사회의 소금이라는 중요한 언론 기능이 박탈또는 억제되면서 방송사 등 다수 언론사가 동시에 장기 파업을 벌인 언론사 초유의 대사건이 발생했다. 언론 영역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 확대는 결국 권력의 부패, 전체 사회의 손실로 나타난다는 것이 무겁게 입증되고 있다. 청와대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권력형 부정부패 사태와 현 정권의 언론 자유 침해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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