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10시 부산역 광장은 ‘봄비’에 젖어 있었다. 먹구름을 가득 머금은 하늘에서는 연신 빗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출근 시간은 지났지만, 우산을 쓴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19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 3일째이지만 선거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지는 않은 모습이다. 거리 곳곳의 후보별 ‘플래카드’와 후보를 안내하는 ‘벽보’ 등이 선거가 임박했음을 안내할 뿐이다.

4년 전 18대 총선에서 부산의 평균 투표율은 42.9%에 머물렀다. 최근 들어 부산의 모습은 선거라고 해서 들뜨거나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올해도 그런 분위기일까.

부산의 최대 격전지이자 전국 최대 관심 지역구로 여겨지는 부산시 사상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철을 이용해 부산역에서 서면을 거쳐 사상역에 내리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사무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상이 시작입니다.” 의미심장한 현수막이 건물 외벽에 내걸렸다. 문재인 후보 사무실은 장사 잘 되는 ‘카페’와 같은 모습이었다. 노란색 테이블이 곳곳에 놓였고,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나누는 모습이다.
 

선거운동원들과 응원차 방문한 시민들의 표정도 밝은 편이다. 사무실 한편에는 ‘나는 꼼수다’ 멤버인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의 ‘문재인 응원 사인’이 코팅이 돼서 붙어 있었다. 사무실 입구 한 켠에는 SBS ‘힐링캠프’에서 증정한 ‘문재인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이기 TV에서 나온기다.” 머리 희끗희끗한 70대 남성은 사무실을 나서려다 동료에게 자전거의 사연을 소개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드디어 정치를 시작했다. 정치참여 요청을 한사코 거부했던 그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했고, “사상이 시작입니다”라는 의미심장한 구호와 함께 총선 최대 승부처의 주인공으로 나섰다.

새누리당이 문재인 대항마로 내보낸 인물은 27세의 젊은 여성 손수조 후보였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에게 ‘정치 신인’이자 주례여고 학생회장 이외에는 변변한 경력도 없는 후보를 내세운 까닭, 사상구 선거를 이해하려면 그 의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에게 새누리당이 패하더라도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뜻이 담긴 결정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그런 선택이 ‘역풍’을 조장한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부산 사상구에서 만난 주민들은 새누리당의 후보 선택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새누리당에서 너무 어린 사람을 공천해서 여기 사람들을 우습게 보는 거 아니냐.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얘기하면 솔직히 다들 욕한다. 여기 사람들은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사상구 괘법동 아울렛에서 만난 김아무개(30)씨는 19대 총선 최대 격전지로 떠오른 ‘사상구’ 대진표에 의문을 제기했다.

새누리당, 특히 박근혜 비대위원장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장면이다. 사상구에 사는 이아무개(62)씨는 “이곳은 나이 드신 분들은 아무래도 새누리당, 젊은 사람들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분위기인데 요즘은 나이 드신 분들도 흔들리는 것 같더라. 여당 후보가 너무 약해서”라고 지적했다.

부산 경제는 오랫동안 침체를 겪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이명박 정부의 어정쩡한 모습 역시 부산 민심을 흔드는 요인이었다. 다수 서민을 피해자로 내몰았던 ‘부산 저축은행 사태’는 부글부글 끓던 민심을 폭발시키는 촉매제였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심이 심상치 않자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꿨고, 부산 쪽에서도 호감 있게 바라보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우며 민심을 다독였다. 문제는 19대 총선 공천이, 특히 부산 쪽 공천이 논란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계속되는 선거법 위반으로 논란을 일으킨 손수조 후보는 물론 부산 사하갑의 문대성 후보가 ‘논문 표절’ 논란의 주인공이 되면서 공천에 대한 비판 여론을 증폭시켰다.

문재인 후보가 출마하는 사상은 물론 문성근·전재수 후보가 출마하는 북·강서구, 조경태·최인호 후보가 출마하는 사하까지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부산 ‘서부 벨트’에 비상이 걸렸다. 사하구에서 만난 한 남성(74)은 “한나라당(새누리당)에 대한 좋은 평가가 안 나온다. 신문에 나오는 거 보면 터지는 게 많아서 그런지 손님들도 안 좋게 본다”고 지적했다.

부산 민심이 동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선거결과로 이어질 것인지는 속단하기 이르다는 시각도 여전하다. 새누리당 쪽에서 문재인·조경태 후보 등 1~2곳을 제외하고 여론조사로 박빙인 접전지 모두를 석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신한국당, 한나라당 등 지금의 새누리당 쪽만 찍었고, 실제로 그들의 당선만 지켜봤던 부산 시민 입장에서는 과연 야당이 당선될 수 있을지 의구심도 있다.

부산 덕포시장에서 만난 50대와 60대 여성은 “무조건 1번이야. 이유 그런 거 없이 무조건 1번. 난 원래 한나라당 지지해”라고 답변했다.

부산 영도구 남항시장 앞에서 만난 50대 여성 박아무개씨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기 속내를 잘 안 드러내고 그래봤자 또 여당에서 내세운 사람 안 되겠나 이런 생각을 한다. 나이 많은 사람들도 많고, 뭔가 변화해야 하는 사람들이 그냥 바쁘고 먹고살기 힘드니”라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와 승부를 겨루는 손수조 후보도 통통 튀는 선거운동으로 전통적 지지층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손수조 후보는 지난달 31일 부산 덕포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덕포 딸내미가 돼야 덕포 시장 책임진다. 이번에 사상 토박이 처음으로 나왔는데 투표 꼭 부탁드린다”라면서 지지를 호소했다.

여권은 부산의 승리방정식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지만 투표율에 따라 희비는 엇갈릴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부산의 18대 총선 투표율은 42.9%에 불과했지만, 17대 총선의 경우 61.9%로 높은 편이었다. 18대 총선 수준으로 투표율이 저조하면 새누리당은 어렵지 않게 부산 방어에 성공하겠지만, 투표율이 17대 총선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19대 총선 투표율은 이명박 정부의 불법 민간인 사찰 파문이 증폭되면서 ‘정권심판론’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이 변수이다. 택시기사 서아무개(62)씨는 “사실 자기가 지지하는 당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다. 나도 계속 한나라당 지지자였는데 이번에 마음을 확 바꿨다”고 말했다.

부산 덕포 시장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은 “솔직히 이쪽 부산 쪽이 새누리당 텃밭인 것은 사실이고, 나도 원래 투표를 안 했는데 이번엔 투표하려고 한다. 내 의견을 내야겠다 싶어서…”라면서 “(주변 또래 친구들도) 투표를 꼭 하자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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