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급기야 홍보수석을 통해 '사찰 문건의 80%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만큼, 민주당은 정치공세를 중단하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도무지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딘 현실 감각에 아연할 지경이다. 청와대가 지난 정권 시절의 사례로 든 대규모 노동쟁의 사건들은 정확한 상황 파악과 해결책 마련을 위해 정부가 당연히 주시해야 할 일들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도리어 직무유기이고 무능한 정부이다. 문제가 된 현 정권의 불법사찰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비판적인 민간인과 주변을 집요하게 뒷조사하고, 광범위한 언론사찰을 통해 여론 통제를 시도했다.”

한국일보 4월 2일자 <청와대의 불법사찰 인식 절망스럽다>라는 사설의 내용이다. 한국일보가 청와대 인식에 ‘절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불법 민간인 사찰 실태가 드러났다. 불법 민간인 사찰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런 일 없었다”고 청와대가 밝히는 게 마땅한데, 지난 정부에서도 사찰이 있었다고 항변했다. 문제는 지난 정부는 ‘직무감찰’이고 이명박 정부는 ‘불법 민간인 사찰’이라는 게 언론의 지적이다.

한마디로 국민을 속이려드는 ‘물타기’라는 얘기다. 위기를 맞으면 일단 물타기를 하고 소나기만 피해보자는 인식, 심지어 자신과 관련된 사안을 남의 문제처럼 이야기하는 모습,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BBK 실소유주도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내곡동 사저도 노무현 대통령 아들의 문제라는 얘기냐” 등 청와대의 황당한 인식을 꼬집는 패러디 역풍을 몰고 왔다.

현 정권에 문제만 생기면 ‘노무현 대통령 탓’으로 돌려 빠져나가려는 모습에 대한 비판이다. 주목할 부분은 ‘언론사찰’을 포함한 민간인 사찰의 주체는 바로 이명박 정부라는 점이다.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으로 불리는 포항 영일 쪽 인사들이 개입해 국가 시스템을 흔든 사건이라는 점이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터진 이번 사건은 여권에 대형 악재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집권 여당은 책임을 통감하면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태 해결에 나서는 게 ‘상식’이지만,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에 무게를 싣고 있다. 새누리라고 이름을 바꾼 한나라당이 여당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하는 대목이다.

이상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한다. 민간인 사찰이 왜 이루어졌는지, 그 결과가 어느 선까지 보고되었는지 진실 되게 밝혀야한다. 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에서 정부 책임론을 거론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하지만 여당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새누리당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탓으로 책임을 돌리면서 자신은 빠져나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상일 새누리당 대변인은 “노무현 정부시절의 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은 현 정부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전신이다. 당시의 조사심의관실도 다수의 민간인과 정치인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있기에 어제 청와대는 충분한 문건을 공개했다. 그래서 국민은 분노한다. 노무현 정권이든, 현 정권이든 인권을 짓밟는 짓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한 이유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사과를 거론하지만 결론은 노무현 정부 책임이라는 얘기다. 심지어 이상일 대변인은 “민간인과 정치인의 뒤를 캤던 자료들이 어떻게 정치권에 유입됐는지 그 경로도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런 자료들이 특정정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유출됐고 활용된 만큼 누가, 어떤 이유에서 사찰자료를 빼돌렸는지에 대해서도 특검을 통해 규명해야 한다는 게 새누리당의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불법 민간인 사찰의 심각성에 대한 책임 통감이 아니라 누가 그것을 폭로했는지 출처를 따지겠다고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의 이러한 모습은 청와대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책임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사안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전략이다. 이런 물타기는 언론이 견제와 칼날을 제대로 작동할 경우에는 ‘역풍’만 자초할 뿐이다. 문제는 정권에 우호적인 언론인들이 ‘정권 앵무새’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물타기 동조로 덮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은 “몸통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책임은 이명박 대통령이 져야 한다. 박정희 유신독재 때부터 지금까지 사찰정신이 아들, 딸들에게 잘도 전수되고 있다”면서 “BH하명이 봉하하명인가. 왜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일을 청와대에서 변호사 비용을 대주고, 청와대에서 대포폰을 사주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연예인 김제동씨까지 사찰하는 몰염치한 ‘이명박근혜’ 정권, STOP! 이명박 OUT! 박근혜”라고 비판했다.

박선숙 민주통합당 선대본부장은 “궁지에 몰린 ‘이명박근혜’ 정권이 결국 동원하는 수단은 색깔, 이념 덧칠하기, 관권, 금권이다. 어제 민간인 사찰 문제를 가지고 청와대와 총리실, 검찰이 총동원되어서 저희 민주통합당을 또,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를 집중 공격했다. 이는 명백한 관권개입이다. 청와대의 홍보수석이 새누리당 대변인인가. 박근혜 위원장 대변인인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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