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데뷔가 20주년을 맞이한 현 시점에 와서, 대중문화의 아이콘 ‘서태지’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회적 사건과 흐름을 짚어내는 것은 대단히 벅차고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1992년 3월 서태지의 등장 이래 한국 대중문화와 주류세력, 공중파 매체 및 주류 언론의 질서와 구태가 드러나는 논쟁의 한 복판에 그가 줄곧 서 있었다.

매체들이 지속적으로 그를 공격해온 이른바 ‘신비주의 전략’이라는 프레임은 사실 주류언론 프레임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드러내주는 단면이다. 서태지라는 ‘상징’을 둘러싼 일련의 소용돌이들을 관전(?)하고 때로는 종종 개입해왔던 강헌 문화평론가를 만났다. 의미는 다르지만, 언론이 조명한 서태지의 모습 역시 ‘이것은 서태지가 아니다’라는 다큐의 제목과 부합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그야말로 혁명적이고 대대적인 돌풍을 일으킨 1집을 마무리하고부터 언론이 서태지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서태지씨는 지금까지 언론과의 인터뷰나 접촉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주류 언론이 서태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공중파, 국회까지 포함해서 한국의 주류 언론들이 이상하게도 ‘서태지 죽이기’에 가담했다. 일명 ‘서태지 세대’의 등장은 기성세대와 10대·20대 초반 세대를 선명하게 전선으로 가른 최초의 사건이다. 80년대가 계급적 대립에 의한 담론의 시대였다면, 서태지는 세대에 의한 담론으로 대립 구조를 만든 최초의 사례였다. 그때 모든 언론은 사실 주류의 편이었지 10대들의 편은 당연히 아니었다. 서태지 입장에서는 적에게 먹이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왜냐면 무엇을 얘기해도 가서 엉뚱한 것 쓰고 이상한 꼬투리 잡아서 막 부풀려 나가지, 황색 저널리즘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차원에서 서태지는 인터뷰나 언론에 대해 굉장히 몸을 사리고 신중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당신은 서태지 인터뷰를 어느 정도 하지 않았나. 음악적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신변잡기적인 공격을 일삼는 언론의 행태를 불신한 것으로 보이는데.
“나 역시 첫 인터뷰를 하기로 했을 때 소설 한 권이 될 만한 굉장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내가 하자고 해서 바로 해준 게 아니다. 핵심은 왜 92년, 93년 상황에서 ‘당대의 주류 세력들은 서태지를 죽이려고 했는가’이다. 나는 서태지가 굉장히 혁명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단순히 서태지의 음악이 혁명적이어서가 아니다. 서태지가 혁명적인 것은 사실 음악 바깥에 있다.”

-음악 바깥에 있다는 것은 무슨 얘기인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 번째로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서태지는 물론 그전에 헤비메탈 밴드를 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하자마자 주류의 수퍼스타, 밀리언셀러가 됐다. 그런데 주류의 성공을 거둔 자가 비주류의 의제를 끌고 온 첫 번째 뮤지션이었다. 3집에서 교실이데아(학교 문제)라든지 그 당시 ‘운동권 가요’나 얘기하던 통일이나 정신분열, 이런 일종의 소수자·마이너리티의 어두운 문제를 자신의 음악 의제로 삼은 첫 번째 인물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에서 주류 스타가 된다는 것은 일단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스캔들을 피하고, 인터뷰를 할 때나 방송에 나와서도 ‘부처님 반토막’ 같은 얘기만 해야 하던 때였다.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아버지, 어머니’라고 답해야 하고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김치찌개, 된장찌개’라고 답해야 하던, 정말 완벽한 구조의 틀이 있었다. 쉽게 말해 주류의 스타로서 조용필 같은 스타가 됐는데, 옛날에 김민기나 노찾사(노래를찾는사람들)나 할 것 같은 비주류의 의제를 끌고 오면서 단순히 문화연예오락산업 차원이 아닌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기성 주류 세력과 매체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인가?
“주류 기성세대의 자세는 뭐냐면 ‘우리가 예뻐해 줘서 키워놨더니 얘가 우리의 성체에 칼을 들이대네, 이런 XX자식이 있나.’ 이것이 기성세대의 입장이다. 그러니까 서태지가 2집 하여가 때 레게파마 한 것을 국회에서까지 거론했다. 주류 스타가 됐으면 예를 들어 고아원 가서 애들 돌본다거나 보수적인 관점에서 사회에 귀감이 될 만한 건전하고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할 스타가 그렇게 나오니까 ‘어라 저 놈 봐라, 저거 빼’ 이렇게 된 거다. 3집 때는 앨범 자체가 ‘발해를 꿈꾸며’와 ‘교실이데아’라는 곡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고.”

-그렇다면 두 번째 요인은 무엇인가?
“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경제·산업적인 요인이다. 서태지는 사실 아무것도 아닌 20살짜리 청년일 뿐이다. 야간공업고등학교 중퇴자라고. 물론 그가 공부를 못해서 거기에 간 건 아니고 음악하려고 갔던 거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당시 학벌 위주의 한국사회에서 보면 완전 밑바닥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애가 식민지 시대 때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완강하게 지속돼온 한국 음반 산업의 질서를 무너뜨렸다. 그것은 서태지가 ‘이것이 비민주적이고 비문화적인 질서이기 때문에 내가 깨뜨려야겠다’고 결심하고 깨뜨린 게 아니다. 서태지 입장에선 ‘음악은 내가 힘들게 다 했는데 돈은 왜 당신들이 다 먹나’ 이렇게 해서 (기존 음악산업계의 룰을 깨고 나온 거다).”

-1집 활동 종료 후에 계약한 프로듀서랑 헤어지게 된 계기도 그 때문인가?
“정확히 말하면 헤어진 게 아니고 ‘해고’한 거지. 그전까지는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시 비즈니스라는 것은 ‘마피아 비즈니스’였다. 지금도 사실 본질적으로는 별로 다르진 않지만 서태지 직전의 스타인 조용필도 메이저 레이블과 일방적인 주종관계에 있었다. 몇 만 장 팔리면 몇 퍼센트에 해당하는 인세라든가 그런 것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다. 가수의 몫을 인정을 안 해줬다. 대신 계약사 사장이 가수에게 마치 왕이 시혜를 베풀 듯 ‘명색이 대형스타인데 사는 집이 그게 뭐냐, 얘 삼화아파트 하나 사줘, 벤츠 하나 뽑아줘’ 이런 것밖에 없었다. 그러면 가수는 ‘회장님 감사합니다’ 이러던, 철저히 가수들은 계약상 을의 존재였다. 1990년대가 열리는 때까지 그것이 이 바닥의 룰이었다.

그렇다면 80년대 ‘386 운동권’ 출신인 김광석은 달랐나. 김광석도 똑같았다. 서태지는 1집 끝나고 (기존 관행처럼) 그렇게 되니까 ‘뭐 이런 게 다 있어, 음악 만들고 녹음하고 방송 나가서 하고 다 내가 한 건데 왜 니들이 다 가져가, 나 너희랑 안 해’ 이렇게 된 거다. 그리고 자기가 회사를 만들고 매니저를 자기 밑에 고용한다. 이건 조선 이래 1천년의 대사건이었다. 이 질서를 다 깨놓은 순간에 서태지는 일단 모든 음반산업계를 적으로 만든 것이다. 왜냐면 모든 음반산업의 자본적 구조를 깨뜨려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데뷔 초 서태지와 아이들. 왼쪽부터 양현석, 서태지, 이주노.
 

-그 때문에 언론이 그 대상(서태지)에 대해 악의적인 보도를 하기 시작한 건가?
“음반산업계는 오랫동안 공중파와 주류 언론과 유착관계를 맺어왔다. 다 ‘형 동생 사이’이고 상납하고 촌지주고. 이런 관계이기 때문에 가수들(의 지분)을 빨아서 번 초과이익을 갖고 그런 식으로 나누면서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 산업계 뒤에 주류 언론이 있는데 누구 편을 들겠나. 한번은 그런 적이 있었다. 3집이 나온 뒤에 모방송국 시사보도프로그램에서 ‘서태지 죽이기’용 특집 프로그램을 만든 거다. 나도 출연했는데 나를 출연시킨 이유는 일방적으로 공격하기엔 형평성에 어긋나니까 나를 조금 인터뷰해서 넣었지만 면피용에 불과했다.”

-그건 왜 그랬던 건가?
“그 제작진이 굉장히 진보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오며 진보적 사회이슈를 제기해왔었기 때문에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그 피디와 둘이 얘기하면서 사담으로 ‘근데 여쭤 봅시다. 이제 스물 몇 살 먹은 딴따라인데 걔가 뭔 잘못을 했다고 죽이려고 해요?’라고 물어봤다. 그때 그 PD가 한 마디한 것이 충격적이었다. ‘새끼가 건방지잖아’. 언론이랑 척을 지게 된 이유가 이게 본질이다. 본질적으로는 이들이 누려왔던 먹이사슬 구조를 얘가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언론들이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소한 것들을 빌미를 잡아서 서태지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 여론을 만드는 보도를 날렸다.”

-악의적 보도가 어떤 것들이 있었나.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때 언론들이 어떤 것까지 비난을 했냐면 황색언론이 ‘서태지 야쿠자 결탁설, 게이설, 임신설, 정신병자 병력이 있다’는 루머까지 보도했다. 주류 언론에서 그나마 양식이 있는 기자들이 어떤 식으로 기사를 썼냐면 ‘너는 왜 자기 판 나올 때만 나오고 철저히 은둔함으로써 신비주의 전략을 쓰냐’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신비주의인가. 그게 왜 잘못됐나. 근데 그걸로 비난을 했다. ‘쟤는 나쁘다. 엔터테이너로서 자격이 없다.’”

-‘신비주의 전략’이라는 말이 서태지씨가 1집 활동 끝나고 음악을 만들기 위해 공백기를 가지자 언론이 만들어낸 프레임이라고 들었다.
“서태지는 조용필처럼 곡을 쉽게 15분 만에 쓰는 사람이 아니다. 한 곡을 너무 힘들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기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PD들은 가수나 연예인이 뜨면 다 자기가 키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 PD들 프로에 다 나가줘야 되는 거다. 그런데 태지는 그런 부분을 ‘쌩까는’ 거지. 그래서 예능제작국 PD들 중에서도 서태지라면 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굽신거리지 않으니까.”

-서태지가 방송국의 기존 문화에 순응하지 않고 그렇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성이 나빠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스타가 되고 난 뒤에 그 방송의 이른바 ‘시청률주의’의 포로가 되는 한 자기는 소모되고 끝난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던 거다. 음반을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 시간을 가져야만 했던 것이고. 자기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판단인데 방송국,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스타가 되니까 쌩까네’ 이렇게 완전히 ‘건방진 놈’이 된 거다.”

-그렇다면 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1집 데뷔하자마자 대형스타가 된 것이 방송국에서 띄워주기 위해 많이 틀어줬기 때문인 것인가?
“솔직히 틀어주긴 뭘 틀어주나. (반응이) 터지니까 막 틀어준 거지. 방송국에서 띄워주기 위해서 띄워준 건 아니다. 식민 시대부터 60년을 이어온 한국 음반 산업의 철옹성 같았던 결탁의 룰을 서태지가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간에 그 고리를 끊은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독립적인 사고를 했던 모든 뮤지션들이 전부 다 나와서 독립을 했다. 그렇게 해서 기존의 음반 산업이 90년대 전부 붕괴했다. 메이저 레이블들이 다 망했던 것은 당연하다. 가수한테 뽑아 들여야 될 것들을 못 뽑아 들이게 됐으니까. 서태지라는 나비 한 마리가 한국의 기존 음반산업을 붕괴시키게 된 거다.”

-서태지씨는 언론을 매우 불신했고. 서태지의 음악에 집중하는 인터뷰는 많지 않았다.
“공격을 하려고 신변잡기적인 부분만 찾아낸 거다. 첫 번째 때 고리부터 이미 서태지와 주류 언론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거다. 그게 권력투쟁이다. 작년에 서태지-이지아 사태가 났을 때 언론이 서태지라는 개인을 완전히 걸레를 만들어놨지 않나.”

-큰 차원의 권력투쟁을 넘어서 상대적으로 유약한 대상이나 개인에게까지 ‘보복성 보도, 길들이기’ 등으로 언론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 아닌가.
“그러나 그런 언론들을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옛날에도 나빴고 지금도 나쁘다. 앞으로도 나쁠 것이고. 그런데 저들이 찌질한 것 아니냐고 얘기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다. 또 뒤집어서 얘기하면 그런 명확한 적대자가 있었기 때문에 서태지가 어마어마한 반사이익을 누린 것도 사실이다. 만약에 언론들이 다 호의적이었다면 그 열광적인 로열티를 가진 팬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호의적이든 적대적이든 서태지가 90년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지. 그 힘이 뭐냐. 논쟁적이었기 때문이다. 논쟁의 한복판에 서태지라는 존재가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있었기 때문에 서태지의 일종의 존재증명이 된 것이다. 단순히 ‘딴따라’로서가 아니라 중요한 사회적 인물로서 자리 잡게 된 배경을 만들어준 것도 그 언론들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이것은 기득권과 기득권의 부패한 체제를 허물려는 자 사이에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권력 투쟁인거다. ‘저건 나쁜 놈, 태지는 착한 놈’ 이런 게 아니란 거지. 그들은 각자 그냥 자신이 처한 상황과 기능적 본질에 충실했을 뿐인 거다.”

‘이것은 서태지가 아니다' ② 강헌 문화평론가 인터뷰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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