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는 2010년 11월 19일자 3면에 <사찰 지휘·실행자도, 대포폰 제공자도 ‘영일·포항 출신’>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일본 오사카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포항·영일 지역 인사들의 전횡을 둘러싼 ‘영포라인’ 논란은 2010년 하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였다.
‘영포라인’을 둘러싼 의혹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대단한 내용이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불법사찰을 시도했고, 그 몸통은 청와대라는 의혹이었다. 사찰의 대상은 야당은 물론 여당의 정두언 정태근 의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를 하겠다는 것인지 덮겠다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수사에 소극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찰 의혹의 핵심이라 할 ‘몸통’은 밝히지 못한 채 꼬리만 잘랐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 파괴라는 ‘증거 인멸’이 자행됐고, 이를 위해 청와대 쪽에서 제공한 대포폰 의혹까지 불거졌지만 이것 역시 대충 넘어갔다.
국가 시스템과 사법 체계를 비웃은 이번 사건을 그냥 그렇게 덮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까. 당시 언론은, 걱정과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국민에 대한 우롱도 도가 지나치다는 얘기다. 국민이 ‘붕어’도 아니고 대충 덮는다고 기억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겠는가. 검찰의 ‘대충 수사’로 논란을 빚었던 2010년 8월 12일 조선일보는 <‘민간인 사찰’ 수사, 아무 의혹 없는 듯 덮고 마는가>라는 사설에서 “핵심 의혹은 대통령과 동향인 인적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이 지원관실을 친위 조직으로 부리면서 각종 월권을 해오지 않았느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종석 행정관이 ‘사찰 기록이 담긴 컴퓨터를 망치로 부숴도 좋고 한강물에 버리는 것도 좋다. 검찰에서 문제 삼지 않기로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얘기가 돼 있다’고 했다.”
증거인멸 실행을 담당한 장진수 주무관의 증언은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국가 권력의 정점에 있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관계자가 연루된 ‘실제 사건’에 대한 얘기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다시 정리해보면 대통령 형님을 불편하게 한 이들을 대상으로 사찰이 이뤄졌고, 총리실은 물론 청와대 쪽도 개입했으며, 실체가 드러나자 ‘대포폰’까지 동원된 증거인멸이 이뤄졌고, 검찰은 실체를 파헤치기는커녕 대충 덮는 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명박 시대’ 일그러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조선일보는 3월 6일자 10면 <결국 엉터리로 드러난 검찰의 ‘총리실 민간인 사찰’ 수사>라는 기사에서 “검찰은 당시 (총리실) 지원관실에 남아 있던 문건과 업무수첩 등에서 ‘B·H(청와대) 하명’이라는 메모 등을 발견했지만,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그래서 김준규 전 검찰총장조차 이 수사를 ‘실패한 수사’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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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영포라인’의 전횡을 거를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검찰은 ‘영포라인’의 충실한 도우미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제 청와대와 검찰이 대답을 해야 할 때다. 청와대는 민간인 사찰에 개입했고 은폐에도 개입했는가. 검찰은 그걸 알면서도 덮으려 했던 것인가.
그렇게 하면 국민이 속아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권력을 잡으니 세상이 만만해진 것일까. 결국 터질 게 터졌다. ‘이명박 시대’ 곪은 살이 터지고 말았다. 문제는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통령은 ‘완벽한 도덕 정권’이라고 했지만, 그걸 믿는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