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당이나 선거 후보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포털의 게시물·검색어 등을 일방적으로 변경·삭제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이 포털 자체적으로 추진된다. NHN 등 포털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선거 서비스 기준안을 마련한 것으로, 정치권 요구에 따라 포털의 선거 정보가 영향을 받아 ‘조작 논란’이 일었던 전례들이 사라질지 주목된다.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야후코리아, KTH 등 5대 포털사이트가 회원사로 참여하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인터넷 선거 정보의 공적규제와 자율규제’ 세미나에서 ‘선거 관련 인터넷 정보서비스 기준에 관한 정책안’을 공개하며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이 정책안은 KISO 위원을 맡고 있는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가 소개한 것으로, 포털 사업자들이 선거 관련한 일괄적인 서비스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ISO는 정책안에서 선거 관련 게시물에 대해 “정당은 명예훼손 관련 임시조치 요청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밝혀, 정당이 일방적으로 포털 게시물을 블라인드(일정기간 게시물을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 것) 처리하도록 요청하는 것을 제한했다. 또 후보자가 임시조치를 요청하는 경우에도 “(포털사가 후보자에게)접수단계에서 게시물 내용이 허위사실인지 여부 등에 대하여 보다 구체적인 소명을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혀, 임시조치 요청 절차를 현재보다 까다롭게 했다.
 
또 KISO는 ‘연관검색어 및 자동완성 검색어’에 대해서 “후보자, 예비후보자, 정당의 공식적인 후보로 확정된 자, 출마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자에 해당하는 당사자의 권리침해를 사유로 하는 ‘삭제 및 제외 요청’에 응하지 아니한다”라고 밝혔고, 기간은 예비후보자 등록 게시일부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당선자가 확정된 시점까지로 규정했다. ‘연관검색어’ 기능은 특정 검색 키워드와 연관한 다양한 키워드를 제공하는 것이고, ‘자동완성 검색어’ 기능은 검색창에 일부 단어를 입력해도 자동으로 검색어를 제시해주는 것이다.
 
KISO는 “후원사정보라 함은 사진, 생년월일, 직업, 학력, 경력 등의 정형화된 정보”로 “원칙적으로 중앙서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를 사용한다”고 밝혀 후보자·포털에 따라 중구난방식 후보 정보를 방지하고 단일화하기로 했다. KISO는 이 같은 기준을 대통령 선거(후보자등록마감일 다음날부터 선거일까지)나 국회의원 선거(후보자등록마감일 후 6일부터 선거일까지)에만 적용하기로 해, 총선을 앞둔 내달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이 같은 정책안은 포털에 게시물을 올린 이용자의 입장에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관행’을 개선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동안 게시물에 대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관계자가 포털에 신고를 하면, 포털은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지체 없이 삭제 또는 임시조치를 취해왔다. 이 경우 법원에 의해 명예훼손의 판단을 받지 않은 게시물임에도 무더기로 삭제, 임시조치가 내려져 ‘표현의 자유 위축’ 논란이 일었다. 특히 임시조치 등을 요구하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주체가 국회의원이나 정치인 등 공인들이 빈번해 정치적 논란도 제기됐다. ‘연관 검색어나 자동완성’ 검색어의 경우에도, 후보자나 정당에 부정적인 관련 키워드의 경우에 선별적으로 삭제, 변경되는 것 역시 문제가 돼 왔다.
 
한종호 NHN 정책실 이사는 이날 세미나에서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음란물, 청소년 유해물, 국보법 위반 등과 관련한 게시물을 삭제할 의무가 있고, 법에 정해지지 않더라도 방통심의위에서 사회적으로 유해하다고 판단하면 시정요구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판단 기준이 애매한 것”이라며 “(이런 조치가)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법과 표현의 자유)양자의 균형을 어떻게 진행할지가 인터넷 사업자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한종호 이사는 “게시물로 피해를 주장하는 쪽과 게시물이 과도하게 차단돼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상충된 양쪽의 입장을 어떻게 판단하고 무엇을 준거로 서비스를 할지 사업자 공동의 기준 마련이 중요한 시기”라며 “서비스에 대한 가장 큰 기준은 중립성과 독립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율기구를 표방해온 KISO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포털사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 기구의 정체성 측면에서 모순적 행보는 아닌지 고민해볼 대목이 있다.

또 규제 실효셩 측면에서도 포털 사업자들이 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정당이나 선거 후보자들이 정보통신망법 등 현행 법을 통해 임시조치, 검색어 변경 등을 요청할 수 있어, 사업자들이 이런 요구에 대해 거부 방침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현재 국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거 선거구 획정 정도만 합의할 가능성이 커, 선거법이 인터넷 상의 선거운동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 개정되지 않는 상황이 와 총선을 앞두고 ‘잡음’이 커질 수 있다. 사업자들이 이런 정치적 논란 속에서 얼마나 이번 ‘가이드 라인’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황이다.

KISO는 이번에 공개한 정책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한 뒤 금명간에 최종적인 확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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