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잘하는 나라로만 알았던 아프리카의 ‘카메룬’이 한동안 한국 언론의 지면을 달구고 있다. ‘다이아몬드’ 사건 때문이다. 한국 중소기업이 카메룬의 한 지역에서 전 세계 매장량의 2.5배에 이르는 다이아몬드 개발권을 따냈다는 낭보(?)가 2010년 12월 언론에 전해졌다. ‘일확천금’ 기대감 속에 개미투자자들은 해당 기업의 주식 투자에 나섰다. 정부 ‘보도자료’는 언론에 그대로 보도되면서 카메룬 다이아몬드의 ‘보증수표’로 인식됐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만화 같은 발표는 결국 ‘국민사기극’으로 판명이 나고 말았다. 증권업계는 1만 3000명의 개미투자자들이 평균 65%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했다. 언론은 잘못된 ‘보도자료’를 발표한 정부에 비판을 쏟아내고 있지만, 언론이 보도자료 뒤에 숨어 근엄한 비판자 역할을 하는 것은 정당한 태도일까. /편집자 주

“충남대 김원사 교수, 다이아몬드 광맥 발견”

한국일보 2007년 3월 17일자 25면에는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충남대학교는 김원사 교수가 이끄는 ‘한국-카메룬 합동지질조사팀(단장 김원사)’이 카메룬에서 다이아몬드 광맥을 발견했다는 보도자료를 3월 16일 발표했고, 이 내용은 다음날 언론에 보도됐다.

2012년 1월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카메룬 다이아몬드’는 5년 전인 2007년 3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황금보다 더 귀하다는 다이아몬드 광맥을 한국의 중소기업이 아프리카 오지에서 발견했다는 발표는 개미투자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내용이다.

이번 사건은 오덕균이라는 인물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그는 ‘C&K 마이닝’ ‘CNK 인터내셔널’ 등 카메룬 다이아몬드 사업 관련 업체의 대표를 지낸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이번 사건은 황당한 사기극에 정부(외교부)가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다.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외교부 보도자료는 2010년 12월 17일 발표한 <카메룬 다이아몬드 개발권 획득 관련>이라는 제목으로 A4용지 단 한 장 분량이다.

보도자료 분량은 미미하지만 담긴 내용은 엄청나다. 전 세계 연간 다이아몬드 생산량은 2007년 기준 1.7억캐럿인데 2007년 충남대 탐사팀 조사 결과 카메룬 요카두마라는 지역의 다이아몬드 추정매장량은 4.2억 캐럿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감사원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감사 결과를 보면 허위로 드러났다. 외교부가 엉터리 자료를 발표했다는 얘기다. 언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외교부 책임은 엄중하다. 그러나 언론 역시 이번 사건과 무관한지는 따져볼 대목이다. 실제로 황당한 주장을 그럴듯한 얘기로 포장한 언론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매일경제는 외교부 보도자료 발표 이전인 2010년 12월 13일자 1면 <한국기업, 이젠 아프리카가 미래다>라는 기사에서 <카메룬 다이아몬드광산 확보 임박>이라는 중간 제목과 함께 오덕균씨 사업 내용을 전했다.

동아일보는 외교부 발표 다음날인 12월 18일자 4면 <카메룬 다이아광산 개발권 中企가 따냈다>는 기사에서 “광산의 가치는 수십조원으로 다이아몬드 원석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부가가치는 수백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오씨의 주장을 전했다.

머니투데이는 2010년 12월 20일자 1면과 27면(증권면)에 오씨 관련 기사를 실었다. 머니투데이는 27면 기사제목을 <현지서 돈벌어 직접 투자 카메룬 자금 유치 ‘안전판’>으로 뽑았다. 언론의 이러한 기사는 투자자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내용이다. 개미투자자들의 투자 선택에 언론이 영향을 줬다는 얘기다.

카메룬 다이아몬드 사건에 대해 보도했거나, 직접 아프리카를 다녀온 기자들은 자원외교 국민사기극을 둘러싼 ‘언론 책임론’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전했다. 아프리카 현지 취재를 경험한 매일경제 기자는 “당시 오덕균 회장의 말만 듣고 쓴 것은 아니다. 카메룬 총리, 장관, 차관의 말을 듣고 쓴 것이다. 당시 블룸버그나 AP통신도 똑같이 보도했다”고 해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지의 한 기자는 “증권부에 오래 있어봤지만 정부 부처 발표가 잘못된 적은 거의 없지 않나. 외교부도 그러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외교부에서 떡하니 발표하니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당시 동아일보에 관련 기사를 썼던 한 기자는 “기업에서 발표하면 안 쓰면 그만이지만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발표하면 안 쓸 수가 없다”면서 “기자들이 정부 발표에 의심을 해도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해당기업에 취재를 간다고 해도 해당기업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발표를 전한 언론의 행위는 ‘면죄부’ 대상일까. 물론 아프리카 오지의 다이아몬드 매장량에 대해 한국 언론의 확인 취재가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따져볼 부분이 있다. 당시 기사를 썼던 당사자 의견처럼 현지 취재를 하려고 해도 해당 기업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때는 도리가 없다는 주장도 경청할 대목이 있다.
그러나 언론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사안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번 사건처럼 언론의 기본 중 기본인 ‘합리적 의문’을 간과하면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카메룬 현지의 다이아몬드 추정매장량이 전 세계 한 해 생산량의 2.5배인 4.2억 캐럿이라는 주장은 사실 관계를 따져봐야 할 사안이다.

경제전문 언론 ‘이데일리’를 창간했던 최창환 전 대표는 “근본적인 책임은 분명히 정부에 있다. 하지만 언론의 검증 역량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언론이 기업이나 정부에 취재 소스를 의존하다보니까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자원외교를 둘러싼 ‘뻥튀기 의혹’이 이어져왔다는 점에서도 언론은 의문을 품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번 사건은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언론이 그대로 옮기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언론계 차원에서 교훈을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김창룡 교수는 “정부에서 내놓은 자원외교 자료를 보면 부풀린 게 한 두 건이 아니다. 보도자료를 그냥 받아들이는 것은 안이하고 무책임한 보도이자 자기 합리화”라면서 “언론의 공신력을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언론인들은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정민·박새미 기자 dongack@mediatoday.co.kr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