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메갈리아’, ‘워마드’ 등의 표현이 “여성을 폄하하고 경멸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형사법상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전문 매체 ‘씨네21’ 소속 기자인 필자 역시 같은 표현의 모욕죄를 인정받아 승소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8월23일 내가 페미니스트이며 여성 혐오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기 때문에 ‘믿고 걸러도 되는 영화평론가’라는 요지의 게시물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중 도를 넘어선 일부 반응이 모욕죄에 해당한다고 간주하여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이중 “메갈, 워마드 간부님”이라는 글을 남긴 네티즌은 지난 3월 벌금형 30만 원 처분이 확정됐다.

여성주의적 시각이 조금이라도 담긴 기사를 써본 여성 기자라면 누구나 ‘메갈리아’나 ‘워마드’를 거론하는 댓글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일간베스트 저장소’와 맞먹는 반사회적 집단이며 ‘페미니즘=메갈리아=워마드’라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주로 쓰는 공격 방식인데, 과거 진보 성향 운동권은 모조리 ‘빨갱이’라고 몰아세운 후 탄압하던 방식과 똑같은 메커니즘을 갖는다. ‘메갈리아’, ‘워마드’ 낙인을 이용해서 성차별에 관한 모든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것이다. 

지난 3월 ‘씨네21’에서 “‘씨네21’ 임수연 기자, ‘메갈’, ‘워마드’ 지칭한 네티즌을 모욕죄로 고소하고 승소하기까지” 기사가 나간 후에는 다른 표현으로 공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최근 미국 USC 애넨버그 스쿨에서 만든 보고서 결과를 요약한 기사 “로튼 토마토 리뷰, 백인이 아닌 여성 평론가는 4%에 불과”를 쓴 적이 있다. 영국의 가디언·미국의 할리우드 리포터 등 여러 외신에서도 같은 보고서의 내용을 일제히 기사화했으니 ‘씨네21’ 취재팀이 유별난 글을 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기사가 노출된 후 “씨네21 페미 기자의 뇌 속에 우동사리가 들었다” “이딴 개소리를 가래 뱉듯이 사방에 뿌려대는 PC충 꼴페미를 정신병원에 잡아 처넣어라” 등의 악성 글이 쏟아졌다.

▲ 씨네21의 '임수연 기자, '메갈', '워마드' 지칭한 네티즌 고소하고 승소하기까지' 기사 화면 캡쳐.
▲ 씨네21의 '임수연 기자, '메갈', '워마드' 지칭한 네티즌 고소하고 승소하기까지' 기사 화면 캡쳐.

기자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라, 이런 식의 공격을 자꾸 받다 보면 본의 아니게 일을 하다 움츠러드는 순간이 생긴다. 얼마 전에는 “다양성의 모색이 할리우드의 성공 열쇠”라는 기사를 쓰다가 문득 “또 욕먹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할리우드의 가장 중요한 흐름이 ‘페미니즘’과 ‘정치적 공정성’이기 때문에 특히 영화 기자라면 자연스럽게 관련 기사를 많이 쓸 수밖에 없고, 딱히 과격한 내용을 담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반응이 무서워서 할 말을 하지 못한 적은 없지만 일을 하는 데 있어 이런 종류의 부담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엄연한 정신적 피해에 해당한다. 개인 SNS를 찾아내 욕설이 담긴 쪽지를 보내고 신상을 털어 사적인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조롱하는 사람들까지 겪고 나니 도대체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두려움도 항상 안고 가게 됐다. 무엇보다 “메갈=워마드=페미니스트니까 믿고 걸러야 한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종용하며 기자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행위는 명백한 명예 훼손이다. 

어떤 사람이나 매체는 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관련 기사 빈도를 조정하는 식으로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쟤는 저런 시각으로만 영화를 본다”(내가 아는 한 그런 기자는 있지도 않다.)는 식으로 교묘하게 기자를 깎아내리는 경우도 허다한데,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영화 리뷰를 쓰면 식견이 좁다는 식으로 매도하며 눈치를 보게 만든다.

실재하는 여성 혐오를 언급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온갖 피해를 보는 기자들에게 법적 고소가 언제나 최선의 대처가 될 수는 없다. 그 많은 댓글을 하나하나 읽고 일일이 고소장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신뢰도가 중요한 기자에게 ‘메갈리아’, ‘워마드’ 딱지를 붙이며 평판을 깎아내리고, 조금이라도 여성주의적 시각을 담은 기사를 쓸 때마다 심적 부담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는 엄연히 범죄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 내 승소 사례가 비슷한 피해를 입고 있는 많은 저널리스트, 더 나아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업무상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모든 직장인에게 어떤 선택지가, 혹은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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