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지난 2008년 전당대회(전대) 후보였던 박희태 국회의장 측이 자신뿐 아니라 여러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배달했다고 밝혔다.

고승덕 의원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가 보고 받은 바로는 노란색 봉투는 1개가 아니었다. 소핑백 크기의 가방에는 노란색 봉투가 잔뜩 들어있었다. 여러 의원실을 다니면서 돈 배달을 한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는 한나라당의 여러 의원들이 돈봉투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 것이어서 이들 의원들의 줄소환이 예상된다. 최근 당 내부에서는 전체 의원들이 검찰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냐며 당이 풍비박산이 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급습하고 있다. 검찰도 전대 출마 후보들의 금품 살포 행위가 정치권의 일반화된 관행이었다고 보고 후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다른 의원들이 있는지에 대해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승덕 의원은 이날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돈봉투 전달자라고 알려진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일단 부정했다. 하지만 고 의원은 김 수석을 ‘K모 수석’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번 사건과 완전히 관련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아 김 수석이 이번 사건에 개입돼 있음을 시사했다. 고 의원은 또 박희태 의장 측 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시점에 대해 ‘20분 뒤’가 아닌 ‘오후’라고 정정했다. 

고 의원은 “전달자가 K모수석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다른 부분(전화통화 한 사실)에 대해서는 코멘트하지 않겠다”며 “(오후에 전화한)박희태 관계자가 누구인지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지난 8일 검찰에서 “돈봉투를 돌려준 뒤 20분 정도 지났을 때 박 의장측 모 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의원은 “돈봉투 문제는 우리나라 전당의 50년 이상 된 나쁜 관행이고 여야가 모두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다. 이번 일이 국민 모두가 바라는 정치발전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고 의원과의 일문일답.

-이번 일을 ‘폭로’라고 규정하는데.
“폭로라고 규정하는 자체가 너무나 답답하다. 한 달 전 모 신문 칼럼에서 우리나라 정치 발전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에 대해 썼고 당시는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전이라 재창당이냐, 재창당 수준의 쇄신이면 될 것이냐 논쟁이 있었다. 쇄신파는 재창당을 주장했으나 저는 그 명분은 타당하나 반드시 전당대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줄세우기, 돈봉투 (살포)를 우려했다. 만약 후유증이 터지면 비대위의 침몰이 우려돼 충정에서 썼다.

칼럼 자체는 1회성이 아니었다. 작년 봄부터 기고 요청이 있었고, 제가 우면산 사태 등 복잡한 일이 벌어져 기고가 미뤄졌다. 신문사와 이야기하기를 18대 국회를 마무리하면서 정치 현장에 대한 소회와 고쳐야 할 부분에 대해 쓰자고 했다. 9회에 걸쳐 쓰는 과정에서 지적하게 됐고 그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즉흥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돈봉투 사건은)18대 국회의원 활동 중 가장 정신적 충격을 많이 준 일이었다. 일부 기자들과 동료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없애자고 말했다.”   

 

-서류봉투에 담긴 명함은 일반 명함이었나 선거용 명함이었나.
“보통 명절 때 선물 돌릴 때 쓰는 이름 석자가 적힌 간단한 명함이 있다. 직함 없이 한자로 이름 석 자만 적힌, 명절 때 선물 돌리는 용(도의) 명함이었다.”

-검찰 수사에서 김효재 수석을 언급했나.
“지금 당시 제 보좌관과 여직원이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 중이다. 그래서 이 내용은 아직 안 나왔고 수사 초기단계에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마치 돈봉투를 들고 온 사람이 K모 수석이라고 한 보도는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파문이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부에서는 (돈봉투가)원외 지구당에 대한 경비 충당 차원에서 필요악이라며 관행이라고 본다. 하지만 제도를 개선하고 (이를)타파돼야 한다. 여야를 떠나 그런 관행은 근본적으로 쇄신해야 하고 당내 선거에서도 민주화와 깨끗한 정치를 위해 여야가 함께 해야 한다. 야당이 여당에게 돌을 던질 자격은 없다.”

-재창당에는 반대한다고 했지만 돈봉투 사건으로 인해 재창당 논의가 나오고 있다.
“재창당 자체는 반대하지 않는다. 이런 후유증을 낳는 낡은 시스템으로 전당대회를 하는 것을 우려했다. 만약 재창당을 한다면 이를 막을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김효재 수석과 통화한 적 없나.
“수사 초기라 언급하지 어렵다. 전달자는 K모 수석이 아니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서는 코멘트 하지 않겠다.”

-20분 이후에 전화통화한 사람은 누군가.
“모 통신 뉴스사에 20분 이후 전화가 왔다고 보도됐는데 ‘오후’로 고쳐진 것으로 안다.”

-쇼핑백에 다른 서류봉투도 있었다고 했다.
“제가 보고받은 바로는 노란색 봉투는 1개가 아니었다. 소핑백 크기의 가방에는 노란색 봉투가 잔뜩 들어있었다. 여러 의원실을 다니면서 돈 배달을 한 것이 맞다.”

-오후에 박희태 의장 관계자에게 전화가 온 것은 맞나.
“사실이다. 박희태 측 관계자가 누구인지 말하기는 곤란하다.”

-돈봉투 의혹과 관련한 사람은 공천하지 않겠다고 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인가.
“제가 파악한 바로는 관련자는 돈봉투를 받은 사람들이다.”

-폭로배경이 궁금하다. 돈봉투 사건과 폭로 시점은 3년간의 갭(시간 차)이 있다.
“이건 폭로가 아니다. 칼럼이 나왔을 땐 일체 문제제기가 없었다. 최근 종편에 출연했는데 진행자가 준비된 질문을 하지 않고 즉석 질문을 30분 동안 했다. 예상 질문에는 당시 통과된 예산(에 대한 내용)만 잔뜩 있었다. 막상 가서 보니 (진행자가)제가 쓴 과거 칼럼을 보면서 돌발적으로 질문했다. 칼럼을 보면서 ‘맞느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거나 모른다고 말할 수 없어 ‘예’라고 답했다. 돈 준 사람은 누구냐고 물어서 ‘특정인은 겨냥해 말할 수 없다’로 말한 것이다.”

-김효재 수석은 전혀 상관이 없나.
“일절 말하지 않겠다.”

-검찰은 과거 전당대회에 대해서도 수사하겠다고 했다. 비슷한 일이 있었나.
“제가 목격한 돈봉투는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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