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27일 조세소위를 열어 ‘소득세 최고세율 35%, 법인세 최고세율 22%’를 현행대로 유지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 등을 의결했다. 소득세는 증세 없이 추가 감세만 철회됐고, 법인세는 일부 감세 계획이 철회된 대신 다른 형태의 감세 혜택이 추가돼 내년에도 현 정부 들어 지속된 부자, 대기업 ‘감세’가 계속되게 됐다. 이 개정안은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될 예정이다.

소득세의 경우 소득세 과표 1억5000만원 초과분에 대해 40%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민주통합당의 주장을 정부, 한나라당은 거부했다. 1억원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표준 구간을 신설해 40%의 세율을 매기자는 ‘한국형 버핏세’ 도입이 무산된 셈이다. 다만, 소득세를 2% 내리려던 감세 계획은 철회됐다.

법인세의 경우 2% 내리기로 했던 감세 계획은 철회됐지만, 2억~200억 원 사이의 법인에 대해서는 계획대로 법인세를 20% 낮춰주기로 했다. 또 정부는 연구개발 세액공제율 확대와 고용창출투자공제 확대, 기업상속재산 공제 혜택 등을 주기로 해, 기업들에 대한 감세 기조를 이어갔다.

주목되는 점은 올해 들어 한나라당에서도 이른바 부자들에게 증세를 하는 ‘버핏세’가 선거를 전후로 해 복지 화두와 함께 이슈가 됐지만, 결국 도루묵이 된 점이다. 이 결과는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바로 세운다)라는 대선 공약을 내기도 했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달 초 ‘누더기 세제’라며 반대 의견을 밝히자, 여당에서 부자 증세 논의가 쏙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지를 비롯해 대다수 언론들은 이날 28일자 신문에서 여당의 ‘표리부동’에 대해 꼬집는 보도를 찾기 힘들었다.

다음은 28일자 전국단위 아침 경제신문 머리기사다.

매일경제 <한류, K팝 넘어 음식·패션으로 진화>
머니투데이 <노스페이스만 ‘아웃도어’냐 ‘부산페이스’ 만든 대학 교수>
서울경제 <중기 ‘눈물의 세밑’>
아주경제 <빚에 내몰리는 중기 내년 줄도산 공포>
파이낸셜뉴스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애꿎은 중기만 잡을 판>
한국경제 <삼성휴대폰 내년 하루 100만대씩 판다>

이번 결정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경제관’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중요한 단초임에도 언론들은 이 뉴스 자체를 침묵하기도 했다. 전국단위 종합지에서는 한겨레 1면 기사<부자증세, 결국 말잔치로 끝났다> 한국일보 1면 기사<‘한국형 버핏세’ 도입 무산>, 경향신문 20면 기사<여야, 소득·법인세 최고세율 현행유지 합의>, 서울신문 1면<소득·법인세 최고세율 유지 과표는 500억→200억 확대>, 동아일보 경제면 1면 기사<중기 상속세 70%까지 공제/소득-법인세 최고세율 유지> 등이 이 주제를 주요 기사로 해 전했다. 경제지들도 이 사안을 주요 기사로 전했다.

반면, 중앙은 12면 기사<근로장려금 받은 가구 두 배로 늘어난다>의 마지막 문단에서 이 문제를 2문장으로 요약해 보도했다. 국민-세계-조선은 이 사안을 이날 단신으로도 보도하지 않았다.

종합지와 경제지 중에서 가장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한 곳은 한겨레였다. 한겨레는 3면 기사<‘선거용 복지공약’ 쏟아내면서…‘부자증세’ 급제동>에서 “말만 앞세운 정치권의 무책임과 정부의 고집스런 감세 기조가 빚은 예견된 결과”라며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봇물처럼 쏟아지는 장밋빛 복지정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촌평했다. 한겨레는 “이명박 정부의 고집스런 감세기조는 내년에도 ‘복지 증세’에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는 같은 면 기사 <대기업 감세 철회했다더니 다른 곳에서 손해 메꿔줬다>에서 “정부와 여당이 ‘부자 감세’ 비판에 맞닥뜨려 법인세 감세를 철회하기로 했지만, 연구 개발비 세액공제와 고용창출세액공제 확대 등을 대기업들의 과세 부담을 크게 낮추면서 사실상 ‘무늬만 감세 철회’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종합지·경제지 중에서 이 사안에 대해 유일하게 사설로 비판했다. 한겨레는 사설<이럴 거면 증세논의 뭐하러 시작했나>에서 “올해보다 더 나빠질 내년 경제 상황과 재정 건정성의 악화를 막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며 “고소득 계층과 성장 과실을 거의 독식하고 있는 대기업의 세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에 대해선 얼마 전까진 한나라당 안에서도 동의하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결국 정부의 고집에 밀렸다. 당 쇄신작업을 이끌고 있는 박근혜 의원의 반대가 큰 몫을 했다고 한다”며 “이러고서도 한나라당은 복지지출을 늘리겠다고 한다. 심각한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박근혜 의원의 ‘모순’적인 행보가 도마에 올랐다. 한겨레는 3면 기사<박근혜, 복지 말하며 “세금은 되도록 적게”>에서 “박 위원장은 한나라당 쇄신파 의원들이 주장해온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에 부정적”이라며 “세금을 바라보는 박 위원장의 이런 시각에 대해 쇄신파 등 당 안팎에서 감세와 복지를 동시에 외치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의 행보가 도마에 오르고 있지만, ‘버핏세’에 대해 정면으로 이슈를 제기하는 언론 보도는 찾기 힘들었다. 경제지들의 주된 논조는 감세 기조에 대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경제는 1면 기사<순익 200억 넘는 기업 감세 안해>에서 “법인세 최고세율 22%를 적용받는 기업이 당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 개정안에 비해 크게 늘어난다”고 기사의 첫 문장을 썼다. 매일경제도 1면 기사<중기 5만곳 법인세 2%P↓>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가 27일 법인세율 20%를 적용하는 2억원 초과 200억 원 이하 중간 과표구간을 신설하기로 의결했다”고 기사 첫 문장을 썼다.

매경은 “지난 9월 정부는 ‘MB 노믹스’ 핵심인 감세 기조를 포기했다. 정치권 요구가 거세지자 결국 백기를 든 것”이라며 “대신 법인세 중간 구간을 만들어 이 구간에 해당하는 5만 개의 중소기업들은 올해보다 2%포인트 인하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대안을 내놨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반면, 머니투데이는 1면 기사<중견기업 감세 혜택 못받는다>에서 “과표 2억~500억 원미만 기업에 적용하려던 법인세율 2%포인트 인하(22%→20%)는 2억~200억 미만 기업(4만7451개)으로 축소됐다”며 “과표 200억~500억 원의 중견기업(443개)들이 법인세 인하 효과를 볼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경제는 1면 기사에 <중견기업 ‘법인세 감세’ 무산>이라는 기사를 싣고, 4면 기사로 <버핏세 도입-추가 감세 모두 무산…“여야 합리적 절충”>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기사와 달리 동아는 경제면 1면 기사<중기 상속세 70%까지 공제/소득-법인세 최고세율 유지>에서 “내년 선거에 대비하려는 정치권이 기업과 부유층에 유리한 내용은 대폭 축소하는 대신 일반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정부안보다 늘렸다”며 ‘제 3의 해석’을 하는 보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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