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업체 굴지의 기업 KT가 불공정한 노조위원장 선거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불공정한 선거 행태를 감시하기 위해 지난달 9일에는 40여개 시민단체들이 공정선거감시단까지 꾸리고 나섰다.

한 사기업의 KT 노조위원장 선거가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95년 소위 진보성향의 노조가 쇠퇴하고 사측에 가까운 노조가 등장한 이후 KT의 경영실태를 살펴보면 KT 노조위원장 선거가 한 사기업의 문제로만 치부될 수 없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5대 민주노조 집행부 이후 다섯번의 노조선거에서 민주노조 진영이 계속 패배하는 과정은 재벌과 해외투기자본에게 민영화가 완료되는 과정이었으며 엄청난 인력구조조정이 실시되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 94년 민주집행부 당시 5만3천명이었던 조합원은 10여차례의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올해 11월 기준으로 2만 4천여명으로 줄어들었다. 2002년 민영화 이후로도 지난 10년간 4만 4000명 중 1만 3000여명의 노동자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KT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민영화 이후 KT 이사의 보수한도는 61.3% 급상승했고, 현 이석채 회장이 취임한 2009년에서 2010년에는 이사의 보수가 45억에서 65억으로 44.4% 인상됐다.

특히 지난 4월 KT 관리자였던 반기륭씨가 부진인력퇴출프로그램의 실체를 보여주는 문건을 폭로하면서 KT 노무관리의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문건에는 2007년 퇴출목표로 550명이 명시돼 있고 2006년에는 500명을 목표로 퇴출시켰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부진인력퇴출프로그램은 기여도가 낮은 사원을 대상으로 재교육 등의 방법을 통해 기업의 생산성을 극대화시킨다는 개념이지만 KT는 퇴출대상자를 찍어 스스로 퇴직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현재 이석채 회장 체제 하에서도 부진인력퇴출프로그램이 운영되면서 노동탄압 장치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KT의 경영실태는 KT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지적이다. KT공대위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이후 무려 74명의 KT노동자가 사망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지난 6일 발표한 'KT 및 KT 자회사 종사자의 정신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KT 노동자들의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번 조사는 84명의 노동자를 상대로 지난달 21일부터 28일까지 온라인과 지면 조사를 통해 진행됐는데 자살충동 경험을 가진 노동자는 무려 63%로 나타났다. 이같은 수치는 KT 노동자의 업무 강도와 무관치 않다. 노동자들은 2008년 업무량을 100% 가정했을 때 업무량은 얼마인가라는 질문에 평균 140%라고 답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지금이라도 KT 및 자회사 노동자에 대한 전면적인 근로감독을 실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같은 문제들이 전혀 개선될 조짐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민영화 이후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KT가 자율교섭을 내세워 임금과 근로 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는데 경영실태와 관련한 통신 사업의 공공성 문제와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견제하는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KT 노조 위원장 선거를 단순히 한 사기업의 선거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조태욱 집행위원장은 "형식적으로는 민영기업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아직도 공공성이 강한 국민기업"이라면서 "민영화와 더불어 KT는 정부의 감사원 감사나 국회의 국정감사 대상기업이 아니다.  KT 경영진이야말로 바로 견제 받지 않는 절대권력이라 칭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KT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주노조가 들어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KT 노조 위원장 선거 과정에서 룰을 놓고 파행을 겪었다. 선거는 파행를 거듭한 끝에 급기야 위원장 후보들이 선거무효화를 주장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KT노조선거 시민사회 공정감시단에 따르면 현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싹쓸이 추천'을 받아 불공정한 선거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위원장 후보에 등록하려면 일정수의 조합원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현 노조 집행부가 조합원들의 '싹쓸이' 추천을 받아 진보성향의 후보가 조합원들의 추천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감시단에 따르면 심지어 현 집행부는 '중복 추천도 안되고 1번 이외의 후보를 추천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면서 다른 후보의 추천 서명을 방해하는 일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실제 기호 2번 측 대구, 강원, 충북, 제주 등 지역위원장 후보들이 등록에 실패했고, 기호 3번 측은 노조위원장 후보와 대구 지역위원장 후보만 등록하고, 기호 4번 측은 전원 미등록한 사태가 벌어졌다.

 

 
급기야 기호 4번으로 출마했지만 후보 등록을 하지 못한 조합원 조모씨는 선거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성남지원이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지난달 30일 선거가 중지됐다.

법원은 선거관리규정에 있는 입후보 등록절차를 공고하지 않았고, 특히 '입후보자가 조합원 50분의 1 이상 30분의 1 미만의 추천을 받아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적시해 선거 중지 결정을 내렸다. 일정수 이상의 조합원 추천을 받지 못하게 한 것인데, 사실상 현 노조의 '싹쓸이 추천'을 불공정한 선거 행태로 지목한 셈이다.

하지만 현 노조는 법원 결정 직후 곧바로 중앙위원회를 소집해 '천재지변 또는 법원 판결로 선거가 무효가 됐을 경우 노조위원장에게 모든 권한이 주어진다'는 '초법적인' 조문을 신설하고 12월 2일까지 후보 등록을 마치라고 재공고했다.
 
기호 2번, 3번 후보자는 노동조합 규약 뿐 아니라 법원의 결정 사항까지 무시하고 선거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공표한 것이라며 후보 등록을 거부했다.

지난 5일 KT 서초동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장현일 기호 2번 후보자는 "조합원들이 추천 서명을 하면 관리 대상이 되고 KT에서 생활하기 힘든 무시무시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KT노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투개표소를 지난 3년 전 투개표소 489개에서 698개로 늘린다는 방침도 문제다. 3년 전 조합원 수는 2만8천621명에서 4천260명(15% )이 줄었는데 투개표 수는 오히려 209개(43%)가 늘어난 수치다. 진보성향 후보자들은 공개투표나 다름없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다른 후보자를 추천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아왔는데 누가 누구를 찍었는지 금방 알 수 있는 투개표소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표를 던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통신매체를 이용한 선거 운동을 금지한 조치 역시 노조 선거에서 유례없는 조치로 보고 있다.

강상구 진보신당 부대표는 "오프라인 선거를 다 망쳐놓고 온라인 선거운동까지 금지한 것인데 인터넷 통신 회사에서 온라인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걸어다니라고 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자유당 정권 시절로 돌아가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투표권이 억압되고 훼손되고 있다"면서 "이게 무슨 노동조합이냐, 이석채 회장의 앞잡이 아니냐"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KT노조는 재등록을 공고한만큼 선거를 일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으로 신규 후보 등록이 없을 경우 8일 선거를 진행하고 신규 후보가 등록하면 13일 선거를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다른 후보들은 이번 재등록 공고도 '11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선거를 마무리한다'는 노동조합 규약에 어긋난다며 다시 한번 선거중지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다. KT노조가 8일 선거를 강행하고 당선자가 나올 경우 직무정지 가처분을 신청한다는 '2차 저지선'까지 계획하고 있다.

장현일 후보자는 선거 무효화 투쟁 선언에 대해 "조합원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과 기대를 저버린 결정은 아닌지 번민이 많았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노사 합작으로 만든 선거 시스템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시스템"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