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 비공개를 예외조항으로 인정한 국회법이 다수당의 날치기 처리에 악용될 소지가 높고,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법 75조는 본회의는 공개하지만 의장이 제의하거나, 의원 10인 이상의 연서에 의한 동의로 본회의의 의결이 있거나, 의장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면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즉, 세 가지 요건 중 한 가지만 충족되면 비공개로 본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

이는 헌법에서도 인정되는데 헌법 50조는 국회 회의는 공개하지만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거나 의장이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다.

하지만 지난 22일 기습상정돼 비공개로 처리된 한미FTA 비준안과 같이, 이는 다수 정당이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한겨레는 23일자 3면 기사 <'96년 노동법' 이후 첫 비공개 날치기…취재도 철저히 막아>에서 "한나라당이 비공개를 요청한 것은 몸싸움이 벌어질 경우 방청석에서 언론사 카메라들이 의원들 한명 한명의 움직임을 쫓아가며 생중계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비공개 날치기된 사안은 모두 전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1997년 노동법 개악과 1999년 한일어업협정 비준안 등이다. 최근에는 날치기는 아니지만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강용석 의원의 제명 여부를 처리했던 본회의도 비공개로 진행했다. 가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강 의원이 제명되지 못하자 ‘방탄국회’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비공개 단서 조항은 언론의 취재권을 제한해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한다는 문제점도 낳고 있다. 위법 사유가 없는 요구에 대해서 무작정 취재권을 주장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22일 국회에서 한미FTA 기습처리 현장을 취재했던 한 일간지의 박아무개 기자는 23일 “비공개니 나가달라고 했을 때 기자들이 이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국회법에 그렇게 돼 있기 때문”이라며 “법을 어기면서까지 취재해야 하나란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본회의 비공개 조항은 개정해야 한다”며 “비공개로 할 것이면 국회의원을 왜 뽑겠느냐. 그들이 민의를 반영하는지, 하지 않는지 모르게 하는 것은 잘못 됐다”고 지적했다.

다른 일간지의 한 기자도 “이번 경우의 비공개 요청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비공개할 사안도 아니었고 비공개하겠다는 의도도 명확하지 않았다”며 “취재당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헌법 전문가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23일 통화에서 “(22일의 비공개는) 헌법상 요건을 갖췄다”면서도 “한미FTA와 같이 국익이 걸려 있고 국민도 알아야 하는 중요 사안을 비공개로 처리하는 것은 의사진행을 공개해야 한다는 헌법의 기본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또 “비공개 여부를 (다수여당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남용하고 있다”며 “본회의를 비공개할 수 있는 사안을 엄격히 제한해 단서조항의 남용 소지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2일 한나라당에 의해 기습 상정된 한미FTA 비준안은 박희태 국회의장으로부터 사회권을 넘겨받은 정의화 국회부의장의 요청으로 비공개로 처리됐다. 국회사무처도 이에 따라 통상 이뤄지던 인터넷 생중계를 중단했다.

비공개로 의결된 국회 본회의에는 기자석의 출입이 금지되고, 의사 속기록도, 표결결과에 따른 찬반의원 명단도 알려지지 않는다. 취재진들은 15분 뒤 우여곡절 끝에 방청석을 통해 본회의장 상황을 볼 수 있었지만, 국회사무처는 기자들의 찬반 표결결과 공개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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